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앤글 Apr 02. 2024

엄마 사표는 누구한테 내면 되나요?

"너 아침에 인공눈물 대신 안약 넣고 있니?"

"아니요~ 그건 렌즈 빼고 넣는 약인데요..."

"아니! 아침에 드림렌즈 뺄 때 말이야! 인공 눈물 어디 갔어?"

"..."

"인공눈물 안 넣고 렌즈 빼고 있는 거야?"

"..."


하... 출근준비로 바쁜 아침부터 아이를 향한 잔소리 융단폭격이 또 시작되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큰 눈만 끔뻑끔뻑 감았다 뜨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복장이 터진다.

자고 일어나 드림렌즈를 뺄 때 눈에 상처가 날 수 있으니 인공눈물 한 방울씩 넣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를 듣고 잘 실행하던 아이였는데, 안약 처방 후 인공눈물을 넣지 않고 있다. 아이는 두 가지 프로세스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일까? 내가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던 것일까?

어제도 남아 있는 식염수를 몽땅 짜서 버리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나서 아이를 다그치지 말자, 혼내지 말자, 차분히 잘 말해주자 다짐을 했었다. 그 짧은 다짐이 무색하게 오늘 아침 아이에게 또 큰 소리를 퍼붓고 있는 내 모습을 보자니 자괴감이 든다.


하루의 시작. 누구보다 기분 좋게 행복하고 감사하게 시작하고 싶은 아침이다.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오늘도 새 날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외치고 일어났다.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름다운 출발이었다. 첫째 아이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5학년부터 사춘기가 시작된듯한 아이지만 6학년이 된 지금까지 말대꾸, 반항 한번 없는 순한 아이다. 엄마인 내가 봐도 착한 아이인데 사춘기가 되고 엄마의 큰소리에 순한 소 마냥 큰 눈을 끔뻑거리고 있으면 또 그것만큼 답답한 게 없다.

변명을 하든지, 말대꾸를 하든지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죄지은 사람처럼 주눅들어 있는 아이 모습에 또 화가 치민다.


사무실에 도착해 일을 하며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본다. 내가 그렇게 화를 낼 일이었을까? 아이에게 좋게 말할 수는 없던 걸까? 이쯤 되면 공격받는 아이보다 공격하는 내가 문제 아닌가 싶은 생각이 커진다.

아이의 사춘기가 문제가 아니라 갱년기에 주체할 수 없이 요동치는 내 감정이 문제인가 싶어 자괴감은 더 커진다.


부모님의 딸로 시간을 보냈고, 남편을 만나 아내라는 이름을 얻었고, 아이들을 낳아 엄마가 되었다. 딸, 아내, 엄마에 더불어 월급 받는 회사원에, 이렇게 글을 쓰는 무명작가역할까지 자처하고 있는 나의 역할은 꽤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힘든 게 엄마역할이라 느끼는 요즘이다.

다들 좋은 엄마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나는 "엄마"라는 이름이 왜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이는 사춘기를 겪으며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유아기 엄마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아이가 커 가듯 엄마로서의 나도 함께 커야 하는데 나는 아직 어린 엄마인가보다.


"엄마 사표 내고 싶어!"

누구에게 사표를 내 던져야 하는 걸까? 들어주는이 없는 공허한 외침은 허공을 맴돌다 허무하게 다시 나의 마음에 와서 꽂힌다. 나는 엄마 자질이 부족한 걸까? 나는 나쁜 엄마인가? 나 같은 엄마가 어디있담? 나는 정말 못난 엄마야...

아침부터 아이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나와서 엄마로서 부족한 나를 향한 질문은 아무런 해답 없이 결국 자책으로 나의 마음에 스스로 상처를 내고 있다.


'엄마, 엄마는 우리 삼 남매 키울 때 어땠어? 안 힘들었어? 엄마는 갱년기 시기를 어떻게 보낸 거야? 나 사춘기 때 엄마도 힘든 순간이 있었겠지? 엄마는 도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낸 거야? 응 엄마?'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가장 무겁게 느끼는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도 바로 나의 엄마다. 하... 도대체 엄마란 무엇이길래 이 나이 먹도록 어려운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말인가.


하필 스마트폰에는 10년 전 오늘이라며 해맑게 웃는 아이와 행복한 미소의 내가 있다. 저때는 분명 아이가 빨리 커서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갔으면 하고 바랬을 텐데... 그렇게 10년이 지났는데 왜 나는 또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을까?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하루다.


그래! 사표를 던지긴 누구에게 던져! 엄마라는 이름이 버린다고 버릴 수 있는 이름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해답은 내 안에 있고 그 해답을 찾을 사람도 나다!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할 사람도, 아이가 바르게 커갈 수 있도록 안전한 울타리가 될 사람도 바로 엄마인 나다. 어쩌면 아이보다 내가 더 지독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커 가는데 나만 유아기 엄마에 머물러 있었던 건 아닐까. 크자. 아이와 함께 엄마도 커 보자. 너는 사춘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갱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같이 커 보자.


"이 모든 게 호르몬 탓이야!!!!"

폐경이 다가온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무색하게 생리 중인 여자는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울다 웃다 감정 널뛰기를 하며 이렇게 글을 마무리한다. 몹쓸 호르몬 녀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