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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Jan 03. 2024

워킹맘은 방학이 두렵습니다.

방학 도시락

"엄마, 너무 신나요~ 드디어 방학이에요!"

1학년 딸도, 5학년 아들도 방학이 다가왔다고 잔뜩 들떴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선생님이 미치기 전에 방학을 하고, 엄마가 미치기 전에 개학을 한다는 말도 있지요. 수고하신 선생님들이 미치기(?) 전에 방학이 도래했네요. 워킹맘인 저는 방학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아이들 공부? 명색이 방학인데 공부만 할 수 있나요 말 그대로 방학이니 놀기도 해야지요. 제가 두려운 건 따로 있습니다.



고마운 급식


워킹맘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아이들의 점심입니다.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기 때문에 급식이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르겠습니다. 영양사님이 5대영양소에 맞춰 식단을 짜 주시고 반찬도 다양하게 나오니 급식 사진을 보면 오늘도 우리 아이가 맛있는 점심을 먹었겠구나 안심이 됩니다.

더군다나 학교에서는 골고루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보다 편식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니 더욱 든든합니다. 아이들끼리 같이 식사를 하다 보니까 친구에게 지기 싫어서 잘 먹지 못하는 김치도 꾹 참고 먹고 오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싫어하는 반찬이 나와도 한 번쯤은 시도를 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 무서운 또래집단에서 편식쟁이로 낙인을 찍히기 싫은 아이들은 집에서 잘 먹지 않는 반찬도 급식에서는 시도를 하나 봅니다.



워킹맘이 무서운 건 바로 학교의 방학입니다. 초등학교 방학은 학교별로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두 달 이상을 보내게 됩니다. 학교에서 먹던 급식이 중단된다는 뜻이지요. 워킹맘은 방학이 되면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싸 놓고 출근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차려 먹을 줄 아는 중고등학생이 아닌 초등학생 엄마 마음은 그래서 분주하기만 합니다.




반찬을 소분해 놓을 반찬 그릇도 정비하고 매일 그 안에 넣을 반찬을 고심합니다. 밥은 압력솥으로 한 솥 지어서 작은 그릇에 소분해서 냉동고에 착착 쌓아 둡니다. 밥은 전자레인지에 3분 30초를 돌려서 따끈하게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고, 방학 동안 먹을 밑반찬도 준비야 합니다.

가장 만만한 멸치를 볶아 놓고, 오징어채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들어 놓습니다. 어묵볶음이나 소시지볶음 같은 반찬은 전날 저녁에 만들어서 전자레인지용 그릇에 담아 다음날 밥과 함께 따뜻하게 돌려 먹으라고 합니다.


아직 하이라이트(가스레인지)를 사용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국을 데워먹으라고 하기도 힘이 듭니다. 혹여나 사고가 날까 걱정이 돼서 조리해 먹는 요리는 점심에서 제외입니다. 가장 만만한 김도 넉넉히 준비해 놓습니다. 혹여 내일 먹을 반찬이 부족하다 싶으면 퇴근길에 반찬가게에 들러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만한 반찬을 구매하기도 하지요.


1학년 둘째는 돌봄 교실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교에 싸 갈 점심 도시락을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5학년 큰 아이에게 동생까지 챙기라고 하는 건 아직 아이에게 부담되는 일이라 다행이다 싶고요. 첫째가 딸이었으면 동생을 잘 챙겼을까 상상을 해 보기도 하지만 사춘기 오빠는 동생을 여간 귀찮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둘째가 돌봄 교실에서 점심을 먹어서 다행입니다.


첫째가 괴로운 건 딱 일주일 돌봄 교실의 방학입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동생의 점심을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밥을 두 개 돌리고 냉장고에서 각자 먹을 반찬그릇을 꺼내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둘째가 준비하게 지시도 합니다. 밥을 잘 먹고 싱크대에 그릇을 옮긴 후 물을 받아 놓으라고 하지만 퇴근 후 싱크대를 보면 말라비틀어진 밥풀과 반찬의 잔해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그릇을 마주할 뿐입니다.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 뭐 옮겨 놓은 것만으로도 장하다고 합니다.



방학은 1월 3일부터 3월 3일(일요일)까지 두 달입니다. 이 긴긴 겨울을 어찌 보내면 좋을까요? 제가 어릴 때는 방학마다 지방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댁에 가는 것도 큰 즐거움 이었는데 지척에 있는 부모님 댁에 아이들을 보내자니 나이 들어 힘드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여쭤 보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주말에 아이들과 놀러 갈만한 눈썰매장이나 박물관, 공연장도 검색을 해 보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나 만들기도 쇼핑을 해 봅니다. 태권도와 공부 학원을 다니기에 딱 학교 수업시간만큼만 알차게 보내면 좋은데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기나긴 겨울방학 당장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 점심을 챙길 생각에 고민이 많습니다. 어디 식단표라도 참고해서 매일 조금씩 다른 반찬을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워킹맘은 방학이 정말 두렵습니다. 꽃 피는 춘삼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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