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나의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편지
엄마가 너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었던가? 네가 뱃속에 있을 때 말고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엄마 뱃속에 네가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 엄마는 신기했지만,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컸어. 엄마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널 바르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처음 해보는 엄마 역할이었고 엄마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기를 갖는다는 건 축복이면서도 미지의 세계로 한 발짝 나가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 엄마의 두려움과 무서움, 기쁨과 행복, 축복을 담아 잠시 태교일기나 편지를 쓰면서 엄마의 감정을 달랬었어. 쓰면서 벅차올랐던 그때의 감정이 기억나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떠올려보았단다. 그때 쓴 편지들은 창고에 보관하고 있지만, 지금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엄마도 궁금해.
엄만 네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또 소중해서, 매일같이 너를 믿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지만 정작 글로 써서 전달할 생각은 못했었어. 글로 쓰는 건 왠지 더 부끄럽고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었나 봐. 작년 학교 공개수업에 갔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편지를 써주세요, 어머니들."이라고 말씀하셔서 짧은 쪽지를 남기고 왔던 게 기억이 나. 그때, 선생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새 학기를 맞고 있는 널 어떻게 응원해줘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방법을 잘 몰랐거든. 그때가 너에게 쓴 첫 편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넌 글자를 알기 시작한 이후부터 엄마 아빠 생일, 어버이날에 항상 편지를 써줬잖아. 네 편지를 받을 땐 의례 당연히 받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데 말이야. 너의 진심을 담은 편지들에 엄마는 항상 기뻤고 행복했어. 정말 고마워.
있잖아, 경민아. 너는 어릴 때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특유의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뭐든 천천히 알아가는 아이였어. 아주 아기였던 시절부터, 창 밖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멍 때리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 멋진 아이이기도 했단다. 그 작은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 엄마는 항상 궁금했어. 그땐 네가 말도 트이기 전이어서 짐작만 했지. 그때의 성정 그대로 네가 잘 크고 있는데, 엄마는 요즘 빨리빨리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것 같아. 네가 학교 가고 없는 이 시간이, 엄마에게는 왜 그랬을까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해.
네가 얼마 전에 "엄마, 나도 자립심을 가지고 싶어."라고 하면서 스스로 준비물을 사 오고 챙기고 하는 모습을 보고서, 엄마는 그 모습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네가 너무 빨리 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주 살짝 시리기도 했어. 엄마 마음속엔 아주 어린 시절의 너부터 다 들어있어서, 네가 어느 순간 이렇게 자랐다는 게 믿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어.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아침에 하는 일들을 어른인 엄마보다도 착착 잘하고 있는 걸 보며, 엄마가 오히려 네게 배울 점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하지만 늘 그렇게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힘을 빼도 괜찮아.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나지 않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 엄마가 잘 알아. 저학년 때부터 숙제 한 번, 일기 한 번 빠뜨린 적 없었잖아. 선생님께 상담을 했을 때 '중학생이 앉아있는 것 같다. 아이가 너무 잘하려고 감정을 참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걱정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가 네게 너무 그런 모습들을 강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간 미안한 마음만 한가득이었어.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까불어도 괜찮다고, 장난 좀 쳐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지만, 역설적이게도 집에서의 엄마는 너의 장난 가득한 모습을 받아주는 모습이 아니더라고. 느리게 가도 괜찮다고 하면서, 자꾸 빨리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엄마의 이런 모순된 모습이 너에게 혼란을 가져왔을 것 같아.
엄마가 너에게 뭔가를 강요하거나 불합리하게 화를 내거나 할 때, 꼭 엄마에게 그만해 달라고 얘기해 줘. 네가 아직 어린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어도 완전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어른들도 흔들리기도 하고 감정 조절이 안되기도 하고 화도 내고 슬프기도 하고 그래. 네가 의지할 어른이 불완전한 사람이라고 하는 게 어쩌면 혼란스럽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성장해 나가는 거야. 너는 너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물론 너보다 오래 살았기에 조언을 해주고 길을 함께 찾아주는 역할은 해줄 수 있지만, 엄마도 너와 마찬가지로 더 배울 것들이 많이 남아있어. 사람은 평생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게 그래서인가 봐. 편지를 엄마의 반성문으로 삼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반성을 또 하게 된다.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가 좋아했던 그림책이 있었어. 네가 태어나고도 한참을 읽어주다가 구강기가 오면서 책을 물고 뜯고 찢고 해서, 흔적만 달랑달랑 남아버렸어. 근데 그 달랑달랑한 모습조차 네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 것 같아 귀여워서 또 한참을 가지고 있다가 이사 오면서 정리했단다. 책 제목은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 책에서 감동을 받는 그런 느낌 있잖아. 그림책은 어린이 책이어서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울컥하는 감동을 받았어. 태어날 너를 기다리며, 태어난 너를 보면서. 다른 상황이었지만, 엄마가 이 책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같았던 것 같아. 그건 바로 사랑.
경민아, 너의 과거와 현재를 사랑하고, 너의 미래를 응원해. 네가 말릴 수 없는 내복맨이었을 때도, 휴지 한통을 다 뽑아쓰면서 깔깔거리고 놀다 혼날 때도, 양말과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다니던 엉뚱한 때에도 널 너무너무 사랑했어. 지금의 너는 깔끔하게 옷 입는 걸 좋아하고 집에서 한 번씩 줄넘기 기술을 보여준다며 뛰다가 혼나고, 오래된 운동화를 버리지 않고 계속 신어 전족을 만들고 있지만 그런 네 모습도 사랑해. 어리숙한 네 모습들과 성장한 모습들을 다 사랑해. 네가 학교에서 상장을 가져와도, 선생님께 혼나고 반성문을 쓰고 와도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다 소중해. 그런 많은 모습들이 미래의 너를 만드는 초석이 될 거야.
넌 아마 자라면서 계속 바뀌고 변화하고 시행착오도 실패도 겪고 많은 경험들을 하면서, 더 멋있어지고 성장하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좋은 날도, 힘든 날도 있겠지만, 그 모든 날들을 너의 날로 만들 수 있기를. 실패를 견디며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너의 뒤에서 항상 지지하고 응원하는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기억하렴. 하고 싶은 거라면 뭐든지 해봐, 지금처럼. 넘어지면 일어서고 다치면 반창고를 붙이고 말이야.
네가 엄마의 키를 넘어서고 덩치가 엄마의 두세 배는 되더라도, 엄마 마음속엔 항상 귀여운 네가 자리 잡고 있단다.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네가 눈물 나게 고마워. 그리고 많이 많이 사랑해.
엄마!
나 글쓰기 손아프니까 불러줄게. 엄마가 적어줘.
엄마가 나한테 사랑하는 마음을 알려주려고 이렇게 길게 편지를 적어줘서 정말 고마워. 나중에 사춘기가 오더라도 엄마한테 언제나 사랑을 표현하려고 최선을 다할게.
엄마, 그리고 엄마가 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고마워. 엄마(랑 아빠) 덕에 우리 가족이 너무 행복해. 엄마가 글 쓰는 엄마가 되어서 재미있어. 엄마 사진도 같이 골라주는 게 스릴 있고. 엄마 글에 내 편지가 나오게 해 줘서 영광이야.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추신> 쬐꼬만 사람들은 내 선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