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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정 Nov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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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데도 시선을 낚아채거나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빨래다. 마당, 옥상, 담벼락, 베란다, 창턱 등지에 빨래를 널어놓은 광경은 어느 나라에서든 볼 수 있다. 그러나 발견할 때마다 새롭고, 마주칠 때마다 신기하다. 비슷한 조합은 있어도 동일한 조합은 없는 빨래의 특성은 매번 낯설지 않은 낯섦을 경험하게 한다.


사람의 개성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빨래는 너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반듯하게 쫙 펴서 널어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꾸깃꾸깃한 상태로 줄이 툭 걸쳐놓는 사람도 있다.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어놓은 사람도 있고, 빨래집게를 촘촘하게 꽂아놓은 사람도 있다. 색깔별로 널어놓거나 크기나 종류별로 모아서 널어놓는 경우도 있다.


집 밖에 빨래를 너는 이유는 자연 건조를 위해서다. 최적의 장소는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지만,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마른 상태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피부에 닿았을 때 최상의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는 쨍한 햇볕에 바짝 건조시켰을 때에만 얻을 수 있다. 


잘 말린 옷과 이불은 촉감은 물론 후각까지 자극한다. 햇볕에 말린 빨래에서만 나는 특유의 냄새를 어릴 땐 ‘빨래 냄새’라고 불렀다. 스스로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수 있게 된 후로는 ‘햇볕 냄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빨래 냄새’는 세탁을 끝낸 직후의 빨래, 즉 세제 냄새가 남아 있는 젖은 상태의 빨래에 더 적합한 것 같아서였다.





빨래가 있는 풍경을 볼 때마다 선명하게 각인된 햇볕 냄새가 떠오른다. 청명한 하늘 아래 휘날리는 빨래뿐만 아니라 그늘진 뒷골목에 널어놓은 빨래에서도, 심지어 비를 맞고 있는 안타까운 빨래에서도, 햇볕 냄새를 느낄 수 있다. 옷을 입는 일도, 옷을 세탁하는 일도, 옷을 말리는 일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빨래에서 느껴지는 햇볕 냄새는 어쩌면 서로 얽키고설켜 있는 생의 냄새인지도 모른다. 


시간과 장소, 종류와 색깔과는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게 느껴지는 햇볕 냄새는 사는 일이란 결국 똑같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는 다를 수 있어도 모든 이들이 싸우고 화해하고 분노하고 용서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저마다의 삶들이 끊임없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중이라고. 




빨래만큼은 아니지만 식물도, 정확히는 집 안팎에 놓아둔 화분들도 종종 시선을 낚아챈다. 베란다, 옥상, 창턱, 담벼락 등등에 놓아둔 크고 작은 화분들은 집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오래된 건물도 풀이 있으면 생기가 넘치고, 칙칙한 건물도 꽃이 있으면 화사해진다. 그러나 화분의 유무보다 중요한 건 식물의 상태다. 새로 지은 집이라도 화분이 엉망이면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낡고 허름한 집이라도 화분이 깔끔하면 실제보다 정돈된 느낌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화분이 많은 집에서 살아온 터라 식물 키우는 일이 손이 많이 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물을 주는 시기도 제각기 다르고, 어느 정도 자라면 분갈이도 해줘야 하며, 영양제를 챙겨줘야 할 때도 있다. 화분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식물이 많은 집을 보면 이런 생각부터 든다. "저 집엔 부지런한 사람이 최소 한 명 이상은 살고 있을 거야." 





골목을 걷다 마음이 끌리는 집을 발견하면 궁금해진다. 저 집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확인은 불가능해도 상상은 가능하다. 집의 형태나 인상만으로 짐작할 때도 있지만, 화분이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성향과 취향은 사소한 것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화분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화분에서는 남다른 안목이 느껴지고, 반들반들한 화분에선 야무진 성격이 엿보인다. 아기자기한 화분을 보면 귀엽고 예쁜 것을 좋아할 것 같고, 해가 잘 드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분을 보면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 같다.


작은 화분을 아끼는 사람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방치할 리는 없다. 삶의 터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일상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싱그러운 생명력을 담고 있는 화분은 일상의 증거다. 대문과 창문이 굳게 닫혀 있어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도, 식물들은 언제나 알려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삶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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