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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경 Nov 07. 2023

조각가방을 만들며

수필로 쓰는 수필론

  내게 바느질은 아킬레스건과도 같다. 그런 내가 봉제반 수강을 하고 있다. 무료로 얻은 백만 원이나 하는 수강권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봉제반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나처럼 재봉틀 바늘귀도 꿰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봉사 자격증을 준비한다는 수강생도 있었다. 그런데 초보라도 대부분 눈썰미나 감각이 남다른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한 가지를 배우면 곧잘 응용해서 짬짬이 다른 것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나는 패턴으로 본을 뜨고 마름질한 것을 시키는 대로 박음질하는 것도 벅차다. 패턴을 응용해서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재봉틀 발판에 힘 조절도 서툴러서 박음질도 마냥 비뚤거린다. 한 가지 과정을 마칠 때마다 늘 마지막 시간까지 허덕인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무료수강권의 조건이 80% 출석, 미달이면 수강료 본인 부담이라는 조건에 코 꿰인 송아지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코가 꿰인 것을.


  핀쿠션과 냄비 집개, 앞치마 등 소품을 만든 다음 에코 가방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헌 청바지로 만들어진 견본품이 마네킹에 걸렸다. 비슷한 청지이지만 짙고 옅은 색깔의 대비를 맞춰 고루 섞은 것이 예뻤다. 엇갈려 잇댄 비대칭 조각들에는 흰색 구름무늬와 헌 옷의 바느질한 곳이나 주름 부분을 펼친 곳에 드러난 무늬들까지 어우러져 에코 가방이라고 치부하기엔 세련되고 멋있었다. 액세서리로 사용한 빨간 천에 금속 이가 선명한 지퍼도 산뜻했다. 


  명품가방에 오금을 못 펴는 여자들이 많지만 가방을 멋스럽게 들기보다 아무거나 잔뜩 넣고 다니는 나는 명품가방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남편과 며느리가 사 준 것을 가끔 들고나가지만 어디다 함부로 놓기도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부담스럽다. 의자 등받이에 걸어놓거나 바닥에 놓아도 괜찮은 중저가의 가방이 편하다. 그런데 마네킹에 걸려있는 헌 청바지로 만든 에코 가방을 보며 탐욕이 스멀거렸다. 기어이 그보다 멋진 가방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내 재봉 실력을 따져볼 여유도 없었다.


  산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삶의 조각을 꿰어 맞추는 것. 삶이란 반듯한 길도 아니고 주어진 조건도 어차피 불공평하게 마련이다. 싫다고 맘대로 팽개칠 수도 없다. 그것을 오려서 맞추고 무늬와 색깔을 더하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이다. 


  한 편의 수필을 쓰는 것도 그와 같을 것이다. 내 마음을 순간에 앗아버린 에코 가방은 삶에서 만나는 흔한 이야기 중 어느 순간 번득이는 영감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에코 가방으로 치부해 버리는 순간 어렵게 찾아온 영감은 그저 그런 신변잡사가 되어버릴 것이다.


  선생님은 두 가지 색 천과 지퍼를 나누어 주며 나머지 예닐곱 조각은 각자가 준비한 헌 바지를 이용하라고 했다. 청바지 색깔은 참 다양하다. 연한 하늘색부터 검은색까지. 나는 청바지를 입지 않아 헌 바지 구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그런데 어렵게 구한 것들이 하필 나누어 준 것과 비슷한 색이었다. 포인트가 될 만한 색이 없었다. 견본품처럼 대비와 조화의 멋을 살리기 어려웠다. 마음속으로는 견본품보다 멋진 배색을 그려보지만 그림의 떡이라는 말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액세서리용 금속지퍼가 더 문제였다. 잠금장치가 아니라 조각에 덧대어 액세서리가 되어있는 그것은 청지와 어울려 육감적인 여인의 붉은 입술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재활용 에코 가방에 명품의 인장을 찍는 조화의 한 수였다. 그런데 나누어 준 지퍼는 갈색, 검정 분홍 등 견본품과는 다른 것들이었다. 어차피 에코 가방이니 있는 것을 적당히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조화의 한 수를 보고 나서 어떻게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나름대로 준비한 천을 마름질하고 나눠 받은 지퍼를 반으로 갈라 천과 덧대어 박음질했다. 나도 천 조각 몇 개를 잘라 띄엄띄엄 놓았지만 비어있는 곳에 끼워 배색할 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퍼가 들어갈 자리에 분홍색 지퍼를 대보니 청색 바탕에서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시간이 끝나도록 내가 한 것은 나란히 놓인 두 조각을 맞대 박음질한 것이 전부였다. 천만 만지작거리는 내게 재봉틀 열다섯 대의 소리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귀가 먹먹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에코 가방이 눈에 어른거렸다. 다음 수업은 나흘 후다. 무슨 수를 써서든 부족한 재료를 채우기로 했다. 락스를 이용하면 적당한 무늬도 만들고 색깔도 옅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궁리도 했다. 그렇지만 빨간 지퍼는 50cm 정도 되는 긴 것이라 헌 것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가까운 원단가게를 찾아갔다. 관심도 없던 청바지 원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 흰 붓으로 마구 붓질한 것 같은 원단도 있었다. 왜 그걸 꼭 헌 바지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학원에서도 기본색이라며 새 천을 나눠주지 않았던가. 원단이 없는 옷이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가. 헌 옷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혔단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자투리 천은 불과 이천 원. 락스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예쁜 무늬를 이천 원에 샀다.


  집에 와 헌 옷들을 여러 벌 꺼냈다. 얇은 천이지만 색을 맞춰 청지에 덧대면 그만일 것이다. 그렇게 몇 가지 색을 찾아내니 내가 그렸던 배색들이 갖춰졌다. 너무 많아 한두 가지는 빼내야 할지도 몰랐다. 처음 청지를 준비하라고 했을 때부터 이렇게 차근차근 준비했더라면 남의 재봉틀 소리에 귀가 먹먹할 일도 없었을 것을.


  그렇지만 지퍼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색색 지퍼가 길이별로 있었는데 내가 찾는 빨간 천에 황금색 이가 물린 것은 짤막한 바지용 지퍼밖에 없었다.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라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넷을 헤매기 몇 시간 째였을까. 어지간한 사이트를 다 돌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이라고 구매자가 흔치 않은 것을 쌓아두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동대문에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쳐갈 때쯤 마침내 한 사이트에서 사진이 보였다. 망망대해라고도 하는 인터넷 상가에서 한 군데밖에 없다니. 그럴 때 “심 봤다”라고 하는 거였다. 새콤하면서도 다디단 과일이 목을 넘어가듯 짜릿했다.  

   

  모처럼 좋은 글감을 얻고도 그걸 받쳐줄 소재가 빈곤하면 밤새 붓방아만 찧고 만다. 가난한 언어에 모처럼 찾아온 영감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초조함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 번개처럼 혼을 울려온 그 순간의 영감을 어떻게든 살리려면 고뇌하고 명상도 해야 하지만 때로는 발이 부르트도록 그 울림의 진원지를 찾아 나서야 할 때도 있다. 거기서 진실과 마주하고 부족한 진실을 담보해 줄 확실한 인장을 받아야 한다. 땀 흘리며 산을 넘어야 할 때도 있고, 인터넷 망망대해를 헤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이, 쌓았던 지식의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형틀이다. 긴고아와 같다. 그것은 영혼까지 속박하려고 한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긴고주를 외는 것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그것에서 벗어나야만 자유로운 발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긴고아를 벗어던지고 나면 찾고자 원하는 것은 뜻밖의 곳에 있을 때가 많다. 심산유곡이 아니라 길 가다 발에 챈 돌멩이가 번쩍이는 금덩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저절로 심마니의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들은 안감에 주머니를 달고 있는데 난 그제야 조각을 붙였다. 기왕에 늦었으니 서둘러 실수하기보다 차근차근히 해야 한다. 박음질이 한 번 비뚤어지면 10초 동안 박은 것을 뜯어내느라 10분이 걸리기도 한다. 아차 하는 사이 발판에 힘이 들어가면 바늘은 제 맘대로 가버리기 일쑤다. 능숙한 사람일수록 발끝보다 뒤꿈치에 힘을 주며 질주보다 제동에 능하다. 발판을 조심조심 구르며 뒤꿈치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글을 쓸 때도 마음이 들떠서는 안 된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때로는 가슴이 아플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질주하다 보면 길이 아닌 길로 들어서기 마련이다. 고조된 감정은 적당한 제동을 걸 수 있을 때 안으로 갈무리 된다. 그렇게 갈무리하고 곰삭은 언어들로 내보인 마음에서는 향내가 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어차피 늦은 걸음, 쉬엄쉬엄 가다 보면 발밑에 피어있는 작은 풀꽃과도 눈을 맞추고 낮은 가지에서 포릉거리는 참새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박음질이 끝나자 시접 부분을 가름솔로 다림질을 하면서 비뚤어진 선을 바로잡았다. 뜨거운 스팀이 두꺼운 청지를 다스리며 솔기를 가르고, 솔기는 비뚤어진 박음질을 품어주었다. 그 위에 심지를 붙였다. 심지는 풀기를 먹여 천이 힘을 받도록 하는 봉제 재료다. 칼라나 안단, 깃 등에 댄다. 가방은 전체가 든든하도록 전면全面에 붙였다. 뜨거운 다림질에 심지는 품었던 풀기를 풀어놓고 원단에 찰싹 달라붙었다. 원단이 빳빳해지도록 힘을 주면서 솔기에서 풀린 실까지도 꼭 붙들어 흐트러진 것들의 매무시까지 만져주었다. 


  안감에 주머니를 달았다. 중요한 물건을 넣을 곳엔 지퍼를 달고, 작은 지갑이나 자잘한 소품을 넣을 곳은 두 칸으로 나누어 물건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했다. 가방 안에서 굴러다니는 것들을 넣어두면 좋을 것이다. 겉감과 안감을 마주 대고 박음질을 하면 심지 밖으로 조금씩 삐져나와 있던 것들까지도 모두 안감 안에 싸 안긴다. 


  심지를 붙이면 아무리 얇은 천이라도 빳빳해진다. 심지가 품고 있던 풀기가 원단에 스며드는 때문이다. 내가 쓰는 서툰 글들도 든든하게 설 수 있도록 심지를 붙여주어야 하는데 아직도 여리기만 한 내 붓이 못내 아쉽다. 


  글에도 안감은 필요하다. 안감은 솔기와 실밥들을 다독이고 서툰 박음질을 감싸 안아준다. 겉은 번드르르 하지만 시접 부분을 다듬지 않아 실밥이 너덜거리는 바느질감 같다면 얼마나 추할 것인가. 안감에 주머니도 닳아 깨알 같은 자잘한 재미도 담아둔다면 누군가 그 잔잔한 재미에 빙그레 웃어주지 않을까. 


어깨에 걸칠 수 있도록 넉넉한 끈이 달린 가방이 만들어졌다. 


  밝고 어둡고 옅고 진한 색들을 고루 섞은 조각들이 조화롭다. 엇갈려 잇댄 비대칭 조각들은 어긋나면서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품어준다. 흰색으로 마구 붓질한 것 같은 무늬는 더러는 구름이 되고 더러는 꽃이 되었다. 허리 부분의 주름을 펼친 곳에 꼭꼭 숨어있던 바래지 않은 진한 색이 드러나 있다. 자그마한 무늬가 귀여운 소녀의 발칙한 윙크 같다고 할까. 그리고 눈길을 끄는 것 또 하나. 견본품 3호보다 황금색 이가 더 굵은 빨간색 5호 지퍼가 요염할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다. 


고르지 못하고 흔들리는 삶의 조각 덧대기, 수필 한 편 그 말미에 찍힌 새빨간 명품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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