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나는 정말 급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생일에 휴가를 낸다. 특별한 걸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날만큼은 타인과 외부의 영향 없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기억이 맞다면 이렇게 된 지는 30대에 접어들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그 이전인 20대와 10대의 생일은 매년 나름 왁자지껄했고 어딘지 모르게 스페셜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페셜한 일이 일어나길 '기대'했다.
10대 때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내 전부인 것 같았던 시기였으니, 친구들이 생일에 무엇을 줄지가 궁금했다. 지금까지도 절친인 내 단짝과 나는 생일이 단 이틀차다. 그래서 내가 선물을 받고 그 친구는 무엇을 줄지가 관심사였다. 20대의 생일은 매년 달랐다. 20대의 첫 생일은 재수를 하느라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고, 대학생이 돼서는 동아리 선후배들이, 과 친구들이, 그리고 당시 만났던 남자친구 등 여러 사람들이 생일을 챙겨주었고 나 역시 '생일이라면 응당 타인의 축하를 받으며 소란스럽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명이, 누가, 어떻게 챙겨줄지가 궁금했다.
독일에서 20대의 일부 그리고 30대를 여러 해 보내면서 생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궁금한 게 없어졌다.
친구가 무슨 선물을 줄지, 누가 축하해 줄지, 몇 명이나 메시지를 보낼지 - 더 이상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호기심이 외부나 타인에 있으면 괴로운 일이 자주 생기기 마련이다. 나와 내 주변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데, 거기서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그 빈도는 매우 적고, 어렵고, 실망도 클 것이며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생일에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 졌다. 또한, 시끄러운 생일이 싫어졌다. 나에게나 특별하지 남들에겐 그저 어제와 같은 하루에 불과한 날을 시끄럽게 보내기 싫다.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자랑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대신 궁금함의 방향을 '나 자신'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해 두고 최대한 그것을 생일에 하며 나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이걸 실제로 시행해 보면 내가 원했던 건 생각보다 거창하지도, 스페셜하지도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휴가를 낸 생일 당일 아침엔 느지막이 일어난다. 직장인에겐 아침늦잠 그 자체로 하나의 선물이다. 가볍게 아침을 해 먹은 뒤, 아이패드나 노트북을 챙겨 동네 가장 좋아하는 카페로 간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를 먹으며 책이나 드라마를 본다. 집에 와선 조용히 밀린 집안일을 해두고 저녁에 사랑하는 사람과 외식 한 끼하며 마무리한다.
이게 내 생일 루틴의 전부다. 일기로 쓰기에도 조촐할 만큼 별 거 없지만, 실제로 생일날 느끼는 행복감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데, 어찌 나이가 든다고 손바닥 뒤집듯 사람이 변하겠는가. 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그것도 아시아인이 거의 없던 구동독에 살며 나의 인적 네트워크는 한마디로 한방에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덩치 큰 독일인들 속에 박우되어 외국어로 공부까지 해야 했으므로 일상에서 소소하게 행복을 찾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한국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 맛있는 밥 한 끼 먹는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내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내 생일 하루만큼은' 그런 시간을 스스로 충분히 주기로 다짐한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행복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면 그 어느 날보다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나만의 특별한 생일을 수 년째 유지하고 있고, 사는 곳과 상관없이 앞으로도 이어갈 생각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