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것
내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예술은 그 어떠한 것도 미학적으로 표현한다.
평범하다 못해 초라한 누군가의 모습도, 예술 안에서만큼은 ‘잠재성이 있는,’ ‘멋있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직은’ 평범하고 초라할 뿐이다. 내가 울면 추하지만 원빈이 울면 멜로인 것처럼, 이쁘지도 뛰어나지 않은 ‘나’ 또한 작품 안에서는 ‘원빈’이 될 수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심지어 악(惡)도 예술은 아름다움으로 포장 가능하다. 어찌 되었든, backstage에서의 모습조차,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이 참 위안이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요번 전시는 내가 추구하는 미(美)와 살짝 결이 다르다. 그렇다고 실망스러웠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와는 다른, 색다른 마음으로 전시장을 ‘여행’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2시간 동안 북유럽을 ‘여행’하다 온 느낌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평범하고 초라한’ 이를 ‘주인공’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과장이 당연히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조명을 켜보거나, 관점에 변화를 준다거나, 초점을 다른 곳에 맞춰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연출로 변화를 준다고 해서 어떠한 ‘사실(Fact)’이 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 ‘마음(Emotion)’으로 다가오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내가 느낀 북유럽 회화는 이러한 과장이 전혀 없는 정직한 사진과 같았다. 아무런 설정이 없는, 담백한 사진. 그렇지만 일반적인 사진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사진에는, 분명 객관적으로는 똑같지만, 담기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분위기이다. 북유럽 미술에서는 현실적인 그림에 분위기까지 담겨 있어 정말 신기했다.
솔직히, 그림 속 인물을 보면서 ‘잘생겼다’ 또는 ‘아름답다’라고 느낄 법도 한 게 인물화 아닌가? 그러나 그러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북유럽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액자 속에 걸려있을 뿐이다. 웃긴 건, 그림 속 인물을 만나본 적 있던 것처럼, 왜인지 모르게 친숙하고, 성격까지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먼 옛날, 나와는 관련 없는 2D 속의 그림이 아닌,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와 매력이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 사람, 되게 카리스마 있다.’ ‘이 여자는 일상에 치여 울적한 걸까 아니면 단순하게 지친 걸까?’ 혼자 여러 가지 추측을 하면서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이러한 점은 인물화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풍경화에서도 똑같은 특징이 드러난다. ‘작품을 감상하러’ 미술관에 온 느낌보다는 정말 북유럽 땅을 밟고 있는 느낌이었다. 북유럽 특유의 차갑고 다운된 회색빛, 싸한 분위기... 17℃ 정도 되는 날씨에... 바람에 부딪혀 차갑게 흔들리는 나뭇잎들... 다 생생하게 느껴지고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평소에 자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이 해당 안 되는데…?’ 나무 한 그루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윤기 하나 없이 갈기갈기 찢긴 몸통. 무늬는 규칙성 없이 제멋대로이고, 벌레가 갉아 먹은 듯한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나무가 모여있는 숲이나 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푸릇푸릇 생기가 가득해 보이고, 눈앞에는 숨통이 트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만약 내가 화가였으면, 나무나 관목 또한 ‘멀리서’의 ‘아름다운’ 관점으로 그렸을 것 같다. 그러나 새벽부터 황혼까지의 작품들에서는 나뭇잎조차 정말 현실성 있게 곱지 못하다. 튼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갈변한 나뭇잎들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물론, 전시의 모든 점이 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래 두 그림은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작품들이다. ‘과장’이라는 연출이 살짝 가미되어 있어서 미학적이라고 느낀 것 같다. 그림 앞에 서서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고, 발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Review]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 –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