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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바들 Dec 07. 2023

휴양지에서 마사지 받는데 우울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우울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




질문: 휴양지에서 전신 아로마 마사지 풀코스 받는데 우울할 수 있나요?

답변: 네. 당근이죵!





귓가에 맴도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배경 음악 삼고 하얀 포말과 검은 파도를 바라보며 어느 푸른 바다를 닮은 칵테일을 마실 때까지만 해도 행복을 돈으로 산다는 게 이거로구먼! 같은 소리를 했는데 말입니다.


바다를 배경 삼아 아침을 먹고.

신나게 한바탕 수영하고.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노곤함을 느끼며.

자연을 벗 삼아 룸서비스를 먹고.

발가락 끝부터 정수리까지 정성 어린 손길로 마사지를 받는데 왜 우울한 것인가!


내 삶에서 '우울'이라는 감정만큼 귀찮고 지겨운 감정도 없다. 다른 집 우울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집 우울이는 주인을 닮아서 그런지 굉장히 괴상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특징을 하나 꼽자면 예고도 없이 제멋대로 찾아온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동방예의지국에서 예의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놈 같으니! 


어린 시절에 보았던 모 예능에서 종종 '깜짝 손님'이라든지 '몰래 온 손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는데 이때 '깜짝 손님'과 '몰래 온 손님'은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손님을 지칭했다. 그러나 우리 집 우울은 깜짝 손님과 몰래 온 손님처럼 예고하지 않고 찾아오나 반갑기는커녕 당황과 동시에 짜증을 유발하는 불청객이다. 이를 알기 쉽게 비유해 보겠다. 나에게 우울은 바깥에서 친구들과 거하게 2차까지 달리고 온 부모님이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왔을 때, 바로 부모님 및 부모님의 친구는 예기치 못한 손님이라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최악이다.


우리 집 우울의 또 다른 괴상한 특징. 일반적으로 우울은 인생의 안 좋은 순간에 등장하곤 하는데 우리 집 우울은 꼭 좋은 순간에 등장하는 비율이 높다. 이런 예의도 없는 데다 눈치도 없는 놈 같으니라고! 여기까지만 하면 그나마 오래 함께 한 미운 정이라도 생각해서 봐주겠는데 하필 우리 집 우울은 염치도 없다. 혼자 와도 짜증 나는 판국에 불안이라는 단짝까지 데리고 온다. 환장할 노릇이다.


인생의 좋은 순간에 어김없이 우울이 짜잔! 하면서 거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종종 제멋대로 등장하는 특징과 달리 나름대로 머리로 이해할 수는 있다. 좋아하는 철학자이자 작가이신 김진영 철학자님께서 <아침의 피아노>에서 인생이란 상향 곡선과 하향 곡선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비슷한 결로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에서 개그맨 김국진 님께서 인생을 롤러코스터라고 비유하시며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고 하셨다. 이를 내 표현으로 말하자면 '좋은 일 뒤에는 안 좋은 일이 기다린다.' 정도일까.  


짧지 않은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 삶의 법칙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있고 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일까.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이준혁 배우님이 행복하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행복 징크스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게 두렵다고 말씀하셨을 때 '내 말이 그 말이에요!' 하면서 크게 공감했다. 나 역시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거나 예기치 못한 행운이 찾아오거나 일이 잘 풀리는 등 인생이 상향 곡선을 그릴 때면 미리 밑바닥으로 추락할 준비를 한다. 자고로 과거에 초점을 맞추면 후회가 가득하고 미래에 초점을 맞추면 불안하다고 하지 않는가. 행복한 지금을 만끽해도 모자랄 판에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불행을 걱정하다니! 


비교적 최근 일을 바탕으로 우울과 불안의 기상천외 대환장쇼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꼬꼬마 시절부터 좋아한 모 배우의 영화가 개봉해 무대인사를 갔다가 오타쿠 및 팬 용어로 계를 타고야 말았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쉰다는 자체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인 판에 이벤트에 당첨되어 좋아하는 배우랑 사진을 찍고 선물도 받고 포옹도 하는 기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내 평생 꿈 중 하나가 돈 많은 백수 되기라 하늘의 계시를 받으면 로또를 사곤 하는데 지금껏 로또를 사면서 최고 당첨 금액이 5,000원인,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는 돈 많은 백수라는 원대한 꿈은 이루지 못할 슬픈 예감이 들 만큼 당첨 운과 거리가 먼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 내가 내 최애 배우랑 사진 찍고 선물 받고 포옹도 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잖아. 거기에 결국 운이라는 것도 총량이 있을 거 아니야? 오늘 내가 운을 다 썼으니 이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치킨집에서 얌전히 치킨이나 먹을 것이지 행복의 정점에서 어김없이 찾아온 우울과 불안이라는 놈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위와 같은 발언을 했다가 최소 10년 이상(10년 지난 후부터는 몇 년인지 안 세봐서 구체적인 햇수는 모름) 인생을 함께한 친구 두 명에게 동시에 절교당할 뻔했다. 졸지에 친구 두 명에게 신종 어그로를 끌었다고 오해받은 내가 억울함에 나의 '행복과 불행의 법칙'을 토로하자 치킨집에서 국물 떡볶이를 먹던 친구 H가 이러한 말을 했다.


"그만큼 좋은 일이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의 물꼬가 텄다는 거 아니야? 나 같으면 당장 티셔츠 앞면에는 '모 배우랑 두 번이나 포옹한 사람' 뒷면에는 '그게 바로 나예요'라고 적어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겠다!"


<우울할 때 뇌과학>이라는 책에서 우울의 특징 중 하나로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을 데리고 와 기분은 아래로 끌어 내리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8t 트럭같이 조수석에 우울과 불안을 태우고 절망으로 질주하던 나는 그나마 친구들 말 덕분에 간신히 우울한 사고를 멈출 수 있었다.


이처럼 나라는 사람은 우울과 질긴 연을 맺고 있어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도 우울과 불행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라 이제는 나름대로 우울이 찾아올 때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알고 있다. 그래서 혹여나 갑작스러운 우울의 방문에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분이 계신다면 아래의 팁을 한 번 읽어보시라.



1. 억지로 기분을 바꾸려고 하지 말기!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우울과 같은 좋지 못한 감정을 온전히 수용하고 느낀 후에 보내주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감정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는 말이었다. 이 책뿐만 아니라 국내 유명한 심리학자, 뇌과학자 분들 나아가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뵙는 정신과 원장님 역시 우울할 때는 우울한 감정을 억지로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 보라고 권해준다. 이때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글로 우울을 풀어서 써보기.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슬픈 기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어째서 이러한 감정이 들었는지 글로 풀다 보면 마음에 가라앉아 있던 우울이 서서히 마음에서 옅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에서 벗어나기!

우리 뇌가 참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고 느낀 건 뇌는 고작 방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조금 전에 있던 공간과 문 너머 공간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인지한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사무실에서 복도로 나갔을 뿐인데 뇌는 사무실에서 바다로 순간이동한 것과 같이 느낀다고나 할까. 만일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이 몰려온다거나 공황을 느낀다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된다. 나 역시 일을 하다가 공황이 찾아오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때 일이고 나발이고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화장실에 홀로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불안으로 한껏 긴장되었던 몸이 점점 풀리면서 요동치던 감정 역시 차분해짐을 느끼곤 했다.


3. 잠이나 자자!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서 쇼펜하우어가 말하길,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게 최고라고 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아래와 같다.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 도박도, 기도도, 명상도 도움이 안 된다. 여행도 도움이 안 되고, 술을 먹어봐야 자기혐오만 짙어질 뿐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혐오스러운 오늘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괴롭다면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새로운 시작을 펼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쇼펜하우어에게 빠지고 그의 말에 모두 밑줄을 긋고 싶어지는데 특히 이 문장이야말로 무릎을 '탁' 치면서 맞다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문장이었다. 가끔 진정제를 먹고도 우울이 가시질 않아서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조건 빨리 자는 게 상책! 일반적으로 지독할 만큼 엄청난 우울이나 분노, 후회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한숨 자고 나면 낫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위의 두 방법이 안 통한다면 오늘의 스케줄은 다 정리하고 자는 방법을 추천한다.


베트남 휴양지까지 가서 마사지를 받으며 한껏 우울해하던 나는 자리를 옮겨 바다가 잘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글을 쓰며 우울을 분석하고 맥주를 물처럼 4캔이나 마시고도 우울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방에 들어가서 발 닦고 잤다. 그리고 맞이한 새로운 아침, 바다가 보이는 조식 레스토랑에 앉아 갓 만든 오믈렛을 먹으며 다시금 휴양지의 행복을 만끽했다.



살다 보면 갑자기 우울이 급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우울에게 밑도 끝도 없는 심연으로 끌려가지 말고 우울과 잠시 글로 대화를 나눠보자. 그게 안 된다면 우울이 나타난 환경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추천한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그럼, 발 닦고 자자! 잠이 보약이라는 말은 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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