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마트에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한국과 가장 다르게 눈에띄는 점이 보이는데, 캐셔가 앉아서 계산을 하는 모습이다. Lidl(리들), Aldi(알디), Rewe(레베), Edeka(에데카), Netto(네토) 등 어느 브랜드 어느 지점을 가도 캐셔들은 서서 무언가를 해야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앉아서 계산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앉아서 일하는 캐셔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서비스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 동아시아의 서비스엔 전반적으로 '성의, 존중'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서서 일하면 마치 게으르거나 손님을 홀대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고객 응대 시 기본적으로 서있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다.
독일 캐셔의 앉을 권리는 실제로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Arbeitsstättenverordnung(작업장 규정)을 살펴보면 "근무 자리는 되도록이면 앉아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직업상 서서 일하는 직종이라도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는 Arbeitsschutzgesetz(근로보호법)과도 연관되어 직원의 신체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환경을 제공해야 하도록 되어있다. 이는 일반 사무직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회사에서는 직원에게 맞는 의자, 책상, 모니터 등을 제공해야한다. 개개인의 신체조건이 다르므로 최근에는 거의 모든 독일 회사들이 모션데스크(높낮이 조절 가능한 책상)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단, 회사에 따라 홈오피스 근무자에겐 적용이 안 되거나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근무자의 '최소한의 앉을권리'를 보장하는 독일이지만, 내 경험은 좀 달랐다.
유학시절, 독일 대형마트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바로 계산대에 투입되어야 했기 때문에 교육은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받았다. 주중 주말 할 것없이 손님이 많았고, 우리로 치면 코스트코와 비슷해서 대량구매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맥주도 일반 6개 들이가 아니라 Fass-Bier(최소 5L이상), 우유는 두 세 박스씩 사가는 사업자 고객들이 많았다. 물건이 내 키보다 큰 적도 많았으니 자연스레 대부분은 서서 일할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다리도 너무 아픈데다, 손님마다 웃어주고, 좋은하루 보내라는 인사도 하고, 질문에도 답해주다보니 얼굴근육 조차 내맘대로 컨트롤이 안됐다. 그 때, 옆에 있던 간이의자가 눈에 띄었고 나는 엉덩이의 1/4쯤 걸터 앉았다.
그리고 5분도 채 안되어 매니저가 왔다. 그녀는 나만 들을 수 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앉지마. 보기 안좋아."
나는 화들짝 놀라 일어났고 그 뒤로 계산대에 서있는 동안엔 한 번도 앉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오로지 휴게실로 가는 휴식시간에만 앉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연히 근로보호법 위반이었다. 의자가 있으면 뭐하나 앉지를 못하는데.
사회경험과 독일경험이 쌓인 지금 그랬더라면 당당하게 "그럴거면 이 의자는 뭐하러 갖다놨냐"고 물으며 법령까지 언급할텐데 그때는 한국서 알바했던 경험이 다였고 실수할까봐 눈치보는 시기여서 그러라면 그런 줄 알았고, 하지 말라면 안하는게 능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매니저가 그런 대우를 나에게만 했는지, 아니면 모든 캐셔에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만 그런거라면 이건 단순히 법을 위반한 것 뿐만 아니라, 외국인(혹은 아시아인)에 대한 높은 기대와 다른 잣대 즉, 차별적 마인드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거라 생각한다.
제목 사진출처: AI생성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