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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떠난 친구의 메시지

by 가을밤

나는 한국에서 학부생일때부터 과외를 해왔는데, 그중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학생 '수지(가명)'가 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수지는 실제로 독일유학을 왔고, 독일을 완전히 떠난 지금까지 종종 만나고 있다. 그 사이 나와 수지는 둘 다 결혼 해서 각자의 가정이 생겼고, 다양한 삶의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수지에게 가장 큰 결심이자 변화는 아마도 '독일을 떠난 일'이었을 것 같다.


고등학교 입학 전 독일행을 결정했기 때문에 나는 수지가 꽤 오래, 적어도 나보다는 오래 독일에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수지가 겪었던 독일의 사람, 학교 그리고 환경은 기대와 달랐고 의도치 않은 것들이 제동을 걸었다. 수지는 결국 귀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에서 못다한 유학을 이어가고있다.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선생님 저 독일 떠나려구요."라고 말하던 당시 수지의 모습은 굉장히 결연했다. 절대 결정을 번복하거나 후회 할 표정이 아니었다. 해외에 오래 살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직감적으로 안다. 진심인지, 아니면 잠시 힘들어서 하는 말인지. 그리고 수지는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독일이 또 한 명의 인재를 놓치는구나. 독일에서 이렇게 또 한 명이 떠나가는구나. 라는 마음에 참 아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앞날을 응원해주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약 2년이 지나, 다시 독일에서 수지를 만났다.




오랜만에 독일을 찾은 수지의 얼굴은 한결 편해보였고,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았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을 빼고 다른 나라는 여행만 해봤지, 본격적으로 살아보진 않은 나는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수지의 근황을 물었다. 그리고 수지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너무좋다"고 대답했다.


그 말은 결코 '일본이 독일보다 우수하다'라던지, '일본은 살기 좋은 나라다'라는 말이 아니었다. 수지의 말은 "일본에서의 생활이 독일보다 편안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부연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첫째, 군중에 자연스레 섞여 튀지 않는 환경.

둘째, 아무리 겉치례라 할지라도 친절한 사람들.

셋째, 언제든 친정집에 갈 수 있는 위치.




비슷한 차림에 비슷한 머리색을 가진 절대다수 인종에 섞인다는 건 생각보다 큰 안도감과 안정감을 준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정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원치 않을 땐 길에서 누가 알아보는 것도 싫어하는 존재다. 하지만 유럽에 살면 내가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소위 극I 일지라도 전방 100미터 멀리서부터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절대 다수 속 절대 소수가 되는 것이다. 거기다 소도시 시골에라도 살면 아마 그 동네 사람 모두 당신을 이미 알고있을 확률이 크다. 어느 독일 지인이 나한테 'ㅇㅇ에 살고 ㅇㅇ에서 일하고 ㅇㅇ랑 결혼한 ㅇㅇㅇ를 아냐'고 물은 적도 있다. 이렇게 세세한 정보까지 다 알고 있다고?


친절함에 대해서는 누구는 "별 상관 없어. 나도 안 친절하니까 오히려 편해"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직장 동료나 친구사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서비스 직군과 같이 책임의 소지가 명확한 즉, '상대방과 나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상황에서의 불친절'을 말하는 거다. 이때 솔직함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무뚝뚝과 무례함을 넘나드는 상황이 독일에선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 이럴바엔 설령 가짜일지라도 친절이 일상인 곳이 정말 그리워진다.


땅덩이 작은 한국 내에서도 다른 도시에 살면 이질감이 드는데, 해외살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외롭고 허무하다. 아무리 사람을 만나고 밖에 자주 나가도 허무하거나 불안한 날들은 피할 수 없다(특히 겨울). 이럴 때, 단 며칠이라도 한국(친정)에 다녀오면 확실히 마음의 안정감이 생기는데 유럽의 거리는 여전히 참 멀고도 멀다. 그나마 9~10시간 이었던 비행 시간은 러우전쟁으로 인해 이전보다 약 2시간씩 길어졌고, 신체 및 금전적으로도 큰 무리다(장기비행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10시간째부터 체감되는 부담이 상당하다).




"독일을 떠난 결정에 전혀 후회가 없다"고 밝게 웃는 수지의 모습을 보며, 세계 어디에 살든 장점만 있는 곳은 없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더 맘편하고 가족과 가까운 곳이 결국엔 '나에게 맞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수지의 선택은 도피도, 실패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과 필요를 정확히 들여다보고 내린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그 선택은 충분히 의미 있고, 옳은 선택이었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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