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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정 Oct 31. 2023

커피 한 잔 할래?

'밥 한 번 먹자'는 인사치레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커피 한 잔 하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밥이 기약없는 '언젠가'에 가깝다면, 커피는 '지금 시간이 되면'에 가깝다는 점에서 더 즉흥적이다. 식사보다 음료가 가벼운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음료는 식사만큼이나, 때로는 그보다 더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누군가와 카페에 간다는 것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상대방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에는 '당신의 24시간 중 일부를 나와 공유하자'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공유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대화'다. 

    

대할 '대(對)'자에 말씀 '화(話)'자를 사용하는 대화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소통이 필수이기에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문제는, 대화를 해야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밥은 같이 먹을 수 있다. 먹는 행위의 비중이 워낙 커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하지만 커피를 같이 마시는 상황은 다르다. 대화의 비중이 마시는 행위보다 훨씬 큰 탓에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어색해지기 일쑤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친구의 수와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과, 커피 한 잔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사람과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 깨달음은 두 개의 소원을 품게 했다. 하나는 죽는 순간까지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향긋한 냄새와 쌉싸름한 맛에 취한 채 언어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눈빛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과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그런 사람이 필요할 때, 나를 떠올려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커피 한 잔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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