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언론에는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단골 주제가 있다.
[이민가정 출신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
독일이 난민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건 약 11년 남짓이지만, 이민자를 받아온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난민이든 자발적으로 이주한 이민이든 일반적으로 '이민배경'이라고 하면 해외에서 온 사람을 뜻한다. 즉, 시리아에서 온 난민도 이민자, 자발적으로 독일로 건너가 살고있는 한국인도 평생 그곳에 정착할 생각이라면 역시 이민자다 (학술연구나 세부 통계에서는 구분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이민배경을 가진 가정에서 자란 어린이들중 상당수는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전체 독일학생 중 약 1/3이 이민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15세 이상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아이들의 74%가 이민가정 출신이었다. 즉, 학력 미취득자 10명중 7명은 부모 혹은 본인이 독일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독일의 독특한 교육시스템 하면 빠지지 않는 '아우스빌둥' 역시 끝까지 마치지 못한 사람들의 반 이상이 이민가정 출신이었다고 한다.
물론 공부를 잘 하고, 학위를 따는 게 사회적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 방식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한(전공과 같은 직업선택) 독일에서는 학업에 충실했던 학생들이 사회에서도 자리를 잘 잡을 가능성이 높다.
독일 언론은 이민이라는 배경이 학업수준과 직결되는 가장 큰 이유로 언어(독일어)를 꼽았다.
2024년 기준, 이민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14%는 집에서 전혀 독일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10명중 1.5명은 학교 혹은 친구를 만날때를 제외하고 '독일에 거주하고 있을 뿐'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데, 이러면 자연히 언어 사용 시간이 줄고, 실력도 빨리 늘지 않아서 또래 무리에서 제외되거나 같은 이민 배경을 가진 친구들끼리만 뭉칠 확률이 높다.
비단 학교뿐 아니라 유치원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3-6세 이민가정의 어린이중 유치원에 가는 비율은 77%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보다 꽤 높네'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일반 독일가정 아이들은 99% 유치원에 다니므로, 결코 높은 비율이 아니다. 어릴때 작은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큰 격차로 벌어진다.
세부적인 부분에선 다른 문제도 있겠지만, 언어가 최우선이라는데에는 나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학이나 독일취업 역시 승패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언어라는걸 누구보다 피부로 겪고 봤기 때문이다. 10명 유학와서 6명은 독어 때문에 돌아가고, 2명만 무사히 졸업하며, 그 중 1명만 현지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말은 상당히 현실적인 농담이다.
나는 이 통계에서 한중일 동아시아 가정은 상당히 소수일거라 확신한다. 대부분 언어와 적응문제가 대두되는 이민자 그룹은 중동계, 터키계, 아프리카계가 압도적이다. 반면 한국 아이들은 부모의 열정과 노력 덕분에 한국어와 독어 모두 수준있게 구사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대학 진학률도 높은 편이다. 내 주변에서도 소수를 제외하면 보통 부모언어+독어를 잘 구사하고, 학창시절 잠깐의 방황은 있을지언정 자기 길을 잘 찾아갔다. 흔히 독일 언론에서 "우려되는 이민자" 집단에 한국인이 언급되거나 문제가 된 경우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따라서 위에 적은 통계를 한국(혹은 한중일) 가정에서 본다면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한중일 부모들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졌다시피 교육열이 상당히 높고 독일에서도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지는 걸 결코 원치 않기 때문에, 따로 과외를 붙여서라도 어떻게든 아이들이 따라가도록 지원한다. 그래서 첫 1-2년은 힘들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잘 적응하고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양육자의 입장은 아니지만 성인이 되어 독일에 와서, 10세 이하에 독일로 온 아시아인, 부모중 한쪽만 아프리카 이민자인 가정, 부모 둘 다 동유럽 이민자인 가정, 부모 둘 다 아시아인인 가정, 중동출신 난민가정 등 상당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확실히 이민 가정이 독일인들에 비해 아비투어를 보고 종합대학에 가는 루트를 타는 사람이 적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이 독일서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장을 잡았다는 건, 그만큼 부모들의 열정과 노력이 일반 독일 부모들의 몇 배 이상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어디든 이민 1세대는 여러 방면에서 힘들지만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워낸 1세대는 더욱 대단한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AI 생성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