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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벅선생 Jan 06. 2024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갔다

좋은 정신과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

식욕이 전혀 없었다. 밤에는 미치도록 잠들지 못했다.

불과 몇 달 만에 몸무게가 10kg 가까이 빠지는 바람에 얼굴에 광대뼈가 불거졌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숨죽여 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살이 빠지는 것은 결혼 전 입던 옷들이 다시 맞게 되는 좋은 측면도 있었지만, 잠이 안 오는 것은 더욱 감정적인 상태가 되는 밤 시간에 깨어있게 해서 우울 증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유독 힘든 밤을 보낸 어느 날 아침, 네이버에서 인근의 정신과를 검색해 보았고, 회사 다닐 때 종종 가던 마사지 옆에 있어, 익숙한 정신과 이름을 발견했다. 어XX 정신과. '맞아, 거기에 정신과가 있었지...' 환자들이 남긴 리뷰를 훑어보니 대부분 칭찬하는 글이었다.

'어XX'라는 이름이 어떻게 보면 여성의 이름 같아서 나는 여의사 선생님이라 여기고 더 좋게 생각했다. 이전의 정신과 방문 경험 때문에 생긴 선입견 이었다. 나는 결혼 전도 우울증이 있었지만 아이를 낳은 직후에 산후 우울증 증상이 심각다. 내가 온순하고 착한 줄로만 알고 결혼한 남편은 자신에게 대들며 절규하는 나를 보고 정상이 아니라며 당장 정신과에 가자고 하 그 길로 나를 정신과에 데려갔었다. 어린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찾아온 부부를 보고 그 정신과 선생님은 부부 싸움을 하고 여기까지 왔느냐는 반응이었다. 내가 얼마나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힘이 드는지 토로하는 동안에도 "그랬어요? 그랬어요?" 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흔하디 흔한 일이라는 듯 실실 웃기만 했다. 그러고는 남편을 따로 불러 잠시 얘기를 나누고 약 처방도 없이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남편 말로는 남편에게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며 위로의 말만을 들려주었단다. 남편 말을 백 퍼센트 믿을 수만은 없지만 그 경험 때문에 남자 의사는 내 마음을 모른다고 느껴서 이번에는 여자 선생님이니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접수데스크에서 접수를 하고 돌아서니 조그만 대기실에 의자가 열 개 정도 놓여있었는데 7~8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거의 채우고 있었다. 혼자 온 사람도 있고, 둘이 온 사람도 있었는데, 모두 조용히 앞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정신과에 가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정신병 환자가 있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어느 병원보다도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다. 어 선생님의 병원은 항상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약된 시간에 와도 누구나 공평하게 30분 이상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처음 간 날은 설문 같은 걸 작성하고,  머리에 헬멧 같은 걸 쓰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뇌파 검사도 했다. 낯선 곳에서 머리에 뭔가를 쓰고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약간 창피한 마음도 들었다. 예상과 달리 남자였던 어 선생님은 내 검사 결과지를 보며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이 그래프 봐요. 이 막대들이 평균적으로는 이 정도 높이까지 올라와 있어야 하는데 환자 분은 거의 바닥에 있어요. 막대가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든 영역에서 다 바닥이에요. 어떠한 의욕도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큰 기대를 않고 갔는데, 어 선생님은 나의 병명을 불안증이라 명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할 것인지 계획을 말해주었다. 나는 한편으론, 나만 아는 나의 엉망진창인 상태가 고칠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구제불능인 줄 알았는데, 어 선생님이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다. 첫날엔 검사 결과에 대한 짧은 설명만 듣고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나왔다. 언젠가 TV에서 본 것처럼 나의 인생과 슬픔에 관한 긴 상담이 있을 줄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대기실에서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에 약을 먹고, 저녁 약을 먹으면 9시에 잠이 들고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선생님은 설명하셨다. 과연 그렇게 될 것인가? 나는 약간은 반신반의했다. 잠이 좀 더 잘 오는 정도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7시쯤 저녁 약을 먹으니 9시에 잠이 마구 쏟아졌다. 베개에 머리를 뉘웠나 했는데 어느새 잠들어 눈이 번쩍 떠졌을 때는 새벽 4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모든 피로가 싹 사라지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컨디션으로 새벽 4시에 깨어났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는 약 봉투를 바라보며 왜 이렇게 좋은 약을 그토록 두려워하며 먹지 않으려고 했던가 생각했다. 감기에 걸려 콧물을 줄줄 흘리다가도 콧물약을 먹고 몇 시간만 지나면 콧물이 딱 멈추는 것처럼, 우울증 약을 먹으니 잠을 푹 자고 일어나 피로가 싹 가시고 의욕이 생기는 것 같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 선생님의 대기실에 수많은 환자들이 대기했던 이유, 어 선생님이 그토록 명의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약을 잘 쓰시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 나는 약을 점차 줄여나가는 과정도 거쳤는데 정말 세심하게 양을 조절해 주셔서 큰 부작용 없이 치료되고 약을 끊을 수 있었다.

나는 약 덕분에 축복받은 새벽형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시험을 앞두면 밤샘 공부를 많이 했고 그 누구보다도 올빼미형 인간이었다. 밤이 되면 눈이 말똥말똥해지면서 집중이 잘 되었다. 그 덕분에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좋은 시험 성적을 받는 데 선수였다. 그렇지만 우울증 환자가 되고 보니 밤 시간이야말로 독이 아닐 수 없었다. 밤은, 안 그래도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우울증 약은 그 시간 대신 축복의 새벽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새벽 시간은 아무리 우울증 환자라도 우울하기가 힘든 시간이었다. 늦게까지 깨어 있을 때의 죄책감과는 달리 일찍 일어나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 공부를 하고 싶을 땐 공부를 했고, 일을 하고 싶을 땐 일을 했다. 내가 굉장히 부지런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점차 밤 9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을 금과옥조로 여기게 되었다.

어 선생님은 약만 잘 쓰는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 이뤄진 상담도 우울증 치유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행운 중 하나가 그 시점에 어 선생님을 만난 것이었다. 그 정신과를 처음 찾았던 날은, 그야말로 시궁창에 빠진 내 인생에 한 줄기 강력한 빛이 비쳐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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