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20년 지기가 내게 한 말
엄마가 되면 미래지향적으로 변할까?
선명하게 남은 순간이 있다. 20년 지기의 아기를 처음 보러 간 날이다.
매트 울타리를 잡고 잠시 일어설 때니까 돌도 안 된 아가였다. 내가 결혼하기 전, 아니 남편을 만나기도 전의 일이니 임신과 출산, 육아를 1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집 거실에 커다란 매트가 깔려있고 친구를 쏙 빼닮은 2세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초등학생 꼬맹이로 처음 만난 친구가 엄마라니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이날 친구와 아기, 나는 친구 집 앞 숲길에 산책하러 나갔다. 유모차를 능숙하게 밀고 나온 친구의 손엔 텀블러가 들려 있었다.
내 말에 친구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기 낳고부터 쓰게 됐어. 내 아들이 조금이라도 깨끗한 환경에서 살았으면 좋겠더라구." 기억 속 꼬꼬마 친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상상 못 한 일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다. 이날 하늘은 유독 파랬더랬다.
우리는 산책길을 걸으며 진로를 얘기했다. 퇴사를 고민하던 친구는 실제로 업무 강도가 덜한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아기 육아에 신경 쓰고 싶단다.
친구가 말했다. "우리 어릴 때 'S양 성공기'하자고 말한 거 기억나? 근데 내가 이렇게 바뀌었네."
그렇다. 성이 S로 시작하는 우리는 중학교도 같이 다니며 'S양 성공기'를 외쳤었다. 커리어 우먼을 꿈꾸던 친구가 육아를 강조하는 생경한 모습이 이어졌다.
엄마가 되며 달라지는 모습들. 이 친구만 변한 건 아니다. 이런 '생경한' 모습은 바로 옆에 있다. 2018년생 딸과 2020년생 아들을 둔 친언니에게서 비슷한 모습을 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유독 엄마가 된다는 게 상상이 안 갔던 언니. 엄마보다는 털털한 언니로서의 모습이 익숙해서일까? 놀랍게도 언니는 세상 스위트한 엄마가 되어 있다. 엄마가 그리 좋은지 두 조카는 엄청난 엄마 껌딱지다.
미혼이던 시절, 아기를 낳은 주변인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은 이렇다.
첫째, 무언가 자애롭다.
둘째, 주변 사람을 잘 챙긴다. 여행을 가면 양말을 챙겨주고, 밥 먹을 때 수저나 반찬을 건넨다.
셋째, 자식 대신 죽을 수 있다고 한다.
한 친구는 얘기했다. 예전엔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기를 낳고는 오래 살아야겠다는 거다. "내 새끼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겠어!" 농담을 더해, 남편을 대신해선 못 죽겠단다. 또 다른 동창 친구는 매일 아침 아기와 외출하기 전 미세먼지 지수부터 확인한단다.
내가 1순위였던 삶을 떠올려본다.
"문득 일도 건강도 사랑도 자기 발전도 쥔 게 없다는 헛헛함이 수년째 이어지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취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 으으 가을 타는 것도 아니고 뭐지ㅎㅎ 이런 생각도 여유가 있어서 하겠거니 생각하고ㅎㅎ" (2020년 9월, 내 SNS 글)
"1월, 업무적으로 미미했지만 다음 달엔 결실도 맺었으면 한다." (2021년 2월, 내 SNS 글)
나 자신과 일을 1순위로 두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퇴근 시간이 들쭉날쭉해 저녁 약속에 늦기 일쑤였던,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던 기자였다.
그런 차원에서, 엄마가 되고 육아휴직에 들어간 내게 처음 기대한 건 '넓은 시야'다.
텀블러를 언급한 친구처럼 미래를 생각하고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기. 1분 1초를 다투며 내 출입처, 내 기사만 신경 써 온 과거와 잠시 이별하기. 키워드로 '단독 경찰' '단독 검찰'을 수시로 검색하며 타사로부터 혹시 '물먹은 건'(첫 기사 출고를 놓쳤다는 업계 은어다.) 아닌지 확인해 온 날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던 모 선배의 울림 있는 조언을 되새기며 세운 목표다.
매우 바짝 노력하면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을 정도의 짬이 생긴 지금.
나도 친구처럼 이런저런 면에서 많이 달라졌을까? 변화를 느끼지만 아직 육아 초보라 단언할 순 없다. 식탁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옆에 다가와 안아달라고 칭얼대고, 안아서 의자에 앉히면 키보드로 달려드는 내 아기. 아기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나도 다짐한다. 내 새끼가 마음 편히 호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조금씩 일조하자!
남편과 함께 어버이가 되어 처음 맞이한 어버이날. 친구의 텀블러를 떠올리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