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창신동 채석장전망대로 향하는 언덕길을 오르다가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할머니 한 분과 마주쳤다. 굽은 허리 때문에 체격이 더 작아 보였던 할머니는 어림잡아도 80대 중반은 넘으신 것 같았다.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상태로 언덕을 내려오던 할머니는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반가운 손님이라도 만난 듯 환하게 웃으셨다. “젊은 사람들 보니까 너무 좋네!”
머쓱해진 친구는 ‘저희도 그렇게 젊지는 않아요.’라고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젊은 사람이란 청춘의 시절을 살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친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이는 상대적인 것이었다. 할머니 기준에서 우린 충분히 젊은 나이였다. “나이 드니까 젊은 게 제일 부러워. 젊고 건강한 게 제일 부러워.”
할머니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택시가 안 잡혀서 이렇게 오고 있다며 의지하고 있는 보행보조기를 가리켰다. “이런 거 있으면 잘 안 태워주려고 해.” 우리는 올라가는 중이었고 할머니는 내려오는 중이었다. 우리를 지나쳤음에도 할머니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거셨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뒤를 돌아보며 대답을 했다.
인도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던 언덕길에선 자동차들이 수시로 내려왔다. 보다 못한 친구가 할머니를 길 가장자리로 모시고 갔지만, 할머니에게 중요한 건 우리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는 것이었다. “젊은 여자들 보면 딸 같아서 너무 좋아. 나는 딸이 없거든.” 그리고 서운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아들 키워봤자 다 소용없어.”
우리는 조심해서 가시라며 인사를 드렸다. 마지못해 돌아서는 할머니에게선 아스팔트 위를 굴러가는 보행보조기의 요란스러운 바퀴 소리로도 감춰지지 않는 쓸쓸함이 엿보였다. 주춤주춤 내려가는 뒷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젊은 땐 오르막길만 힘들고 내리막길은 쉽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오르막길은 더 힘들어지고 내리막길은 그보다 더 힘들어진다. 심지어 평지를 걷는 것도 쉽지 않다. 살아온 세월이 쌓일수록 사는 게 더 수월해져야 하건만, 인생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나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온다는 뜻이다. 도움과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서러움은 더 많이 밀려올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어른들의 모습을 토대로 추정해 보건대, 할머니는 아들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부담주기 싫고, 걱정 끼치기 싫고,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게 아니면 물리적 거리 탓일 수도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면 연락을 받자마자 금방 달려오긴 어려울 테니까. 피치못할 사정으로 부모를 만나러 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하셨을 것이다. 노쇠해진 몸을 이끌고 홀로 병원에 다녀오는 것만큼 버거운 일은 없을테니.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간 언덕 꼭대기에선 아찔한 경사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노약자가 도보로 이동하기엔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근사한 전망을 보기 위해 언덕을 오르내린 우리는 할머니가 지나온 과거였다. 병원에 가기 위해 언덕을 오르내린 할머니는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였다. 굴곡진 길 위에서 과거와 미래는 서로를 비추며 스쳐갔다.
내리막길을 날아다녔던 유년은 내리막길을 뛰어다니는 청년이 된다. 내리막길을 뛰어다녔던 청년은 내리막길을 걸어다니는 중년이 된다. 내리막길을 걸어다녔던 중년은 내리막길이 조심스러운 노년이 된다. 보행보조기에 의지해도 위태롭게 주춤거릴 수밖에 없는, 그런 시기를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