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의 법인세 최저한세율 15% 적용 합의 의미?
세계화 시대 시장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자국의 내수 시장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국가에서 경영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다국적 기업이라고 부릅니다.
다국적 기업은 동시에 둘 이상의 국가에 법인 등록 절차를 거쳐서 기업의 경영활동을 여러 국가의 시장에서 벌이는 기업으로 초국적기업이라고도 하고, 더 친숙한 표현으로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은 어느 한 국가에 본사를 두고, 최소한 하나 이상의 다른 국가에 자회사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본사는 100% 또는 부분적으로 소유한 해외 자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글로벌 기업들이 크게 신경 쓰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세금~ 법인세입니다. 세법은 각 나라별로 다르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세금이 저렴한 국가에 본사를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조세 피난처에 본사를 두고 실제 세금은 조금만 내거나 거의 부담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내년부터는 이런 다국적 기업들의 꼼수나 편법이 안 통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글로벌 기업에 대한 법인세 적용에 대한 최저한세를 시행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연히 구글, 애플 등 처럼 그동안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세금을 최대한 적게 납부하려고 했던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 회피를 막으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법인세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나온 소식이라 브런치 스토리 독자 여러분들중에서도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이미 잘 알고 계신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법인세 부과에서 최저한세를 적용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10년도 넘었지만 국가마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어려웠는데 2021년 G7 정상 회의에서 주요 선진국들이 더 이상 방치는 곤란하다며 합의에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같은 해 2021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던 G20 정상 회의를 시작으로 G20 재무 장관회의를 통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어져오고 마침내 2023년 국제적인 합의를 이루어 내년부터 15%의 최저한세가 적용됩니다. 최저한세랑 최소한의 세율이라는 의미로 쉽게 생각하고 넘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저한세가 15%라면 최소 15%는 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의 법인에 관련 조세제도에는 조세 회피를 할 수 있는 우회로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회로를 막자고 결의를 다지며 서로 봐주지 말자고 약속을 한 셈입니다.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나 우리나라의 굵직한 대기업들 (LG, 삼성, 현대차, SK, 롯데, 한화, GS, 포스코 등)도 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세계 여러 나라 시장에 진출해 있고, 사업을 해가면서 돈을 벌어들입니다.
그런데 나라마다 세법과 세율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기업들은 골치가 아픈데 이런 법인세를 부과하는 과정에서 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에서 세금을 납부하면 조금만 내도 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다국적 기업들에게 세금을 중복해서 부과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이중과세를 막자는 차원에서 국제적인 협약이 작용되어 왔습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들면 어떤 글로벌 기업 A는 자국에서는 법인세가 25% 적용되고 있는데, 자기가 진출해 있는 다른 국가에서는 법인세가 절반 수준인 12%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A 기업은 자국이 아닌 12% 부과하는 국가에서 영업이익을 거두었다고 신고하고 해당 국가에 세금을 납부합니다. 그러면 A 기업은 12%의 법인세를 납부하면 납세 의무가 끝나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이중과세 방지에 관한 협약으로 인해 자국의 세무 당국에는 여기에서는 영업이익이 거의 없고, 저쪽 국가에서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다 내고 왔으니 더 이상 안 내도 된다는 논리가 통용되어 왔습니다.
이중과세 방지 차원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배려한 셈인데 그런데 이러한 현상에는 아주 중대한 허점이 있었죠. 국가들이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저마다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낮추는 현상이 과열된 것입니다. 이는 주로 작은 나라나 특정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국가들에서 취해왔던 방식인데요.
특히 지리적으로 남태평양에 자리 잡고 있는 섬나라들이나 유럽의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이런 국가들이 조세 피난처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정상 세율이 12.5%이고, 그것마저도 무려 절반을 깎아주는 파격 할인으로 6.25%의 법인세 율을 적용해서 실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섬나라 하더라도, 이들 국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예 없던 세수가 아주 낮은 세율이라도 부과하면 어느 정도 새로운 법인세를 거두어 들일 수 있고, 운만 좋다면 일자리를 추가로 얻을 수도 있으니 이득인 셈입니다.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적은 세율을 적용 받으니 당여니 이득이고요. 이렇게 되면 조세피난처 뿐 아니라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의 법인세율도 계속 하락하는 추세로 이어졌습니다. 세율의 격차가 커질수록 선진국을 피해 조세 피난처 국가로 본사를 이전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테니까 법인세율을 낮추는 경쟁에 합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법인세율은 40%대인 국가들이 많았는데 2020년대는 20%대로 내려와 있습니다.
구글세, 애플세 관련 이슈가 바로 이런 배경과 연결되어 있는 논의입니다. 실제 이런 기업들이 조세 제도의 구멍을 발견해서 세금을 피해왔기 때문에 이제 국가들이 모여서 최소한의 법인세를 받기로 하자고 룰을 정한 것입니다.
일단 최저한세 법인세율을 15%로 정했는데요.
어느 국가에서 사업을 하고, 경영활동을 하는지 상관 없이 최소한 15%는 법인세를 부과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15%보다 높은 국가는 상관이 없겠지만 조세피난처의 국가들처럼 세율이 지나치가 낮게 적용되나면 해당 국가에 납부한 세금을 제외하고도 15%에서 모자라는 만큼 자국에 추가로 법인세를 납부해야 하는 걸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현재 20% 정도이니까 15% 최저한세보다 5%p 높으니 별다른 상관이 없으나, 만약 우리나라 글로벌 대기업이 국내가 아닌 아일랜드와 같은 곳에 해외 법인을 세워두고 12.5%를 아일랜드에 납부했다고 치면, 최저기준 15%에 미치지 않습니다. 이때 모자라는 2.5%는 다시 본사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추가로 더 납부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즉, 아일랜드 정부가 아무리 세금을 더 많이 깎아준다고 해도, 이제 글로벌 기업들이 세율 낮은 나라에 이익을 몰아주는 꼼수를 적용시킬 필요성이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깎아줘도 나머지 부분은 결국 자국에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15% 미만으로 법인세를 유지하려는 국가들의 유인도 함꼐 감소할 것 입니다. 글로벌 기업 전체로 봤을 때 나가는 세금이 최소 15% 이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법인세를 낮춰 기업을 유치하는 전략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대기업들도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 15% 합의 적용을 광범위하게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글로벌 기업이라고 해서 모든 기업에 의무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는 하지만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는 다국적 기업이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있는 국내 대기업들 입장에서는 고민할 문제가 하나 더 생기는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 15% 적용 합의가 과연 지속적으로 잘 지켜 질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글로벌 기업들의 조세 회피 목적의 우회로가 놓여 있다가 없어지는데 더 이상의 우회로는 없을까요?
안타깝지만(?) 언제든지 새로운 우회로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저 일단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율 적용 합의에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 140여개 국가 정도만 협약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또 한 가지 변수가 최저한세 협약에 참여했다고 하더랃도, 각 나라마다 세부조항들이나 자국의 세법 적용 과정에서 조금씩 다르게 적용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둘째로는 일단 합의는 했지만 이런 국제적인 합의 특히나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는 합의일수록 깨질 확률이 더 높습니다. 1대1로 맺은 국가들의 조약도 파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140개의 각기 목소리가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합의를 이어간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법인세 15%를 최저한세로 세수가 더 걷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자국의 경제상황이 더 많이 급격하게 나빠진다면 대열에서 이탈하는 국가가 나올 수 있고, 또 해당 국가의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이 바뀌는 나라들도 나올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게 강제적으로 제재 할 수 있는 수단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을 두고는 회의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이 있습니다. B 국가가 참여했다가 내일부터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최저한세 합의에서 탈퇴하고 법인세를 5%로 10%p 낮추겠다고 해서 다른 국가들이 B 국가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지요.
셋째, 글로벌 기업(다국적 기업)들도 바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역사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려는 쪽과 세금을 피하려는 쪽은 창과 방패의 싸움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 적용에서도 창과 방패의 대결을 이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글로벌 기업들 역시 법무팀이나 각 국가별 로펌들을 통해 이미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어떻게는 세금 부담을 줄이려는 이들의 노력이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글로벌 법인세율 15% 최저한세 적용 합의가 끝까지 잘 유지될 수 있을지,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어느 정도 기간동안이나 지속 가능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현실적으로 회의적인 시각이 많음에도 과열 되어 온 법인세 인하 경쟁을 조금은 식힐 수 있고,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세금을 가지고 어떤 합의를 이루어 내면서 공조 형태를 보이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