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찾아 헤맸지만 보이지 않는다. 고기를 구워야 하는데 집게가 없다. 며칠 뒤지다 보면 나오겠지 싶어 구워 먹을 일을 뒤로 미루고 집게를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고기를 어서 구워 먹기 위해 급하게 쿠팡에서 집게를 주문했고, 다음날 하늘색빛의 어여쁜 주방용 집게가 도착했다. 그립감도 좋고 무게도 적당하고 잘 집어져 저번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찾지 못한 집게에 대한 미련도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궁금증은 남았다. 작지도 않은 내 팔 길이만 한 집게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며칠 전 신랑이 사 온 크리스피도넛 6개들이 상자에 한 개 남아있던 도넛이 갑자기 뇌리에 스친다. 손으로 집어 먹기에는 끈적거리고 포크를 꺼내자니 귀찮아 집게로 들고 와구와구 먹은 기억이 나는데 그때 다 먹고 아무 생각 없이 그 안에 집게를 넣고 재활용 쓰레기로 버렸나? 사실 그게 가장 유력한 추리였다. 요 며칠 주방집게 본 사람 없냐며 남편과 아이에게 계속 소문내고 다녔는데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나만큼 애타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뭔 집게 한 개 가지고 며칠을 어디 갔냐고 구시렁대냐는 듯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나만 답답하지 나만.
내가 버린 거면 누구 탓을 할 수도 없고 내가 일을 저질렀다는 건 더더욱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내 잘못이 아닌 것처럼, 집게가 혼자 사라진 것처럼, 참 신기한 일이라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혹여 내가 진짜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들에게 얼마나 놀림을 받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리고 뭐 내가 버린 게 확실한 것도 아닌데 괜한 추측의 말은 더더욱 그들에게 할 필요 없는 것 아닌가? 그냥 조용히 집게를 구입하고 입을 싹 씻자 싶었다. 그냥 집게가 발이 달려 사라진 것으로, 미스터리로 평생 남겨두자 마음을 먹었고 그래서 조용히 주문을 했던 거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학원에서 돌아와 허기져하는 아이에게 소시지를 구워줄까 싶어 냉동실을 열고 커다란 봉지를 열었다. 저번에 잘 먹어서 이번에도 맛있게 먹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윗면을 여는 순간, 딱딱한 은색의 쇠가 보인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그것은 주방용 집게. 내가 찾던 그 집게였다. '이게 왜 여기 들어있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나올 일은 아닌데, 아니 추측도 못했던 일인데, 상상도 안 해봤는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그러면 재활용쓰레기로 버려진 건 아니었네? 으악, 딸아이가 "엄마 뭐 해?"하고 들이닥치기 전에 어서 집게부터 꺼내자 싶었다. 소시지를 치익 기름에 구우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난 무슨 생각을 하며 집게를 거기에 넣은 것일까. 이것이 치매의 시초는 아니겠지. 그저 난 너무 바빠서 아니면 그날 정신없이 아이 저녁을 차려주느라고 그랬을 거야, 그래도 찾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라며 마지막에는 나를 도닥이는 생각으로 끝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어떻게 항상 제자리에 물건을 두겠어. 이런 날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실수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잖아? 사람은 넘어지고 다치고 까먹고 하면서 인생을 계속 배워가는 거라고.
아주 옛날에 구입했던 집게는 고기가 잘 집히지 않아 무늬로만 고리에 걸려있고 메인으로 쓰던 집게는 다시 소환되어 새로 산 집게와 사이좋게 사용하는 중이다. 집게만 3개다. 새로 산 게 더 좋지만 예전 집게는 익숙한 맛이 있어 친근하다.
집게를 다시 찾았으니 당당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시아야, 집게가 글쎄 소시지가 들어있던 봉투에 있었지 뭐야!"
"엥? 그걸 왜 거기다 집어넣었어?"
"엄마도 모르지 ㅎㅎ"
얘기 안 하면 모르고 지나갈 것을 아이가 우리 엄마 왜 저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 말을 굳이 또 꺼낸다. 나 혼자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자니 괜히 찔린다. 작은 일도 가족에게 실토를 안 하면 왠지 찝찝한 마음이 든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왜 저러긴 뭘 왜 저러냐. 네 저녁반찬 급하게 만들어 주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지. 나 먹으려고 그런 건가, 뭐. 아이는 아무 말, 아무 눈치 안 줬는데 괜히 나 혼자 또 멀리 갔다.
집게 소동은 이렇게 우스운 에피소드로 일단락되었다. 앞으로는 절대 봉투에 집게를 넣고 닫지는 않을 것 같다. 대신 다음엔 또 어떤 황당한 실수로 혼자 속앓이 하다 가족에게 자수할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참 재미있는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