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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가성비주의자

연재를 마무리하며

by 다독임

<일인칭 가난_그러나 일 인분은 아닌>이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가성비"라는 단어에서 눈길이 멈췄다. 가성비주의자랍시고 살아가는 나에겐 번뜩이고 솔깃한 단어였으니까. 책의 저자인 안온 작가가 가성비를 짚었던 부분은 편의점의 삼각김밥이었는데, 극심한 가난으로 한 끼 식사조차 힘겨웠던 그녀에게 삼각김밥은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가성비 넘치는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던 저자에게 가성비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하루하루 버거운 생계를 유지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그녀에게, 가성비는 어쩌면 필수 생존 법칙과 같았을 것이다.


반면에,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러운 과소비와 외식을 일삼으며 필요에 따라 가성비를 운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댄다. 나에게 가성비는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기보다 그저 단순한 집착의 대상 같은 거였다. 한정된 생활비와 씀씀이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현실에서 나름 잘 살아보기 위한 대책이랄까. '가성비'라는 합리적인 옷은 사실 못난 나를 숨기기 위함이었는데, 이러한 방어기제는 아끼며 살아가는 데서 오는 만족감보다는 비교에서 오는 초라함과 자격지심이 가득한 내 모습 때문이었다.




브런치북을 연재하는 동안, 아끼고 조이며 아등바등 살았던 내 모습을 하나씩 꺼내어 들여다봤다. 집과 차 같은 큰 재산 목록부터 육아 용품과 옷, 가방, 운동, 과일 같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대해 온 태도와 감정, 사교육비와 자녀 교육에 대한 열망, 가족과 타인과의 관계 등 의외로 넓고 많은 것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때마다 움츠러들며 꽁하고 약한 나를 숱하게 마주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가시 같던 그 마음의 파편들은 글로 차곡차곡 정리되면서부터 나를 따뜻하고 포근히 덮어주는 한 폭의 조각이불로 변모했다.


우선,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동안 발견치 못한 숨은 행복과 감사의 거리들을 찾아냈다. 숨은 그림 찾기인지 보물 찾기인지 모를 만큼, 궁상맞고 지질한 삶의 면면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으며 '빛나는 나'를 속속 끄집어낸 것이다. 여전히 타인의 삶을 힐끗대며 비교의 도끼로 내 발등을 찍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전보다 제법 나를 단단히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가성비에 집착하는 나를 되돌아보다가 저 멀리 어린 시절까지 소환했다. 소심하고 상처로 움추러든 나였지만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 건강하고 따뜻한 가정을 일굴 수 있음이 감사했다. 예민한 청소년기에 애써 밝은 척하며 살던 나를 만났을 때는 그 시절 내 나이와 똑같은 지금의 두 아이를 힘껏 안아주며 더욱 사랑을 주리라 다짐하게 됐다. 마침내, 지금은 너무나 늙고 약해진 내 부모의 중년을 현재의 나와 교차해 보았을 때는, 원망 혹은 슬픔과 미움보다는 애처로움과 연민 어린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지난날의 상처나 아픔은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그러고 보니 가성비라는 것은 어쩌면 이제껏 나의 삶을 소박하고 건강하게 지탱해 온 버팀목 같다. 덕분에 풍부한 물질에서 휩쓸려 살아가기보다, 퍽퍽한 삶 속에서도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믿으며 살게 됐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부요의 파도타기를 경험해 보고픈 나는 늘 보이지 않는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가성비주의자로서 소박한 삶에서 행복을 찾겠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근로소득 보다 불로 소득을 꿈꾸고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과 한탄에 휩싸이는 날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마냥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하루하루 감내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허황된 욕망보다 탄탄한 성실함을 내재한 사람이 내 반려인 것도 행복한 삶에 커다란 몫을 차지한다. 가성비를 추구할 때 서로를 지지리 궁상이라 하지 않고, 야무진 삶의 지혜라 칭찬하며 살아간다. 몇백만 원 성장주사 없이 알아서 쑥쑥 자란 온순하고 반듯한 자녀들, 부유하지 않아도 내 삶의 뿌리이자 기반이 되어준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상처투성이의 내면을 보듬어주윤택한 자아를 찾게 해 준 공공도서관의 무수한 장서들과 브런치스토리는 돈 한 푼 들지 않는 가성비의 끝판왕 마무리라 하겠다.


연재가 끝나도 앞으로 나의 글은 대부분 '가성비주의'를 근본으로 하겠으나, 이제는 삶을 좀 더 폭넓게 통찰하고픈 마음에 연재를 그만 마무리하려 한다.

이제까지 함께 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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