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기 싫은 배려는 제발 베풀지 마세요
그간의 행복한 에피소드들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가장 최근 겪었던 기분 나쁜 이야기로 캐나다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왔으나 잡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생활비는 예상했던 예산을 훌쩍 뛰어넘어 당장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로컬 시장에서 드롭을 하고 도전하다 약 2주 만에 한인 잡을 구하게 되었다. 인터뷰 날 외주업체 사장님을 점장님으로 오인해 말을 걸었고 그렇게 내 불행이 시작되었다. 외주업체에도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처음 보자마자 내가 마음에 들어 점장이 오지 않았다면 인터뷰를 보지 말고 돌아가 본인과 일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 당시에는 일을 구하는 게 너무나 급급했기에 첫인상을 좋게 봐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한인 잡이 확정되는 날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 이메일은 왔는지, 차 한잔 할 수 있는지. 여행을 가는 날이라 어렵다고 답했으나 통화가 가능한지 계속 연락을 하셨다. 이때까지만도 그저 주변에 일 구하는 사람이 없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줄로만 알았다.
일을 시작하는 첫날 계속해서 일은 할만한지 말을 거시더니 “일 끝나면 연락해요.”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일하는 중이라 확인하지 못했었다. 일이 끝나자 잠깐 사람 구하는 일로 얘기를 나눌 줄 알았으나 차를 타고 이동해 저녁을 먹는 거 괜찮은지 맥주 한잔이 괜찮은지를 물어보셨다. 첫날이라 정신이 없던 와중에 당황하여 상관이 없다고 했고 그렇게 저녁과 술 한잔을 하게 되었다. 캐나다에 온 한국사람들은 먹고살기가 급급하고 여유가 없어 이렇게 저녁을 사주는 것이 흔치 않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말은 했으나 내가 언제 사달라고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는 얼마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신지, 연락을 자주 하며 친구처럼 지내자는 말을 하셨다. 와이프가 있으셨고, 딸과 아들이 있고 손주가 있는 할아버지셨다. 갑자기 밥을 사주시고 갑자기 술을 사주셔서 먹고는 왔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녀와서는 약속이 있다고 하거나 저녁은 감사하지만 괜찮다고 거절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말을 편하게 하겠다고 하시며 함께 일하는 것도 아닌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내가 한인 잡에서 힘들게 일하는 게 안타까워 본인과 함께 일하길 바랐다고 얘기하시는데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웃으면서 네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말로 호응했지만 집에 돌아와서 우울감이 너무 깊어졌고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고심 끝에 앞으로는 저녁이나 차를 마시는 등의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알겠다고 하시고는 한동안 본체만 체 하셔서 나로서는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창고 앞에서 마주쳤을 때 그날 그렇게 직접적으로 앞으로 이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한 게 너무도 기분이 나쁘셨다고 했다. 본인을 오해하지 말라며 잘 지내자고 하셨다. 캐나다에서 이렇게 저녁을 사주는 게 흔하지 않다며 그날 밥값이 얼마가 나왔고 딸 같아서 힘든 일 하는 게 안쓰러워서 그러셨다고 했다. 나는 왜 내가 본인 딸같이 느껴져야 하며 밥을 사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굳이 퇴근 후 밥을 사주시고는 앞으로는 불편한 자리를 안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에 발끈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우리 아빠가 어디 가서 딸 같아서 잘해주는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나는 아빠에게도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우리한테나 잘하라고. 제발 본인 딸아들이 있고 손주가 있으면 본인 가족들한테만 잘해주시라. 왜 본인이 생각하는 선의에 내가 감사해야 하는가. 그 자리가 불편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에 기분이 너무도 안 좋았다는 말이 당최 내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고방식 같았다. 왜 내가 처음 만난 할아버지와 둘이 밥과 술을 마시며 본인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듣고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정말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며칠 전 내가 베푼 배려에 대한 글을 썼었다. 내 딴에는 선의라 생각한 것이 상대방에게 아닐 수 있음을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만일이라도 그분 말대로 본인이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진 좋은 어른이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며 첫 출근한 사람을 차에 태워 저녁과 술을 사준 본인만의 배려에 다음부터 그러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난 뒤 기분이 나쁠게 아니라 상대방이 불편했을 수 있겠구나 혹은 본인이 실수한 게 없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기분이 나빠서 얼굴도 보기 싫었다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준 적이 없는 저녁을 왜 원하지도 않는 나한테만 사주셨는지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라고 내 기분과 다르게 공손하게 말했으나 전혀 죄송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았다.
이후 화해하자며 건넨 사탕은 진짜 역겨웠다. 일하는 공간에서 내가 하는 일과 가장 무관한 사람이 어렵게 구한 일을 당장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나는 질문하고 싶다. 이게 정말 나를 위한 배려가 맞는지. 영어를 배우기 위해 견문을 넓히기 위해 캐나다에 온 나를 불쌍히 여기며 밥 한 끼 술 한잔 사주며 딸 같은 마음에 힘든 일 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이 내가 선택해서 열심히 하는 일을 얼마나 하찮은 일로 만들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을 발견한다 한들 다시 또 화를 내며 배은망덕하다고 할 사람이었다. “배려 :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걸 배려라 할 수 있는지 그 정의에 대한 혼란이 생겼던 경험이었다. 제발 상대방이 받기 싫은 배려는 베풀지 마세요. 나를 우리 엄마 아빠의 딸에서 뺏어가지도 마세요. 왜 내가 그쪽 딸 같아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