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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Mar 24. 2024

엄마와 딸의 달콤한 편지가 전송되었습니다.

고맙고 소중한 우리 사이

Dear. 우리 딸


시아야!

개학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주에 접어들고 있네. 선생님은 선하고 좋으신 분이라 했고 반 친구들도 순둥순둥 착해서 마음에 든다고 해 엄마는 마음이 놓인다. 초등의 마지막 학년도 무탈하게 잘 지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올해는 6학년 전교 부회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지? 두 가지 공약을 전교생에게 약속했으니 1학기가 끝날 때까지 모두 성실하게 잘 지키기를 바란다. 공약을 통해서 학교 친구들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너의 진심이 잘 전해졌으면 좋겠구나. 임원 활동을 하느라 혹시 학원을 빠지게 되더라도 꼭 당선이 되어 학교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던 너의 열정을 엄마는 높이 사주고 싶어.


털털한 성격에 잘 웃고 순해서 시아에게 사춘기가 온 건지 아닌 건지 아직은 아리송하지만 훌쩍 큰 키와 길어진 팔다리, 아기 같기만 하던 목소리가 까랑까랑 해진 걸 보면 마냥 어린 소녀는 아닌 것 같구나. 조리원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젖을 무지게 빨던 아기가 어느새 이렇게 커서 점점 숙녀가 되어가고 있는 건지 아직도 신기하기만 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지난하고 긴 영유아기의 터널지나면 마냥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다시  그리워질 줄이야. 그땐 지금보다 훨씬 젊고 어린 엄마였는데 왜 그렇게도 졸리고 힘에 부쳐 짜증이 났을까. 어릴 때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 주라고 선배 맘들이 누누이 말해줬거늘.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지만 에너지가 바닥때면 네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훌쩍 날아가 엄마 말 다 알아듣고 잘 걸어 다니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 있지. 엄마가 그러지 않아도 때가 되면 너 혼자 의젓하게 많은 것들을 잘할 수 있게 되는 건데 뭐가 그리도 고되어 끙끙댔을까. 


요리는 언제부터 해도 되냐고 네가 유치원 다닐 즈음 엄마에게 물었던 것 같아. 그땐 막연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정말 많이 자랐을 거라 생각해 계란 프라이와 라면 끓이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이야기했었지. 근데 정말 그때가 왔더라? 더는 미룰 수 없어 너에게 가르쳐 주기로 해 우리는 들기름을 팬에 두르고 달걀을 톡 깨서 소금을 톡톡 뿌리는 걸 함께 해봤지? 라면 봉지에 적혀있는 물의 양을 정수기에서 맞춰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라면과 건더기 수프를 넣고 몇 분 끓여 완성이 되면 그릇에 담아 식탁에 는 것까지 배웠잖아. 이제 엄마가 없어도 우리 딸 배고파 쓰러지진 않겠네? 아이고 기특해라. 이런 날이 진짜 오다니 시간은 흐르고 있는 게 맞았어. 모든 건 순리대로 가고 있었던 게지. 다음엔 어떤 요리를 가르쳐 주면 너에게 도움이 될지 잘 생각해 놨다가 또 알려줄게. 일단 후보는 시아가 너무나 좋아하는 우동 끓이기가 될 것 같아. 이것도 라면만큼 만들기 쉬우니 조만간 같이 해보자.


시아의 새 운동화

새 학기가 되고 새 운동화 한 켤레 사주고 싶어 240 사이즈를 주문해 너에게 신겨보니 세상에, 작네? 그제야 시아랑 발을 대보니 엄마보다 엄지발가락은 더 길고 나머지는 엄마랑 길이가 같더라고. 245 사이즈로 부랴부랴 교환 신청을 하며 엄마 혼자 많이 웃었어. 이제 엄마랑 같은 사이즈 신발을 신는구나, 키는 아직 엄마보다 작지만 올겨울이면 따라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처음으로 기묘한 기분이 들더라. 드디어 올해를 기점으로 시아가 엄마의 신체조건을 뛰어넘는구나 싶어서. 이런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온 것만 같아 시곗바늘을 자꾸 거꾸로, 더 천천히 돌리고 싶은데 이런 엄마의 욕심일랑 피식 웃어버리는 한낱 에피소드로 남겨두길 바란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어여쁜 시아야,

남은 2024년도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지내보자.

사랑하고 또 사랑해.


From. 엄마


To. 엄마

 

이런 방식으로도 편지를 쓰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편지는 생일이나 기념일에만 주고받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편지를 읽고 나니 언제 어디서 받던 그 안에 담긴 진심과 애정이 느껴지면 특별해지는 것이란 것 알게 됐어요. 무엇보다 엄마가 솔직하고도 따뜻하게 마음을 전달해 주어서 더 소중한 편지가 될 것 같아요.


여기 대치동과 역삼동에는 학원들에 둘러싸여 새벽 4시까지 숙제를 하고도 할게 남아 학교에까지 들고 오는 친구들도 많은데, 엄마는 정말 저의 미래와 꿈을 위해, 그리고 제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원에 보내고 공부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엄마가 그림 실력이라는 저의 재능을 알아봐 주시고 저의 꿈을 응원해 주셨기에 제가 회장과 전교 임원이라는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한 학원과 숙제에 지쳐 힘들어할 때에는 미술관 전시와 영화 등을 보며 제가 다시 의욕을 찾도록 도와주시고, 제가 해보고 싶다는 건 한번 시도해 보도록 해주어 경험을 쌓게 해 주신 것도 감사했어요.


12년이라는 짧지만 긴 시간 동안 엄마가 제게 해주신 것들이 글로 쓰기엔 부족할 정도로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어요. 항상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도 이렇게 쓰고 보니 감사한 마음이 훨씬 더 커지는 기분이에요.

엄마, 감사하고 사랑해요!

시아가 워드에 직접 작성한 편지(감동 ㅠㅠ)

From. 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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