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건강하게 나를 지키는 법
제주살이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환상의 나라에서 환장의 나라로 바뀌어버리는 순간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는 나에게 희망을 보여준 곳이다. 참으로 다양한 일을 했다.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 대한 기대감과 자존심을 버렸기에 가능했다. 경쟁을 하지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내 안에서 만족감을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버릴 것 하나 없이 모든 순간이 배움이었다.
일과 쉼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당연히 언제나 승자는 일이었다. 일에 지쳐서 떠나온 제주인데 서울에서보다도 더 빡빡한 삶을 살게 될 줄이야. 정신없이 해치워내듯이 일을 하다보니 당연히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곧 마흔이 코앞이다. 내 몸은 이팔청춘이 아닌데 내 마음만은 20대였던것이다.
또 코로나에 걸린 사람? 저염!
한 번의 독한 감기를 보내고 난 다음엔 또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또로나 라니...
봄부터 여름까지 참 부지런하게도 아팠다. 프리랜서는 아프면 더 서럽다. 병가를 내면 내 밥줄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에 참아내야 한다. 하지만 성대가 말썽을 부리는 순간 모든 일이 스탑 되는 게 내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방구석에서 약봉지를 눈앞에 두고 하염없이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주정도 모든 일들이 스탑 되었고 친한 친구의 결혼식조차 가지 못했다. 제주에 오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서울에서도 내내 버텨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게 바다 건너 제주에 왔다고 해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낭만스러워지진 않는다. 여전히 나는 버텨야 했고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와 싸워야했다. 언제나 친구들과 힘내 견디자 좋아질 거야 라는 말들을 주고받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말들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난 어디까지 힘내야 하는 거지? 그럼 나아지는 상황이 오는 걸까?
그래서 결심했다. 힘내지 말아야지!
난 지난 20여 년간 잔뜩 힘주면 살았던 내 삶의 방식을 조금 바꾸어 보기로 했다.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던 to do 리스트 작성을 멈췄다. 내일의 내가 조금은 부족하게 못나게 살아내어도 너그러이 흘려보내주기로... 제주까지 와서 나 자신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숫자가 바뀌었을까 봐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는 걸 멈췄다. 그 대신 먹고 싶은걸 맘껏 먹고 더 많이 움직였다. 이른 아침에 호기롭게 일어나 명상을 하다 잠들어버리는 이런 나여도 나 자신은 지금 충분히 대견하고 건강하게 살아내고 있다고 위로해 준다.
가만히 나를 위해서 생각해보려 한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게 아닌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본다. 40이 다 되어가도록 나는 이토록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을까.. 이런 아쉬움도 든다. 아쉬움도 잠시 난생처음 겪어보는 속도로 찬찬히 나를 들여다보니 내 인생의 2막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난 윤슬을 참 좋아한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서울에선 자주 볼 수 없었던 윤슬을 제주에선 더 자주 가까이 볼 수 있다. 반짝이는 보석보단 반짝이는 잔물결이 아직은 좋다. 내일은 윤슬을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