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7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 - 짧은 제목에 핵심 주제가 담백하게 담겨 있다. 관객이었다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공연의 주제는 논란의 여지 없이 “한수진” 그리고 “영국 음악”이다.
구성을 훑어보니, 계획 단계에서부터 탄탄하게 준비한 공연 같았다. 사실 내키는 대로 프로그램을 정한 후, 곡들의 공통점을 억지로 찾아내서 제목에 끼워 맞추는 연주회도 많기 때문이다.
처음 듣는 한수진의 바이올린 연주는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지루하게 들리기 쉬운, 느린 phrase에서의 텐션 조절이 놀라웠다. 텐션은 훌륭한 비브라토에서부터 탄생하는데, 비브라토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한수진의 손가락에 시선이 오래 머무르기도 했다. 다른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와 비교해도, 얇고 굵은 비브라토를 알맞게 섞어 사용하는 기교가 뛰어났다.
Vaughan Williams의 『The Lark Ascending』에서는 꽉 찬 G선의 풍부한 소리, 그리고 E선의 꾀꼬리 같은 경쾌한 소리를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훌륭한 보잉을 이용하여, 호흡을 끊김 없이 길게 끌어주었다.
한수진은 똑같은 악보여도, 음색을 다르게 표현할 줄 아는 연주자다. Max Richter의 『Recomposed: Vivaldi, The Four Seasons』에서 그녀는 Solo와 Tutti 파트를 확실하게 구별하여 연주했다. 솔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반주자가 되어 저음 악기에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실망스러웠다. 기본적으로 소리는 굉장히 깔끔했지만, 미세하게 음악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꽤 많았다. 첫 시작과 단순한 리듬이 반복되는 구간에서는 단원들끼리의 합이 조금씩 어긋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Recomposed: Vivaldi, The Four Seasons』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화려한 피날레 곡, Eric Coates 의 『London Suites』를 연주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열정적이었지만, 다른 곡에서는 지쳐 보이기도 했다. 악상의 표현 또한 들리기는 했지만, 관객의 마음을 건드릴 정도는 아니어서 아쉬웠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클래식이 영국보다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더 고귀하니까? 더 전통 있으니까? 더 실력이 좋으니까?
인기와 가치는 꼭 비례하는 게 아닌데,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클래식과 친하다고 생각한 필자 또한 단 한 번도 영국 음악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없었다. 영국 음악은 특출나지도, 유별나지도 않다고 생각해 왔다. 'Royal'한 느낌이 물씬 나는 궁정 음악 정도가 떠오르는 전부였다.
다행히, 영국 음악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프로그램의 2번째 곡 Elgar의 『Enigma Variations』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점점 감이 잡히고 있었다. 영국의 대표 작품들을 모아놓으니까 특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동안 고유성이 없다고 믿어온 영국 음악은 누가 보아도 “영국 음악” 그 자체였다.
영국 음악은 영화 OST 스러운 음향이 진한 것 같다. Vaughan Williams의 『Fantasia on Green Sleeves』을 들으면 파도의 물결처럼,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바람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나태주 시 '풀꽃'의 구절처럼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레파토리 확장과 발굴에 앞장 서고 있는 지휘자 아드리엘 김과 디 오리지널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 영국 음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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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 사물, 사상 ... 어떠한 형태이든, 모두 자신만의 색채가 있을 텐데... 단순하게 관심이 없어서, 또는 이미 안다고 자만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평범하다’고 치부해 버린 건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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