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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성 Jun 19. 2024

토지사유제 확대와
토지사용권의 분화

중국부동산공부(18)-근대중국의 토지사상과 토지제도(5)

토지제도에 대한 관심은 응당 토지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인간과 토지의 관계 및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가 되어야 하며, 이 같은 관계에 대한 고찰은 토지의 소유권과 사용권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이글에서는, 이 같은 문제 인식하에 중국의 고대와 근대(중공 창당 이전 시기까지)의 토지제도 변천 과정을 국유제 쇠락과 사유권 확장, 그리고 토지소유권과 사용권의 분화라는 관점에서 고찰 및 정리했다. 


첫째, 중국 고대의 토지사상은, 정부의 정책 결정에 직접 영향을 준 토지제도 방안과, 공상(空想) 또는 이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흘러든 토지이상(土地理想)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내용 면에서는, 신흥 봉건토지관계의 확정, 봉건토지점유 상황의 조절, 토지개발이용의 촉진 등 3대 사조(思潮)가 중국 고대 토지사상의 주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근대의 토지제도와 토지사상은 기본적으로 고대의 토지제도와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중 중요한 내용은 태평천국의 천조전무제도에 있는 경자유전 사상과 평균지권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중국 근대의 토지제도 구축과 그 후의 중국의 국가 형태 형성과 사회경제 발전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둘째, 중국 고대에서 근대 시기를 거치면서, 토지 국유 사상과 제도는 부단히 약화·쇠락했고, 개인소유권은 부단히 강화·확대되었다. 중국 고대의 전통사회에서는 ‘천하왕토(天下王土)’ 사상, 즉 토지국유 사상이 줄곧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고, 각 왕조의 토지제도에서 중요한 목표는 개인의 토지소유와 토지겸병을 통한 토지소유 집중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개인 투자와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토지 사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성공과 실패, 재개입과 재실패 과정을 반복해왔다. 즉, 토지국유제에 대해 개인의 천생적인 토지소유 욕구로 인한 도전이 지속되었고, 국유제 쇠락과 사유제 강화 및 확대 추세가 되풀이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정전제(井田制)하의 농촌공사(农村公社)에서 단위면적당 생산력이 제고되면서 공사(公社)에 속한 농민이 공전(公田)의 공동경작 경영 방식에 저항하고, 사전(私田)을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사회 분업과 상품경제의 발전이 촉진되면서 농지의 사유화가 더욱 촉진되었다.


국가권력이 토지 사유화와 토지겸병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그 당시에는 토지사유권이 위축되지만, 다시 일정 시기가 지나면 사회경제적 조건과 국가 권력의 성격 및 권력관계가 바뀌면서, 다시 토지 사유화 바람이 불고, 토지거래와 토지겸병에 대한 국가 개입과 통제도 다시 느슨해지는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군중봉기

한편, 각 왕조는 토지거래와 토지겸병 등으로 인해 토지를 상실한 농민들이 유민이 되어 떠돌고 농민 봉기가 발생하는 문제를 중시했으므로, 국유제를 기초로 하는 ‘정전’과 ‘균전’ 사상, 그리고 토지거래와 토지겸병을 제한하는 한전 사상도 일정한 역할과 영향력을 유지해 왔다. 

근대의 태평천국 천조전무제의 경자유전 사상과 쑨원에 의해 계승 및 발전되어 국민당 토지정책의 강령이 된 평균지권 사상의 기초도 ‘정전’과 ‘균전’ 사상이었다. 특히, 평균지권 사상은 타이완 토지정책의 강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1950~60년대 타이완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셋째, 토지의 사용권이 소유권에 부속된 상태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상태로 분화되었고, 사용권을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어왔다. 

봉건사회 전기의 토지점유 형식은 국유제, 지주소유제, 소농소유제(小农所有制)였다. 그러다가 명·청 시기에는 전술한 것 외에 다시 토지합작주식소유제(土地合股所有制)가 형성되어, 그때까지의 단일 필지에 대한 단일 소유자 형식을 돌파하고, 소위 “일전이주” 또는 “일전삼주”와 같이, 단일 필지를 다수의 주주가 공동 점유하는 형식이 출현했다. 

봉건사회 전기에는 귀족 지주의 비중이 컸으나 명·청 시기에 이르러서 특히 “장정을 토지에 할당 산입(摊丁入地)”한 이후에는 점유 토지의 비율과 수량 면에서 모두 보통 사람인 평민 지주(凡人地主)의 비중이 커졌다. 임대 위주 경영에 전적으로 의지한 전통적인 귀족지주와는 달리, 평민지주들은 고용경영 방식을 채택하거나, 임대와 자영 경영 방식을 결합했다. 

토지매매 측면에서 보면, 중국 봉건사회 전기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은 후에만 토지를 팔 수 있었으나, 송, 원 이후에는 정부 개입이 급속히 감소했다. 명·청 시대에 이르러서 토지는 “돈 있으면 사고, 돈 없으면 파는(有钱则买, 无钱则卖)” 자유매매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 토지재산권이 분화, 세분되면서 토지의 소유권 외에 용익물권(用益物權) 성격의 토지사용권이 강화되어왔다. 이는 생산력 발전과 경제성장에 따라 증대된 토지가치와 지권의 일정 부분이 사용권 분화와 함께 이전해 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청대에 이르러서는, 토지재산권의 분화가 더욱 활발해졌고, 거래 객체도 (토지의) 소유권 외에 용익물권 성격의 토지사용권으로 다양화되었다. 

농민 봉기

토지사용권(경작권)의 분리는 진·한 시기에 토지 사유를 전제로 시작되고 발전해 온 소작제를 통해서 고찰할 수 있는 바, 최초에는 분익제가 시행되었고 서서히 정액제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지주와 소작인 관계가 인신예속(人身隸属) 관계에서 보다 느슨한 인신의부(人身依附) 관계로 발전했고, 이러한 관계도 더욱 느슨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청대에 이르러 소작농의 법률적 지위가 중국 봉건사회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점에 도달했다. 토지를 상실하고 지주와 계약한 기간에 따라 구분된 단공(短工)과 장공(长工)의 법률적 지위도 고용 일꾼(雇工人)을 거쳐서 보통 사람으로 바뀌었으며, 농민 봉기의 목적도 “인신자유 쟁취”에서 “토지소유권 쟁취”로 바뀌었다.


넷째, 이러한 토지제도의 역사적 변화 과정은 국가재정 수입의 근간이 되는 토지조세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각 왕조가 건국 초기에 사유토지 몰수 후 재분배 정책을 채택한 주요 이유는 건국 과정에서 소요되는 재원 조성을 위해서였고, 왕조 중후반기에 호족(豪族)지주의 토지 사유화와 토지겸병을 방관 또는 용인한 주요 배경 및 이유 중의 하나도 조세 수입 증대를 위한 규모경영과 생산력 증가를 위해서였다. 

또한, 토지분배의 균형 정도, 노동력의 다과(多寡) 및 농업생산기술 발전에 따른 단위노동당 생산성 향상 등의 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는 상업과 시장의 발전에 따라 교역 비용이 감소하면서 토지수익이 증가한 것과도 연관된다.

농민의 투쟁

고대의 토지조세는 진대(秦代) 이래 각 조 각 대에 그 명목이 매우 많았으나, 종합하면, 토지와 노동력을 대상으로 하는 토지세(田赋)와 정구세(丁口税) 두 종류로 대별할 수 있다. 지대 형태 측면에서 보면, 전기에는 실물분성지대(实物分成租) 위주였으나, 송대에 학전 등 공전이 출현하면서 실물정액지대(实物定额租)로 되었고, 명·청시기에는 일반 민전에서도 실물정액지대가 확산되었다. 특히 청대에는 실물정액지대가 분성지대보다 보편화되었다. 

또한 화폐지대가 발전하면서 주인과 소작인 관계가 점진적으로 (경제를 초월한 강제 관계에서) 경제 관계 위주로 대체되었다. 


한편, 개국 당시의 토지과세는 대체로 가벼웠으나, 정치의 부패와 객관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농민의 신상에 미치는 압력과 부담이 가중되었다. 결국에는 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며, 왕조가 교체되는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이 같은 역사는 현재 중국 지방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농촌집체토지 유전 문제의 본질과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즉, “공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는 추세 속에 증대해 가는 농업과 비농업 부문 간의 산출 가치 차이로 인해 유전되고 있는 토지의 가치 증가분을 여하히 지방정부의 재정수입 증대와 연결할 것인가?”라는 점과, 동시에 이 과정에서 토지사용권과 관련된 농민의 권익 보호가 핵심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토지법 공포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신중국) 출범 이후 60여 년간 중공이 채택 및 시행한 토지정책과 제도의 흐름도 토지소유권에 대한 국유제와 사유제, 그리고 소유권과 사용권을 둘러싸고 진행된 역사적 경험과 일정 부분 같은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즉, 신중국 출범 이후 사회주의 국공유 토지소유제를 확립했으나, 개혁·개방 이후 농촌에서는 토지사용권(경영권)을 집체소유권에서 분리해 농호별로 도급 및 분배해주었고, 도급받은 농촌토지사용권의 유전 문제에 대한 대책이 최대 현안 정책 과제 중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즉, 농촌에 이어서 도시의 국유(全民所有) 토지사용권도 션전(深圳)경제특구 등에서의 실험 단계를 거쳐서 사유화·상품화되어 거래되고 있으며, 주거용지의 경우는 2007년에 제정된 ‘물권법(物权法)’ 제149조 규정에 의해 사용권 출양 기한 만료 후에도 연장을 보장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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