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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채윤 Oct 21. 2023

Tape 인서트

Episode 2: 낭만과 현실 사이

낭만을 끊임없이 주입시켜야 하는 공간


군 입대 6개월 전 부정맥시술로 무리하지 말아야 할 내 심장은 합격이라는 기쁨과 낯썬 곳에 대한 걱정이 팽팽한 경계선을 이루면서 나는 상상과 사색에 잠겼다. 넓은 단칸방에 나름 구색을 맞춰 넣겠다고 예쁜 데코타일, 벽지, 가구 들로 허름한 옥탑방을 오피스텔로 꾸며보겠다며 애써 노력해봤지만, 옥탑방을 낭만적으로 꾸미기에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 하지만, 옥탑방에서 나름 낭만을 꼭 누릴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혼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지금 이글을 보는 이가 갑자기 고양이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MZ세대가 아닐 것.) 그 것은 바로 현관문만 열면 바로 나와 바깥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옥탑방에 살면서 유일하게 좋았던 것은 바로 야경을 보면서 생각에 빠지는 것이었다. "내일 내가 PBC에 가면 뭘하는 걸까?" 이 한문장을 내머리 속에 띄우자 마자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는 그 추운 12월 겨울 날씨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두리번~ 두리번 한시간 동안 어슬렁 거렸다. 


낭만적으로 꿈을 꾸고 현실적으로 살아야 하는 곳이 옥탑방


난 생각이 많으면 늘 결과과 신통치 않았다. 생각 없이 움직일 때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많이 있다는 것을 주위에서 많이 조언해주었다. 이는 결국 내가 걱정이 많아서 안쓰러워 보였던 것 같다. 

 



평일 오전 사당역 당고개 행 열차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여의도 까지는 30분 정도의 거리이기 때문에 여유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서울 생활 2년은 아직 햇 병아리 였나 보다. 지방 촌놈 티를 벗지를 못한 것 같은 생각에 나 혼자서 민망했다.  오지 중에 오지인 철원에서 군 생활 하는 동안 깜빡하고 잊고 있었던 평일 오전 서울의 일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혹시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넓게 펼쳐진 서울 수도권 9호선 라인 중 가장 피해야 하는 4대 구역(역)이 있다다는 것을. 1호선 신도림, 2호선 강남역, 2호선 잠실역, 그리고.... 2,4호선 사당역. 어깨빵과 탄식이 절로 나오며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이 4 노선에서 출퇴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마 멘탈이 보통 멘탈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내 선배  중 에 있기 때문에, 확신한다. 오늘도 매일 같이 이 4개의 노선에 몸을 싣는 모든 서울사람들에게 가히 존경을 표한다. 진심..레알.. 레알마드리다.


사당역에서 처음 지하철을 타본 나는 열차를 타는 구간에 4 열로 10명은 넘게 서있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게 무슨 줄인고...?" 하니.. 에이 설마 ㅋㅋ 아닐것이라고 몇번을 혼잣말을 되뇌이던 나는 열차가 도착하자 마자 4열 종대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로봇 처럼 양 옆으로 비켜 나왔고 열차 안에는 문 앞까지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인파가 우르르 쏟아지는 광경을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입이 벌어 졌고 옆에 있던 중년 신사 한분이 내가 놀라는 모습에 피식 웃으셨고 동시에 그분과 얼굴을 마주보며 그냥 웃었다.  

사당역의 아침




방송공돌이가 되는 첫 날


구름 한점 없이 해가 쨍쨍한 12월 10일 오전 8시 40분은 1차 출근 전쟁 레이스를 마친 직장인들이 이미 사무실에서 하루 일정을 준비중이고 이 시간에는 빠듯하게 도착 하기 위해 허겁지겁 회사로 달려가거나 세월아~네월아~ 토스트 하나 입에 물고 커피 하나 들고 회사로 들어가는 천하태평 거리는 직원들이 어슬렁 거리는 시간. 나는 이들 사이로 PBC 본사 앞으로 뚜벅 뚜벅 걸어 갔다.  여의도 광장은 연일 계속해서 내린 눈 바닥 때문에 내 눈이  부셨다. 다시 PBC 앞에 서자 마자 잠깐 생각이 빠지고 말았고.. 웅장하다는 표현이 내 마음속에서 절로 나왔다. 이상하리만큼 벅차오르는 기분 덕분에 웃는게 어색한 나조차도 히죽 히죽 웃음이 나왔다. 어제 저녁 걱정과는 다르게 그냥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나는 자신있게 로비에 들어갔다. 로비에 들어서니 다시 방송사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향이 내 코끝을 강타했다.그 향이 싫지 많은 않았고 그냥 오묘 했다.  "건물이 오래되어서 그런가?" PBC는 40년이 다 되어간 건물이다. 외관 자체도 지금 건물 양식으로 좀 처럼 볼 수 없는 오래된 건축 자재가 봐도 봐도 신기 했다. 그렇게 로비에 비치 되어 있는 쇼파에 앉아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지나가는 수 많은 연예인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곧 바로 라디오 스튜디오 입구로 들어 가는 것을 보고 TV 에서만 봤던 연예인을 실제로 보았다는 것에 마냥 놀라기만 했다. 


그때 울리는 전화 벨소리 


김유진 헤드헌터: 안녕하세요~ 박홍근님. PBC로 출근은 잘 하셨나요? 제가 한 시간 뒤 도착 예정인데 우선 안내데스크에 접수하고 본관 3층 TV제작기술국 사무실로 찾아 가시면 되요.


나: 아.. 네네. 알겠습니다! 




일반 구조와는 너무나도 다른 방송국 건물은 내가 발 디디는 곳 마다 미로 같은 곳이었고, 처음 방문 한 사람들은 무조건 길을 헤멜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난 한번 가본 곳이나 한번 본 사람은 절대 까먹지 않고 또 처음 와본 길도 이상하게 잘 찾아 다녔다. 이번도 마찬가지로 한번에 3층 복도 끝에 위치한 TV제작기술국 사무실로 향했다. 무언가 인기척이 있을만도 한데 고요 하기만 한 그 정적을 내 구두 소리로 인해 깨고 말았다. 

뚜벅 뚜벅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 갔고 80년 대에 썼던 대형 전신 거울로 내가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잠깐 그 거울 속 나를 쳐다보고 있을 때 뒤에 누군가 뒤 따라 들어왔고, 나를 쳐다 보더니 인사를 건네었다. 


서호진 차장: 어이~ 이번에 시스템 실 보조 친구인가? 

나: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입사하게 된 박홍근 이라고 합니다. 

서호진 차장: (오른 손을 건네며) 반가워요. TV제작기술국 서무 서호진 이에요. 

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호진 차장: 어서 들어와요. 여기 시스템실 새로운 친구 왔네. 인사 들 해요~



흰머리가 곳곳에 자라고 눈가에 주름 때문에 50대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증명해 주는 분이셨지만, 패션센스와 그에 걸 맞는 향수를 선택한 서호진 차장님은 그야 말로 나이스 가이였다. 나는 곧바로 이분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 가니깐 국장님을 비롯하여 15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길고 넓은 독특한 구조의 TV제작기술국 사무실로 입성했다.  제작 기술 부서에는 1000명 가까이 되는 기술 인력들이 있기 때문에, 방송 경영 분야에서 파견 되거나 엔지니어 직군 중 순환 근무 형식으로 부서 내 행정업무를 도맡아 해야 하는 구조였다. 나중에 다시 언급 하겠지만 이 제작기술 행정 직군은 기술 본부 내에서도  실세에 있는 직원들만의 특권 같은 포지션이다. 그 작은 조직 내에서도 보이지 않는 서열과 네편 내편 가루는 것을 보면 참으로 덧 없다는 것을 느낀다.  방송사에서 최하 말단으로 일하는 파견계약직에 불과했지만, 국장님 부터 부장님 까지 차례대로 반겨주시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인사를 마치고 나는 다른 직원분을 통해 진짜 내가 근무할 장소를 찾아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5명의 근무자들이 있었고, 1명을 제외하면 모두 지~긋한 나이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그때 면접을 보았던 차승완 차장님이 보였다.



차승완 차장: 왔어요? 그때 봤었죠? 본인 자리는 여기니깐 앉으면 되고, 전임자 곧 출근 할거니깐 기다리면 돼요. 

나: (절망한 듯한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 . .

김형곤 팀장: 시스템 실 팀장 김형곤 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신현욱: 홍근씨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아.. 나는 고개를 약간 떨구며 실망했다. 하필 내가 면접에서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 바로 옆에 앉다니.. 나는 사실 절망적이었다. 너무 무뚝뚝하고 눈매도 매서웠으니깐. 그래도 인사를 해보면서 느꼈지만, 모두 좋은 분이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다시 울리는 전화 벨소리 때문에 나는 사무실 밖 복도에 나갔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자는 김유진 헤드헌터의 연락이었다. 로비 앞 사내 카페에 앉아 김유진 씨가 가방에서 꺼내는 근로계약서를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방송사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인사부 같은 곳에서 해야 하지 않나? 또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의심이 들어봤자 뭐하겠나.. 이미 파견계약직의 실체를 다 파악했는데. 일단 방송사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뿐이었고, 근로계약서를 살펴 보았다. 기본급과 식대 포함 금액이 1,3XXX... 음 그렇구나.. 생각하고 그때 부터 김유진 헤드헌터의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갑과 을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병과 병의 노예 '정' 이었다. 


       

                 일단 2년간 노예 같이 시키는 대로 해.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파견계약직 근로 계약서를 작성할 때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니 그야 말로 불 합리한 내용이 수두록 했다. PBC에서 일은 하지만, 소속은 J파운드로 일을 해야 하고 같이 한 공간에서 일하지만 급여는 최저시급으로 책정받아야만 하고 업무는 갑(PBC)의 지시대로 따르고 복지는 PBC의 복지를 따를 수 없다. 그리고 업무상 문제가 발생 했을시 사실여부를 따져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책임은 파견회사와 파견근로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뭐.. 그런 내용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서글픈 계약서 내용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HR 인력업체는 이렇게 운영되고 한사람 한사람의 파견근로자는 파견 회사의 수수료가 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렇지만 파견계약직의 현실은 너무나 절망적인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한다. 정규직 직원들이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그 일을 시켜서는 안되는 일을 인력업체에 의뢰를 한다. 그리고 그 의뢰를 통해 방송사에 들어오게 되면 잡일이 시작된다. 그래서 채용사이트에 방송&미디어 직군을 보면 80% 이상이 전부 비정규직이다. 그렇게 나는 1년 +1년 PBC에서의 파견계약직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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