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티가나게 배가 나오지 않은 임신 12주의 임산부는 수술을 앞두고 진행되는 각종 검사에 병원 관계자들이 혹시라도 나의 임신 사실을 몰라 아기에게 해가 될까 싶어 검사실에 들어갈 때마다 임신한 여자라고 강한 어필을 하고 있었다
결혼 후 신혼을 1년쯤 즐기다 아이를 갖자는 계획이 있었지만 6개월이 지나자 이제는 임신을 해야 할거 같다며 남편을 꼬시기 시작했다. 손가락 셈을 아무리 해 봐도 시간이 더 늦어졌다가는 마흔을 향해 가는 노령산모가 될 것만 같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테스트기 두 줄을 보고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마음에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퇴근한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보여주며 역시 드라마나 영화처럼 나를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아줄 남편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늘 예상밖의 이 남자. 테스트기 두 줄을 보자 잠시 정신이 가출한 듯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의 넋 나간 표정은 결혼식 이후 처음이다.
"여보, 나 임신했어. 우리 아기가 생긴 거야... 안 기뻐?"
"어... 어... 그래... 기... 뻐"
기쁘긴 개뿔? 니 표정에 기쁨이 1도 없는데 기쁘긴 뭐가 기쁘니? 아오 저걸 그냥 콱!
큰 일을 당했을 때 두 눈에 초점이 사라지고 약간 얼빠진 인간이 되는 사람이라는 걸 그날 이후 더 많이 마주하게 되었지만 아내의 첫 임신에 저런 반응의 남편은 이제 막 임신 호르몬 열차에 올라탄 임산부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으... 너무 아파"
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고 임신을 알게 된 기쁨과 동시에 극심한 입덧의 굴레에 빠지고 말았다. 명치 통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포클레인으로 긁어내는 듯한 느낌과 꽉 막힌 위 안에 위 보다 더 큰 날카로운 돌덩이가 힘겹게 움직이고 있는 듯도 했다. 포크가 내 위를 다 쓸어 내는 듯한 통증에 이것이 입덧의 위력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임신을 하면 아이의 건강을 위해 영양제도 챙겨 먹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서 영양보충을 해야 하지만 음식은 고사하고 물 한 목음 제대로 삼킬 수 없는 임산부는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다.
새벽 극심한 위 통증에 산부인과와 대학병원 응급실을 오가며 수액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친정과 집을 오가면서 좀비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어서 시간이 흘러가기만 바랄 뿐이었다. 임신이란 게 이렇게 힘든 일일까. 나만 이렇게 고생을 하는 건가. 테스트기 두 줄을 보며 흘렸던 기쁨의 눈물이 무색하게 통증의 눈물을 흘리며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며칠을 친정에서 누워 지내다 집으로 가겠다고 남편과 나온 후 부모님 모르게 근처 산부인과 병원에 입원을 하고 말았다. 며칠을 계속 피를 뽑고 검사를 하더니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대학병원에 가셔야 할거 같아요. 간 수치가 너무 높습니다."
간수치가 높다고 큰 병원에 가라는 말에도 나는 놀랄 기운조차 없었다. 그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데리고 큰 병원으로 데리고 가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놀란 남편은 회사를 조퇴하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왔고 우리는 전철을 타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동을 했다. 왜 택시를 타지 않고 전철을 이용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남편은 굵은 눈물을 떨구기에 바빴고 나는 그저 남편의 뒤를 따라 느릿느릿 걸을 뿐이었다.
고대병원 응급실에서 또 채혈을 하고 각종 검사를 마치고 겨우 정신줄을 붙들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음... 담낭에 돌이 가득 찼습니다. 긴급 수술을 하셔야 해요. 바로 입원실 수속 밟겠습니다"
"여보, 뭐래? 왜 나 보고 수술하래? 우리 아기는?"
다 죽어가던 나는 긴급 수술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수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배 속에 아기가 있는데 무슨 수술을 하라는 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담낭에 돌이 가득 차 있고 지금 떼어내지 않다가는 아기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에, 그나마 임신 12주이기 때문에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에 나의 선택권은 중요하지 않았다. 임신 12주까지 체중은 12kg이 줄어들었다. 극심한 통증에 임신이 즐겁지 않았고 뱃속 아기를 이뻐할 겨를도 없었다. 내 몸에서 무언가를 떼어내면 이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행이다 싶었다.
"임신 중이라 마취가 약하게 들어갑니다. 아기가 잘못될 수도 있고, 산모가 잘못될 수도 있고...."
수술을 앞두고 온갖 나쁜 소리는 다 들어야만 했다. 수술을 해도 안 해도 아이가 위험하다고 한다. 산부인과와 담낭체외과 협진으로 수술이 급하게 잡혔고 그렇게 검사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오지도 않은 배를 부여잡고 "제가 지금 임신 중이에요"를 희미하게 외치고 있었다.
아가야, 엄마 쓸개에 돌이 가득 찼데... 엄마가 미리미리 검사를 했었야 했는데, 우리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수술을 하게 되어 미안해. 그런데 엄마는 돌이 가득 차 있다는 쓸개를 빨리 떼어 버리고 싶어. 왜냐하면 엄마가 너무 아프거든... 아가야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엄마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