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폭싹 속았수다>를 외면하고 있다.

모두가 인생 드라마라고 하는 작품을 나는 시작조차 못하겠다.

by 루시드림

아빠는 1년 중 10개월 이상을 바다에서 근무한다.

아빠 인생의 모든 시간 중 바다 위에서 보낸 시간이 땅에서의 그것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어릴 때는 아빠의 부재가 늘 내게 아킬레스건이었다. ‘아빠 없는 애‘라는 말을 듣게 하는 것이 싫었던 엄마는 내게 늘 과하게 엄했다. 기준치에 벗어나는 내 행동에 늘상 매를 들었다. 종아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걷기도 힘든 날이 잦았다.


무서웠다. 엄마와 둘이 있는 시간이. 그러다가 동생이 태어났고, 동생과 싸우는 날에는 나이차 많은 내가 또 몽땅 매를 맞았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 시간이 꽤 오래 지속 되었는데, 아빠의 부재 때문에 더더욱 그랬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바로 크라고 드는 매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바르고 올곧게 크고 싶었고 그리 컸다고 자부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이로 자라났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그린 작품을 공감하며 본다는 것이 내게 세상 무엇보다 취약한 점이라는 것을 엔터업을 하며 알았다. 어쩔 수 없이 보게되는 작품들 속에서 판타지처럼 그려지는 엄마와 딸의 혹은 아빠와 딸의 단란하고 다정한 대화. 내게 그것들에 대한 결핍이 있다는 것을 일을 하며 절절히 느꼈다.


우리 모녀는(혹은 부녀는) 분명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고 곁에 있어주는 것에 익숙치 못했다. 남편의 몫까지 하며 두 아이를 케어해야 했던 엄마와 아빠의 부재를 느끼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 했던 겨우 예닐곱살의 나...




최근 <폭싹 속았수다>가 많은 화제를 얻었다. 담당하는 배우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서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보려고 했다. 전편이 공개되면 몰아봐야겠다고 아껴두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숏폼으로 본 작품의 한 씬은 내가 이 드라마를 영영 시작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수틀리면 빠꾸, 아빠한테 냅다 뛰어와“


가슴에 턱, 하고 걸리는 그 한마디에 나는 그 밤에 핸드폰을 손에 쥐고 오열했다. 그 장면을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너는 뭐든 잘 하겠지만, 그래도 겁이나면 아빠가 여기 서 있어줄테니 곧장 집으로 오라는 아빠의 말. 세상의 모든 아빠는 다 그러한가. 세상의 모든 아빠는 그렇게 든든한 백그라운드인가. 세상의 모든 아빠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


이 것이 판타지가 아니라면 나는 너무 억울하잖아.


내가 입학과 졸업을 할 때, 첫 등교를 할 때, 내가 운동회를 갈 때… 내 백업이 되어줄 아빠는 없었다. 그 때도 아빠는 망망대해 위에 있었다. 멀어져 있던 시간과 육지와 바다의 거리만큼 우리는 마음이 멀어졌다. 잠시 잠깐 아빠가 배에서 내렸을 때도, 아빠는 그저 동거인일뿐이었다.


물론 안다.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우리를 사랑한다는걸. 혼신을 다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고 해오고 있다는 것을. 무뚝뚝하게 툭 내 뱉는 말과 행동, 모든 것들에 가족을 향한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그런데 그 부재가 사무치게 그리운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한척하며 자란 나는 이제 불혹이 넘어서야 그 시절이 너무나도 고되고 힘들었음을 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빠가 맨날 내 백업이네"


내 백업을 해줄 아빠의 부재로 나는 백업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그렇게 우뚝 섰다. 그것이 내게 다행인지 혹은 결핍인지 불행인지 아니면 빨리 성공할 수 있었던 지름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궁금증이 해소되기 전까지 나는 <폭싹 속았수다>를 감히 플레이하지 못할 것 같다. 내게 유년시절 그런 백그라운드 같은 아빠가 없었어서, 금명이를 보며 질투하고 울분을 토하며 펑펑 울고 있을 내가 가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