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의 첫 번째 워킹을 마치며
2달이 조금 안 되는 약 7주간의 밴쿠버에서의 첫 워킹데이가 끝나가고 있다. 오기 전에는 한인 잡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겠다고 했지만 결국 최후의 보루까지 갔다. 생각보다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고 서너 번의 인터뷰 기회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구했던 한인 잡은 레스토랑이 아닌 한인마트 식료품 재고정리 파트였다. 평소에도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고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잘 맞는 일이라 생각했다. 나름 힘도 센 편이라 생각했지만 8시간을 서서 짐을 옮기고 재고를 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퇴근할 때쯤이면 발이 내 발 같지 않았고 한동안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서 물건을 집는 것도 어려웠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어떤 요령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나는 내 체력과 신체를 온전히 소비했다. 손가락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 때쯤에 친구에게 이 고민을 이야기하니 "너는 항상 100%로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년 넘게 크로스핏을 함께 했던 친구였는데 나는 항상 100% 그 이상을 하려고 달려드니 다쳤고 그 친구는 본인의 80%만 에너지와 힘을 사용했다고 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사실 어떻게 하면 나의 체력과 에너지를 적정선으로 유지하며 일과 운동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저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크로스핏을 하면서 허리를 다쳤고 1~2주간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 능력의 80%만 쓰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도 운동을 하기 위해서도 맞았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어쩌면 이 깨달음도 다시금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아마도 계속해서 이야기가 다른 길로 셀 테지만) 한인마트 식료품 재고정리 또한 나는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계속해서 할 일을 찾았고 바쁜 요일과 안 바쁜 요일이 있었는데 바쁜 요일이 몸은 힘들어도 시간도 빨리 가고 일도 더 재밌었다. 안 바쁜 요일은 지나가지 않는 시간을 애꿎은 시계만 계속 들여다보며 온갖 잡생각만 하며 보냈던 것 같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팠지만 그중에서도 엄지손가락이 유난히 아팠던 때 이후로 나는 앞서 말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주 5일 8시간씩 재고를 채우는 일은 체력적으로 소모가 많이 되었고 체력 소모와 더불어 신경도 많이 예민해졌던 것 같다. 그만두어야 할 시기를 2주 남기고 이야기를 꺼내야 했을 때는 2달도 안 돼서 그만두겠다고 하면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안 좋은 시선을 받을 것만 같았다. 이 일을 계기로 생각해 보니 나는 참 오해를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나는 늘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안 좋게 보겠지,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겠지를 지레 짐작하고는 홀로 침울함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기분 좋게 말을 건네거나 내 생각과 달리 나를 싫어하지 않으면 그 한마디에 모든 걸 잊고 슬픔이에서 기쁨이로 벗어난다. 여전히 잘 고쳐지지 않는 안 좋은 습관 중 하나이지만 아무튼 이번에 일을 그만둘 때도 역시나 나는 지레짐작으로 인터뷰 당시 오래 일할 사람을 뽑으신다 하셨는데 얼마 일하지 않고 관두는 별로인 사람이라 스스로를 낙인찍어버렸다.
그러나 이사 문제로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난 뒤에도 여전히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너무도 잘 대해주셨다. 그러니까 나라면 아마도 서운해하고 신경질을 낼 수 있었을 텐데 팀장님께서도 점장님께서도 모두 평소처럼 대해주셨던 것이다. 여전히 쉬엄쉬엄하라고 수고했다고 고생이 많다고 말씀해 주시는 그 한마디에 나는 정말 감사하고도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식료품팀은 아니지만 평소 도움을 많이 주셨던 야채팀의 다른 나라국적을 가진 팀장님께도 다음 주까지만 나오고 그만두게 되었다는 말을 했을 때 오픈부터 지금까지 7년간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나처럼 끊임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심지어 남자직원들을 포함해서라고 했을 때는 그 어떤 말보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큰 칭찬으로 느껴졌다. 정확한 워딩들이 기억나지 않지만 영어로 Never seen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는 그동안 열심히 한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 몸이 아프고 마음이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영어로 대화를 해야 했기에 고마움을 자세하게 표현하지 못했지만 항상 일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마음이 불편한 이야기들을 전혀 하지 않는 남자어른이었다. 가끔 그곳의 다른 부서 한국 남자어른들이 이곳에서 식료품 재고정리를 하는 게 안쓰럽다며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 것이냐고(지난번 포스팅과 연관이 있지만 한 명이 아니었다) 듣기 거북하고 불편한 말들을 팀장님, 점장님, 야채팀장님은 하지 않으셨다. "이 일을 하는 게 안쓰럽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 것이냐" "딸 같아서 하는 챙겨준 것이다" "어려 보인다" 등 이 외에도 다시 생각해도 부담스럽고 불편한 말들을 하지 않고 오로지 일적으로 대해준 그들에게 감사했다.
확실히 재고정리는 힘든 일이었지만 분명히 배울 점들은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매업 유통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매주 변경되는 세일 품목과 세일 품목들을 어떻게 배치하는지 학생들의 방학과 개학시즌에 맞춰 새로 입고되는 과자 품목들, 재고의 양에 따라 물건을 어떻게 바꿔 배치하는지 등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떤 패턴으로 물건들이 발주되는지와 발주와 매출의 연관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리고 확실히 사무실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보다는 분명 내가 더 잘하는 일인 것도 알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테트리스"였던 나에게 라면과 과자코너에서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고, 재고정리를 하며 빈 상자를 만들어내고, 배치를 조금씩 변경하는 것은 은근 뿌듯함을 주는 업무들이었다. 그래서 일이 없는 날보다 재고가 들어오는 날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늘 그렇듯 항상 그만두려고 하면 시원섭섭한 아쉬움이 드는 것 같다. 잡을 구하지 못했을 때는 정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마음이다가도 막상 일을 구하고 나면 휴일만 미친 듯이 바라보고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이 모순된 마음을 항상 알면서도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다. 아쉬움 가득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밴쿠버에서의 첫 잡을 짧고 굵게 마치며 한 달 후 가게 될 토론토에서는 조금은 그 순간을 즐기고 감사하며 행복한 워킹홀리데이를 보내기를 바라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