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찝찝한 상태는 싫다. 그렇다고 막 적극적으로 깨끗하게 쓸고 닦고 하는 부지런함도 없다.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처음부터 더럽히지 않는 것이다. 기름 청소와 설거지거리를 생각하면 요리도 그냥 안하게 된다. 최소한으로 물을 튀기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불편한 자세로 세수를 한다. 땀이 나는 건 싫으니 그냥 움직이지않거나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그렇게 귀찮은 것을 다 제하고 나면 아주 조그맣게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반면 아주 거침없는 사람들이 있다. 주방 도구를 있는 대로 꺼내가며 지글지글 척척 윤이 나는 요리를 만들어낸다. 그냥 아무 데나 털썩털썩 앉고 눕는다. 호기심이 생기는 건 이것저것 다 만져보고 땀으로 겨드랑이가 젖도록 뛰어다닌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거의 세 배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손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 그냥 팔짱을 껴버리는 태도는, 사실 사는데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지 않으려는 사람한테 잡히는 건 없다. 그냥 멈춰있는 주변으로 시간이 스치고 흘러갈 뿐이다.
그러다 팔짱을 풀 때가 있다.
처음으로 땀을 제대로 흘린 건 크로스핏을 시작했을 때였다. 그전까지는 수영을 꽤 열심히 했었는데, 좋아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일단 땀을 흘리지 않고, (흘리겠지만 잘 모르고) 수영복만 잘 빨아서 널어두면 되니 운동복 빨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러고 어쩌다 크로스핏이란걸 시작했는데, 매일매일 속옷부터 운동복에 양말까지 빨래가 한 무더기가 더 나오고, 하루에 샤워도 두 번씩 해야 했지만 그렇게 더러운 내가 너무 좋았다. 땀을 많이 흘릴수록 쾌감이 생겼다.
요즘은 테니스를 치는데, 여름엔 아주 땀 냄새가 지독하고 귓구멍에는 모래가 끼고 난리가 난다. 그렇게 세상 지저분하게 있다가 샤워를 하고 맥주를 한 잔 마시면,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다.
땀을 제대로 흘려보고 나서 내 태도는 조금씩 바뀌었다. 아직 대부분 경우 팔짱을 끼고 조그맣게 살고 있긴 하지만, 팔짱을 풀어야 할 때는 풀려고 한다.
욕조 청소를 각오해야 하지만 반신욕을 하는 시간은 너무 안온하다. 압력밥솥을 써서 갓 지은 밥은 햇반보다 훨씬 맛있다. 더러워진 손은 씻으면 되고, 더러워진 옷은 빨면 된다. 더러워진 주변은 깨끗하게 닦아내면 된다.
그렇게 더럽히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다 보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걸 아주 늦게 알았다.
최근에는 갑자기 락에 꽂혀있다. 원래 취미 겸 쉬엄쉬엄 기타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다 중간에 수업을 가다 보니 도저히 아르페지오가 할 기분이 안들어서 화끈하게 락커로 전향했다. 이건 또 기타의 신세계다. 이전까지는 점잖게 딩가딩가 기타를 한 줄 한 줄 튕기며 한 시간 즐겁게 놀다 오곤 했는데, 락 기타 연주란 또 고행에 가까운 일이다. 전완근은 당기고 입은 저절로 벌어지고 겨드랑이에서는 땀이 난다. 나는 락커가 되기위해 또 점잖게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뭐든 열심히 하다 보면 땀이 나고, 손톱 밑이 더러워지고, 얼룩이 묻는다. 나는 더러움을 싫어했다기보다는 무서워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러움이 변명이 되지 않도록, 조금만 더 크게 살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