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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Feb 07. 2024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이 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미안해~ 나 지금 가고 있어~"

"괜찮아, 서점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천천히 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조금 늦게 도착할 거 같다며 미안함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만나는 장소인 쇼핑몰에 서점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고 있던 참이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으면 늦지 않으려고 미리 약속장소에 도착하던 습관이 몸에 배었다. 타인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지 말아야겠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는데 나와는 반대로 약속시간에 늦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기다림에 익숙하던 나는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어 늘 가방 속에 책 한 권을 가지고 다녔고 책 속에 빠져 있다 보면 약속의 주인공이 나타나곤 했다. 때로는 책 속에 깊이 빠져 있어서 제시간에 도착한 친구가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했던 적도 있었다.


누군가와 만날 때 중요한 것이 시간과 장소인데 장소가 정해지고 나면 나는 주변에 서점이 있는지 검색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모처럼 서점에 들어가 책에 둘러싸여 책을 둘러보는 그 시간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 속에 쌓여 있는 그 포근함이 좋았다. 

요즘 나온 신간은 무엇인지, 사람들이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는 무엇인지 둘러보다 보면 어찌나 읽고 싶은 책이 많은지 서점에서 빠져나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쯤 되면 약속을 위해 서점에 방문한 것인지, 서점에 있기 위해 약속을 정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친구들과의 약속장소에 대형서점이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약속시간 1시간 전에 서점에 들어가 조용히 책 세상에 빠져 들었다. 먼저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서 분야별 베스트셀러를 가볍게 훑어본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이 베스트셀러에 있으면 왠지 읽어보고 싶게끔 만드는 참새 방앗간 같은 코너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책은 정말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아니면 유행에 따라 인기가 올라간 책인지, 마케팅이 잘 되어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지... 결국은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다음 신간코너를 가서 요즘 어떤 책들이 새로 나왔는지 둘러본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손이 저절로 간다. 출판계에도 유행이 있는지 비슷한 제목과 비슷한 표지의 책이 많이 보인다. 초보 작가에게는 신간의 제목들도 공부가 된다. 

좋아하는 역사코너는 빠지지 않고 들르는 코스이다. 역사 속에서도 조선파트는 언제나 내 발길을 사로잡는다.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는 조선왕조실록도 살펴보고, 새로 나온 조선배경 소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책 속 깊이 들어가는 걸 포기하고 책장을 덮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책 선물을 하고 싶어서 어떤 책을 고르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만나는 친구들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섣불리 책을 선물했다가 상대에게 자리만 차지하는 이쁜 쓰레기가 되기 십상이다. 선물도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서 선택해야 하는데 오늘 만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들은 대학생 때부터 독서를 즐겨하던 25년 지기 친구들이다. 


소설을 선물할까? 그러기엔 요즘 내가 읽은 소설이 없다. 내가 재밌어야 권하기도 쉽고, 또 나 보다 먼저 친구가 읽은 소설일 수도 있기에 소설코너는 지나친다. 자기계발 도서를 선물하자니 힘겹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더 열심히 살아보라고 채찍질을 하는 거 같아 내키지가 않는다.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브런치작가를 친구들에게는 커밍아웃했다. 브런치스토리 주소를 카카오톡으로 보내기도 했는데 친구들이 내 에세이를 읽는지를 알 수 없다.


그래,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를 선물하자! 에세이 코너에 가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둘러보았다. 언젠가는 나의 에세이도 이렇게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며 몇 권의 책을 둘러본다.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라는 제목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라 내용을 살펴보지 않아도 내 맘에 쏙 든다. 기본 커버인 파란 책 두권, 리커버 된 노란 책 한 권 세 권 나란히 놓고 보니 친구들과 내 모습 같아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친구들이 들고 가기 편하게 작은 종이백도 준비하고 카페에 들러 책 첫 표지에 친구들에게 전할 짧은 메시지를 기록했다. 




"열심히 잘 살고 있는 내 친구들! 우리는 잘될 수밖에 없어! 우리 잘 살아보자!"

"니 책도 언젠가는 이렇게 나오는 거지? 작가 사인 책 한번 받아보자"

"그래, 내 책 나오면 꼭 사인해서 줄게"


당장 일어나지 않은 서로의 미래를 축복하며 우리는 시끌벅적 서로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어갔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서점에서의 시간도, 그동안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라 왁자지껄 시끄러운 수다시간도 행복하기만 하다.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서점만 한 장소가 또 있을까? 그곳에서 만날 사람을 기다리며 그 사람에게 어울릴 책 한 권 고르는 일은 상대를 더욱 사랑스럽고 만남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서점에 들러 떠오르는 친구에게 어울릴 한 권을 골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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