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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채윤 Oct 11. 2023

Tape 인서트

Epsode 1: 방송사에 첫 발을 딛는 그 순간

오전 10시 5분을 조금 넘긴 시간.


겨우 몸을 가누어 일어나 눈을 뜨고 싶은데, 동에서 남으로 넘어가는 그 위치에 내 방 창문이 떡하니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쪽 눈을 찌푸렸다. 이내 침대 옆에 올려 둔 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자 머리가 띵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한번 벌컥벌컥~ 목 넘김 소리가 내 귓가에도 들리는 그 순간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평소에 진동으로 해놓다가 어제 술김에 해제해 놓은 모양이다. 벨소리로 지정해 놓은 가수 임정희 - Music is life 후렴구가 온통 내 방안을 가득 채워 놀란 나는 마시던 물도 옷에 흘리고 말았다. 침대에 있는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010 - 7296 -.... 나는 몇 초간 갸우뚱했다.


그건 그렇고 어제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친구의 하소연을 들어주고자 몇 잔을 들이켰는지 방금 마신 물과 더불어 머리가 순간 어지러웠지만, 열흘 전 입사 지원했던 방송사 관계자라는 직감이 들어서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헤드헌터: 박홍근 씨 맞으시죠? PBC 방송사 TV제작기술국에 서류합격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나: 네? 아! 정말요? 너무 감사합니다.

헤드헌터: 12월 2일 면접이 잡혀 있는데 참석 가능하신가요?

나: 네 그럼요. 가능하죠!

헤드헌터: 12월 2일 수요일 여의도 PBS 본사 로비 앞에서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나: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월 2일 수요일 여의도 광장. 엊그제 내린 눈이 녹지도 않은 채 오후 2시가 넘어서  또다시 내리는 눈 때문에 도시 전체를 다시 하얗게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 철원에서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이면 하루종일 겨우내 치워서 지겨울 만도 한데, 고향이 부산인 나는 눈 내리는 것을 보는 게 흔치 않아서 눈을 좋아했다. 평소에 잘 신지 않는 홍창으로 제작한 구두와 태어날 때부터 원치 않는 두꺼운 종아리가 바지통을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임이 불편한 정장차림으로 걷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곤욕이었다. 구두 신고 뛰어다니는 사람들 정말 대단해. 특히 여성분들 10cm 가까이 되는 힐을 신고 중심을 어쩜 그렇게 잘 잡을까..?

이날 영하 -4도가 넘었던 날씨 탓에 눈이 내리고 있지만 온통 빙판 길이었다. 원래 이런 날이면 바닥이 많이 질기 때문에 뭔가 모르게 축축한 기분이 드는데 운치 있게 많이 내리는 눈 덕분에 마음 한편이 포근했다. 여의도 역 4번 출구를 나와 걷기 시작했는데 순간 중심을 잡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나 홀로 집에'에 나오는 도둑역할 해리가 케빈 집 계단에서 넘어진 것처럼 여의도 한 복판에서 영화 몇 편을 찍을뻔한 위기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겨우 그 여의도 광장을 지나갈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TV에서 봐왔던 PBC 방송사가 웅장한 기운과 모습으로 날 맞이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에서 면접을 보다니!" PBC 본사 앞 오픈 라디오 부스를 지나던 순간, 전화가 울렸다. 일주일 전 서류합격 통보를 주었던 헤드헌터의 전화였다.



헤드헌터: 여보세요? 박홍근 씨. 오늘 PBC TV제작기술국 면접 참석 가능하시죠? 어? 아! 오셨구나.

(로비에 도착해서 전화를 받았던 나는 로비 방문객실 근처에서 김유진 헤드헌터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나: 처음 뵙겠습니다. 박홍근이라고 합니다.

헤드헌터: 네 안녕하세요. J파운드 파견회사 HR 담당자 김유진 헤드헌터입니다.

나: 네? J파운드 파견회사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 PBC 방송사 서류 합격 한 거 아닌가요?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외로운 이방인

   파견계약직



일반 기업과는 많이 다른 방송사 건물 내부에 호기심 많은 나는 눈과 고개를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는지, 면접을 치르는 3층을 올라가는 내내 우유부단했다. 13번째 중 12 번째 배정을 받은 나는 준비해 왔던 면접 질문 리스트를 꺼내어 외우고 또 외웠다. 면접 대기실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제대로 준비를 해온 것인지 거의 대부분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심지어 졸고 있는 지원자도 있었다. '방송사 면접이 이렇게 긴장감이 없는 것인가?' 그때부터 뭔가 모르는 의문점이 내 머릿속에 감돌았다.


면접 시간은 대부분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오래된 방송사 내부 시설 때문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면접자 대기장소까지 들렸다. 2번째, 3번째, 4번째 그렇게 지원자들이 면접을 끝내고 나가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내 심장은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TV제작기술국 임원 비서는 면접 대기실에 들어와 나를 불렀다."12번째 지원자 박홍근 씨 면접장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긴 호흡을 한번 내쉬며 나는 면접 장소를 향했고, 두 번의 노크를 두드리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총 3분의 면접관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기술직군인만큼 근엄한 분위기와 다소 무서운 이미지를 가진 분들이 동시에 날 바라보니 애써 내려놓은 긴장감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김호진 부장: 박홍근 씨 되시죠? 오늘 처음 만났으니깐 간단히 자기소개 한번 해볼래요?

나: 아.. 음..

강수길 부장: 긴장하지 마요~

나: 네! 다시 해보겠습니다.



이때 날 강력추천 하신 강수길 부장님 덕분에 나는 마음 편하게 자기소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경력이라고는 컴퓨터를 조립해 본 것과 군대에서 통신장비를 다뤘던 것이 다였기 때문에 방송기술에 관련한 질문은 하지 않았고 지원동기와 일상생활에 대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질문해 주셨다.


이가 활짝 보이는 미소와 타고난 눈웃음이 보는 사람마저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강수길 부장님은 내가 긴장해서 겨우 대답한 것도 흔쾌히 잘 들어주셨다. 훗날 나는 면접을 잘 보지도 못했는데 왜 절 채용해 주셨냐고 여쭈어 봤더니 니 목소리, 말 한마디에 느끼는 게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에 드셨나 보다. 왜 그런 경우가 있지 않나. 뭔가 부족하고 서툴지만 챙겨주고 싶고 북돋아 주고 싶은 그런 애잔한 마음과 호감이 동시에 드는 사람. 강수길 부장님에게 나는 그런 지원자로 보였나 보다.


면접 초반부터 말 한마디 없던 맨 왼쪽 면접관 차승완 차장님은 "장비 같은 거 좋아해요?"라고 물어봤다. '장비 같은 것이라..' 표현이 참 퉁명스러웠다. 그리고 묵직한 한마디. 들어오면 하루종일 나랑 장비 들고 고치고 운용해야 하는데 괜찮냐고 물어봤다. 긴장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지만 뭔가 모르게 꼭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출입 게이트로 나가면 되지만 내 눈앞에 들어온 방송 스튜디오는 또다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나는 방송녹화가 없었던 스튜디오에 나는 몰래 들어가 볼 수 있었다. 30년은 족히 넘은 것 같은 방송 스튜디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특유의 향이 있다. 방금 전까진 내 구두소리가 복도를 매웠지만, 스튜디오에 발을 댄 순간 구두소리가 멈췄다.  특수 방음벽으로 처리된  100평이 넘는 공간에 다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기 자체가 조금 무거웠다. 그리고  내 키보다 더 큰 Standard 카메라가 8대가 사전 설치되어 있는 세트장 곳곳에 놓여있었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우와.." 내 목소리를 듣고 스튜디오 내부에 위치한 사무실에 나오는 관계자 때문에 나는 부리나케 도망쳐 나왔다.



나는 이날 면접을 보고 나서 파견계약직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고용형태가 있는지 정말 놀라웠다. 뉴스에서 짤막하게 나오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또다시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비정규직이 이제 나에게 다가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규직, 연봉직, 자체직, 업무직, 도급직, 자체계약직, 한시계약직, 프리랜서, 그리고 가장 아래에 있는 파견계약직. 방송사는 파견회사와 계약을 맺고, 파견회사는 이 계약한 방송사에서 근무할 인력을 뽑아 적재적소의 근무지에 위치시킨다.


나는 파견계약직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다행히 고향에서부터 친했던 여자 동생이 일반 대기업에서 파견계약직으로 사무직으로 근무했다고 했다. 나는 그 오랜만에 그 동생을 만나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파견계약직이 회사에서 어떤 위치인지,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고, 그 실체가 더 뚜렷해졌다. 식사자리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 입김이 서려오는 12월 자취방을 올라가는 언덕에서 또다시 생각에 잠긴 나는 혼잣말로 읊조렸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외로운 이방인이구만' 패딩에 손을 넣은 채 복싱선수처럼 몸을 움츠린 채 꽁꽁 언 빙판길을 조심하지 못하고 총총 거리며 걷다가 그만 제대로 넘어졌다.



사흘 뒤.


김유진헤드헌터: 박홍근 씨. PBC TV제작기술국 최종합격 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나: 아.. 네. 감사합니다.

김유진 헤드헌터: 출근은 12월 10일 날 하시면 됩니다. 그날 저와 함께 사무실 들어갈 거라서요. 로비에서 다시 만나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변동사항은 없으신 거죠?  

나: 네 없어요. 알겠습니다. 12월 10일에 뵙겠습니다!




                                     

                       -  VCR Story epsode:1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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