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에 영어권 나라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학창 시절 가장 먼저 포기한 과목이 무엇인지 얘기해 보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영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를 못하니 해외여행을 나갈 생각도 당연히 없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환상조차 없었으나 꽃보다 청춘을 보고 뒤늦게 친구와 함께 25살의 나이에 둘 다 난생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어 라오스로 떠난 게 우리 인생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 이후로는 몽골, 대만, 베트남, 일본 등 영어를 쓰지 않는 곳만 골라 다녔다. 그만큼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강했다.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는 나도 그쪽도 영어를 적당히 못하니 간단한 영어로만 소통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고 여행을 하겠는 가라는 생각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왜인지 모르겠으나 외국인들이 무서웠다. 엄마는 내가 어려서부터 영어를 포기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했다. 원어민 선생님이 있는 어학원도 다녀보고 등교 전 눈을 뜨자마자 받는 전화영어도 해봤다. 그 밖에도 파주 영어마을에 데리고 가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했는데 아무 말도 못 한 채 아이스크림을 샀는지 못 샀는지는 기억도 안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또 한 번은 친구네 가족 중에 외국인이 있어서 좋은 기회로 핼러윈 행사에 초대되었다가 5살도 안 되는 외국인 아기들도 까르르하고 커스텀 옷을 입고 즐기는걸 울고불고 난리부르스를 피워 제일 가벼운 단계에서 포기해 버렸던 것들이 그 예이다. 그런 내가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와 있다니 정말이지 점점 더 한 치 앞도 모르겠을 인생의 연속이다. 나는 계속 영어를 피해 다녔으나 취업의 문턱에서도 회사를 다니면서도 영어는 끊임없이 나의 장애물이 되었다. 비교적 영어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직무였음에도 한국에서 더 나아가려면 영어는 늘 필요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항상 더 나은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그 시기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발전하고 싶으나 한계에 부딪혀 멈춰있는 기분이었달까. 어느 날 본인은 서른에 어학연수를 포기했던 것이 서른 중반에 되돌아보니 아쉬움으로 남았다며 외국에서 영어공부를 해보는 건 어떻냐는 조언에 이거다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삼십 대가 충분히 젊은 나이이지만 딱 서른 인 지금이 지나면 결정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강한 도전 욕구가 일었다. 이십 대의 나는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한 도전이었다. 영어라는 장벽 앞에 이미 너무 많이 무너졌기에 앞자리가 바뀌는 기념으로 평생을 포기했던 영어공부를 해볼까 하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고 운이 좋게도 약 일주일 만에 인비를 받았다. 그렇게 난 지금 캐나다 밴쿠버에 와 있다.
캐나다 출국 일주일 전까지 출근을 하며 1년 동안 못 볼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나니 정말 캐나다에 나 홀로 와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외여행 중 영어권을 가본 적이 없고 항상 친구나 가족과 함께였는데 혼자서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고 심지어는 경유를 해서 영어권 나라에 와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한걸음한걸음이 긴장되고 두려웠다.
다음의 이야기들은 밴쿠버에 도착한 직후 씬넘버 발급과 뱅킹계좌개설, 캐나다 운전면허증 발급 등의 미션을 스스로 완수하며 일어난 몇 가지 에피소드이다. 이미 4개월이 지난 이야기라 그때만큼의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그 순간에는 하나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챌린지였는지 모른다.
캐나다 운전면허증 발급
캐나다에서 운전을 할 생각은 없었으나 여권을 신분증으로 들고 다니려니 잃어버리면 한국에 어떻게 돌아가지부터 이 뒷수습을 영어로 어떻게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캐나다에 가기 전부터 알아보고 영문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갔다. 캐나다 운전면허증으로 교체가 가능하다고 하여 인터넷으로 준비물을 확인해 모두 챙겨 전날 예약 후 어렵게 찾아간 건물 내부의 ICBC Driving Licensing에서 준비한 서류인 비자, 여권, 영문면허증을 모두 제출했다. 직원분은 드라이브레코드가 있는지를 물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황하여 식은땀을 흘리는데 드라이브레코드를 그대로 직역하니 운전기록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여기서 미스언더스탠딩으로 나는 기록에 포커싱을 맞췄다. 그렇게 나는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사진첩을 뒤지다가 재작년 운전면허를 따면서 기록해 업로드한 유튜브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직원분은 아니라며 번역기를 켜라고 하셨고 트랜스퍼를 켜봤자 드라이브레코드가 드라이브레코드일 것이겠기에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싶어 인터넷창으로 검색을 하자 운전경력증명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그 자리에서 정부 24로 다운을 받아 겨우 캐나다 운전면허증 발급을 받을 수 있었다.
캐나다 은행계좌 개설
한국에서 트래블로그를 발급해 왔으나 캐나다에서 일을 구해 급여를 받으려면 캐나다 현지 은행계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현지 유학원 사무실에서 한국인직원분을 통해 계좌를 개설했고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체크카드 또한 사무실에서 즉시 발급을 받고 비밀번호만 가까운 은행지점에서 설정하면 된다고 했다. 덧붙여 어느 지점에는 한인 텔러도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성격 급한 나는 사무실에서 발급받은 즉시 나가 보이는 해당 은행에서 무작정 외국인 직원에게 비밀번호 설정을 요청했다. 며칠 전 마트에서 결제를 하는데 "OK" 버튼을 눌러야 넘어가는 것이 있었기에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OK"를 눌렀다. 그러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난 뒤 눌렀어야 할 버튼을 아무것도 누르지 않은 채 눌러버려 확인차 두 번째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오류가 발생했다. 무언가를 증명해야 새로 비밀번호를 설정할 수 있었던 것 같으나 이미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상담직원보다 높은 직급으로 보이는 사람까지 붙어서 이야기를 했다. 어떤 카드인지를 물어봤던 것 같으나 한국어로 쓰여있는 안내문 이외에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캐나다에 언제 왔는지를 물어봤고 지난주에 왔다고 울상으로 이야기하니 새로운 비밀번호를 설정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캐나다 로또
마지막 에피소드로는 가자마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인터넷 로또 구매를 시도한 일이다. 한국카드인 트래블로그는 카드등록이 계속해서 문제가 생겼고, 잔액이 없는 캐나다 현지 체크카드로 테스트를 해볼 심산으로 구매를 시도했는데 카드등록이 가능한 것을 확인했으나 잔액 없는 체크카드가 결제가 되며 마이너스 통장이 되었다. 은행계좌 개설 시 마이너스 통장임을 설명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캐나다에 오자마자 마이너스 5달러의 잔액을 보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슨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로또구매를 취소해도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나는 로또 사이트의 고객센터를 통해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했고 알고 보니 환불 계좌 세부정보에 샘플 데이터를 입력했던 것이다. 아마도 보고 따라 한다는 것이 내 계좌정보가 아닌 샘플 데이터를 적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계좌를 다양한 방법으로 증명해야 했고 현지 은행 계좌 2개와 체크카드, 그리고 한국 신용카드의 소유권증명 은행에서 발급받아 제출해야 했다.
몇 개의 에피소드들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며 4개월이 지난 지금 그렇게 해서 영어를 결국 극복했는지 해피엔딩 여부를 이야기하자면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새드 ing이다. 아직 끝은 안 났으니까. 어학원 3개월을 다녔으나 생각보다 일취월장하진 않았고, 더욱 안타깝게도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외국에서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좀 더 비극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결국 가져온 돈을 거의 다 쓰고 먹고사는데 급급해져 한인 잡을 구했고 지금은 약간 방향성을 잃은 상태이다. 그러나 나의 캐나다 생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돌고 돌아한 치 앞도 모를 내일과 미래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