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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드림 Nov 06. 2023

추워서 떠는건지 분노로 떠는건지...

#3. 추워서 떠는건지 분노로 떠는건지...


그러니까 그가 내게 이별을 고한 날은 내 생일을 딱 한달 남겨둔 날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이별한 날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 그러니까 3주 뒤의 그 요일이면 내 생일이 오는 날이었다. 기념일을 요란하게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더라도 생일이 가까워지는 봄과 겨울의 그 어중간한 계절이 되면 그 날의 기억들이 새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면 스물 한살이 끝나갈 무렵에 만났던 전남친은 내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빅 엿'을 던졌었다. 휴학을 하고 잠시 다니던 모델 에이전시에서 에이전트와 모델로 만나, 우리는 비밀 연애를 하고 있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같이 일하는 팀의 주임이 내게 와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빅뉴스'라며 전했다. 



"그거 들었어? 종운이랑 나은이랑 사귄대!"



비밀 연애 중인 남자친구의 이름이 난데없는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 얘기를 듣고 '공식 커플 지정'이라고 떠드는 팀장의 입을 들고 있던 대걸레로 막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잠시 억눌렀다. 크리스마스 이브, 진눈깨비라 해얄지 눈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것들이 흩날리는 와중에 나는 겨우 마음을 다잡고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학이었던 남친은 잠에 절여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절대 아니라던 그는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사실 그때도 어느 정도 감으로는 알고 있었다. 기억력 만큼이나 미세하고 섬세한 촉은 이런 상황에선 절대 빗나가질 않는다. 비 같은 눈을 맞으면서 나는 쿨하게 그와 이별했다. 손은 덜덜 떨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추워서 떠는건지 분노로 떠는건지 몰랐지만 아무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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