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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찲새 May 01. 2024

입사 10주년, 출산휴가가 시작됐다

'멈춤' 선언, 일과 헤어질 결심

 2023년 4월 24일 월요일.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그러니까 내가 언론사에 입사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10년은 해야 이 일에 대해 비로소 말할 수 있다."


 가끔 지론처럼 되뇐 말이다. 기자 일을 놓고 왈가왈부하려면 적어도 10년은 기자질을 해야 한다는, 내가 세운 일종의 기본값이다. 이제 와서 보면 꼰대 같은 지론이다. 세상이 변했는데 10년 묵히고서야 말을 꺼내다니.


 10년.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창 시절을 다 합쳐야 10년이 될까.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저 10년이면, 그만큼 쌓인 내공이 언젠가 발휘할 것이라 믿었다. 유독 10년 세월에 의미부여를 했던 내가 드디어 '기자 10년의 날'을 맞이한 거다.


 이렇게 중차대한 날, 내 출산휴가가 시작됐다. 

 우연은 아니다. 기왕 아이를 낳으러 들어가게 된다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의 첫날을 특별한 날과 함께 맞이하고 싶었다. "10년은 꼭 채우고 싶다"라고 종종 말했으니까. 다분히 의도가 충분히 담긴 D-day의 시작이다. 남편은 내가 4월 24일에 맞춰 일부러 출산휴가를 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라워하면서도, "네가 기어코 10년을 채웠구나"라며 조금은 무서워하는 눈치였다.


 이날 저녁 첫 회사 동기들과 서울 서초동의 펍에서 만났다. 만삭인 배는 터질 것 같이 불러 헉헉거릴지언정 일거리가 사라진 채 저녁 자리로 향하는 마음은 몹시 가볍고 여유로웠다. (경력단절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겪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무튼 나를 포함해 동기 8명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8명 중 절반 넘게 둥지를 옮겼지만 모두 현직 기자다. 우리 모두는 '궁디팡팡'했다. 세상이 변했다며 기자들이 속속 다른 업계로 떠나는 상황에서 한 기수 전체가 기자 일을 10년 꽉 채워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동기가 주문 제작해 온 플래카드 글귀에 눈길이 갔다.

 "아직도 8명 다 기자라니. 잘 버틴 10년 잘 버틸 10년."


 닭다리를 뜯던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애 엄마가 되고 향후 10년을 지금까지의 10년처럼 치열하게 살 수 있을까?"


 일을 멈추겠다고 선언한 건 난생처음이다. 출산휴가가 시작되기 전 고맙게도 부서에서 따뜻한 환송회를 열어줬다. 이 자리에서 내가 말했다. "10년 동안 이런 적 없었는데 쉬는 게 진짜 처음이에요." 그러자 한 선배가 준엄하게 정정해 주었다. "육아휴직이 쉰다고 생각하나. 쉬는 게 아니다. 해 봐라." 앞으로 다가올 현실을 퍼뜩 마주한 순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몸소 겪고 있다.


 입사 10년 되던 날 시작된 출산휴가. 본업을 멈추겠다 선언하고 일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했다. 나는 무엇을 선언하려고 한 것일까? 지금 그 치열한 과정 중에 있다. 한 바퀴가 지나 지난 달, 우린 입사 11년을 맞이했다. 내 육아휴직은 진행 중이고 8명 모두 다행히(?) 업계에 남아 있다.


 오늘은 근로자의 날. 한창 일할 땐 출근한 기억 밖엔 없었다. 공무원은 아니지만 어찌 됐건 하루 뉴스를 만들어야 했으니까. 올해는 처음으로 육아 근로(?) 중이다. 피치 못할 미디어 노출과 떡뻥 유혹으로 시간을 번 뒤, 혹시나 아기가 수유 일지를 뜯어 먹을까 지켜보며 첫 글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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