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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부>를 보고서..

영화 <승부> : 『청출어람(靑出於藍), 해불양수(海不讓水)』

by Funny Sunny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내 머리에 한 줄 문장이 떠올랐다.

『*청출어람 이청어람(靑出於藍 而靑於藍), **해불양수(海不讓水).』

두 멋진 천재의 승부 스토리로 먹먹해진 내 가슴은 나도 모르게 영화 속 한국기원이 있었던 관철동으로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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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부>는 바둑이라는 정적인 경기 안에 숨겨진 치열한 인간 드라마를 다룬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두 바둑 천재, 스승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의 숙명적 대결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며 관객을 깊은 몰입으로 이끈다.

이 작품이 특히 뛰어난 이유는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유형의 천재성을 정교하게 대비하여 묘사한다는 점이다.

조훈현은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천재성을 지닌 인물로, 순간적인 통찰력과 감각적인 판단으로 바둑판 위에서 자유롭게 승부를 이끌어 간다. 그의 천재성은 마치 예술가의 자유로운 필치처럼 대담하고 예측 불가능한 매력을 지닌다.

반면 제자 이창호는 철저한 분석과 계산적 접근을 통해 냉철하게 승부를 풀어나가는 또 다른 유형의 천재이다. 그는 항상 침착하며 감정적 동요 없이 일관된 전략으로 상대를 압박한다. 영화는 이러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스타일의 충돌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에게 깊은 긴장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영화에서 두 인물의 관계와 갈등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잘 알려진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관계와도 비슷하게 표현된다.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경외하면서도 그 앞에서 느끼는 열등감과 질투로 내적 갈등을 겪는다. 마찬가지로 조훈현 또한 제자의 압도적인 성장과 뛰어난 재능을 목도하며 스스로의 한계와 마주하고 내면적 갈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영화 속 조훈현은 살리에르의 파괴적 질투와는 달리, 제자 이창호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적인 성숙함과 따뜻한 포용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존중과 애정이 밑바탕이 된 복잡한 감정선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또한 영화는 승부의 긴장감 이면에 감춰진 인간적 고뇌를 매우 섬세하게 탐구한다. 스승 조훈현은 천재 바둑기사로서의 자부심 & 자유분방한 승부사적 본능과, 제자를 지도하고 키워야 하는 책임감 사이에서 충돌하는 복잡한 감정적 고뇌를 겪는다. 그는 이창호가 성장하여 자신을 능가하는 현실을 직면하고 스스로의 역할과 한계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러한 갈등과 내적 투쟁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겪는 인간적 고뇌를 공감하고 이해하도록 만든다.

반면 이창호 역시 스승과는 또 다른 형태의 인간적 고뇌를 안고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천재성을 드러내면서부터 이미 거대한 기대와 부담을 짊어진 존재이다. 스승을 넘어서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동시에 깊은 내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영화는 이창호가 느끼는 이러한 고독과 압박감을 아주 차분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이 그의 정서적 무게감을 함께 느끼게 한다.


글 쓰는 이 순간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들 중 특히 눈길을 끌었던 한 노신사가 떠오른다. 70세는 넘어 보이던 그 노신사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0년~1990년대를 30대 혹은 40대로 살아갔을 것이다. 혹시 그는 영화의 배경이 되던 관철동 근처에서 바둑인으로 한 시절을 보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영화 내내 그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감정과 기억들이 교차했을지 궁금하다. 같은 영화라 할지라도 개인이 가진 직간접적인 경험에 따라 그 의미와 느낌은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인데, 이 노신사에게 영화 <승부> 관람은 단지 바둑 승부 이상의 추억과 인생의 향수를 자극하는 특별한 순간이었을 것같다.

이 영화는 나에게도 단순한 바둑 영화를 넘어, 두 천재의 만남이 빚어낸 운명적 대결과 내면적 갈등을 통해 삶의 철학적 깊이를 절묘하게 담아낸 수작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청출어람 이청어람(靑出於藍 而靑於藍) "푸른색이 쪽빛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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