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편지를 주고받고 글을 쓰기로 했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한참 고민을 했다. 아이와 여행 중에 갔던 소품샵에서 산 엽서를 꺼내 들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귀여운 고양이들이 그려져 있다. 좋아하겠지? 특별한 날도 아니고 목적도 없고 뭘 써야 할까.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구구절절 적기로 했다. 아이와 수학공부를 하면서 자꾸 다투게 되어 미안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아이의 반장선거 과정 이야기를 들은 분이 아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머리가 띵, 했다. 남도 믿어주는 아이를 나는 왜 믿지 못하고 있었을까. 제일 먼저 아이를 믿어줄 사람은 나인데 말이다. 끝까지 믿어줄 사람도 나이다. 이 사실을 이제 잊지 말아야지. 하지만 다시 또 망각하고 불안해하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럴 때 이 글을 읽어봐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편지를 썼더니 혼자 애절해졌다. 편지를 쓰면서 울고 있었다. 아이한테 화가 날 때는 문득 혹시 아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엄마는 아닐까, 할 정도로 마음이 식는 것 같아 두려웠다. 아니었다. 아이를 이토록 사랑하는 엄마였구나, 안도하는 마음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열심히 눈물 닦아가며 쓴 편지를 아이가 좋아하는 책에 끼워 수줍게 건넨다. 혹시 읽어달라고 하면 예전처럼 무릎에 앉혀놓고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엄마가 편지 썼어. 읽어보고 답장도 써줘야 해."
<사랑하는 우리 딸, 사랑이에게>
엄마보물, 엄마보배 우리 사랑아. 요즘 공부 많이 하느라 힘들지? 그래도 화내지 않고 스스로 할 일 하는 우리 사랑이가 얼마나 의젓한지 몰라. 엄마는 우리 사랑이가 항상 멋지다고 생각해. 알고 있었어? 요 며칠 엄마가 수학공부하면서 화 많이 내서 미안해. 엄마 마음이 급해져서 그랬던 것 같아. 우리 사랑이를 엄마는 믿고 있어. 멋진 사랑이로 잘 자라주고 있어. 고마워! 늘 엄마 이해해 주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는 우리 사랑이랑 이야기하는 시간이 정말 정말 재밌고 신나. 엄마의 소중한 단짝이 되어줘서 고마워. 우리 딸이 엄마 뱃속에서 젤리곰만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사랑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어. 그 확실한 사실은 잊으면 안 돼. 엄마가 부족해서 표현을 하지 못하거나 화를 낼 때도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알았지. 엄마는 항상 우리 사랑이편이야. 우리 딸 뒤에 엄마가 서 있다는 걸 기억해. 사랑하는 사랑아, 지구가 사라지고 우주가 끝난다고 해도 엄마의 사랑은 끝나지 않을 거야. 영원히 영원히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 살며 받은 가장 큰 선물이야. 앞으로도 이렇게 멋진 선물은 못 받을 것 같아. 사랑이를 만나 이렇게 행복하려고 엄마는 태어났나 봐. 고마워. 사랑해. 2024.03. 엄마가
"응, 알았어. 조금 이따 읽어볼게."
앗, 시작부터 예상과 조금 다르다.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기다리다 보니 그 마음은 점점 부풀고 있다. 아이가 어떤 표정으로 편지를 읽을지 참을 수 없이 궁금해진다. 저녁을 먹고 아이는 슬쩍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두근두근.
"젤리곰이 뭐야? 나 젤리곰 같아?"
임신했을 때 뱃속 초음파를 보고 곰모양 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기억나 쓴 단어가 인상 깊었나 보다. 바로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흐뭇하게 보고 있으려고 했는데 사진도 찍어볼까 했는데, 그새 다 썼단다. 벌써? 갑자기 종이비행기를 접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에게 날려준다. 편지를 펼쳐보고 피식 웃음이 난다. 많이 짧다. 젤리곰에 꽂혔다.
작년에 아이에게 자꾸 화를 내는 것 같아 쪽지를 써주기 시작했다. 책에 쓰여있는 아이에게 해주면 좋은 말들이 입에 붙지 않아 쪽지에 써서 아침에 건넸다. 아이는 처음에는 좋아하는가 싶더니 이내 심드렁해졌다. 어느 날은 아이방에 가보면 먼지와 함께 저 책상 아래에서 뒹굴고 있었다. 아니 내 소중한 마음을!!! 실은 쪽지를 쓰는 것이 좋은 것은 내 쪽이 아니었을까. 아이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엄마역할을 잘 해내고 있구나 자만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도 열심히 써서 한 곳에 모아두었다. 나중에 아이가 마음이 힘들거나 지칠 때 엄마가 써준 마음을 읽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쓰여있는 멋진 말에서 힘을 받아도 좋겠지만 엄마가 마음을 쓰던 그 순간을 아이가 알아주기만 해도 좋겠다. 아이에게 쓰는 편지는 나에게 해주는 말, 미래의 아이에게 해주는 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