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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카리 Mar 29. 2024

아들!

장남에게 쓰는 편지

안녕. 엄마야.

우리 아들이 벌써 그 유명한 중2가 되었다니, 언제 이렇게 많이 컸는지 놀랍고 믿기지가 않구나.


'엄마'한테는 딸이 필요하다고 많이들 하는데, 엄마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딸이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단다. 희한하지? 엄마 자신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애교 많고 살가운 좋은 딸이 아니었기에 낳아봤자 나 같은 딸이 나올 텐데 싶어서 그다지 기대도 안되고, 딸에 대한 로망이 안 생기더라고. 사소한 거에 상처받고 대범하지 못한 성격이 여자라는 게 한 몫하는 것도 같아 내 딸이 그렇게 살기 바라지는 않기에, 그다지 딸을 낳고 싶지가 않았던 거 같아.

자연스럽게 네 아빠와 똑 닮은 아들을 낳고 싶다고 항상 바라왔었는데, 낳아보니 어쩜 얼굴도, 초등학생 입맛인 식성도, 심지어 가만히 있다가도 혀를 깨물어 잇몸에서 피가 나는 구강 구조마저 아빠를 쏙 빼닮아버린 아들이 나오다니, 엄마 인생은 너로 인해 이미 대성공이지 뭐야.


우리 아들에게는 고마운 게 참 많지.

먼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큰 기쁨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단다. 비혼 주의자인 누군가는 비웃더라고. 그게 왜 결혼해야 되는 이유가 되냐면서. 근데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든든한 손주 역할을 잘해줘서 엄마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엄마가 못하는 영역의 효도를 우리 아들이 감당해 주는 느낌이랄까. 너희로 인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진심으로 행복해하시니 엄마도 너무 뿌듯하고 감사해.


우리 아들이 배 속에 있을 때 우리 아가는 어떻게 생겼을지 무지 궁금하더라고.

엄마 아빠 둘 다 장동건 고소영 커플과 같은 이목구비 뚜렷한 스타일은 아니기에 우리 아들의 외모가 우리의 흐리멍덩한 부분을 모아 혹시라도 못 생겼을까 봐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었지. 다행히도 꽃미남은 아니지만 우리 외모에 이 정도면 성공이라며 둘이 웃었어. 잘 자라줘서 고맙구나.


우리 아들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이성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엄마가 얼마나 자주 대리만족했었는지 몰라. 엄마는 단 한 번도 그런 인기를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 네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반 축구를 마치고 반 전체가 다 같이 자장면 집에서 회식을 하러 갔었는데, 반 여자 친구들이 너의 이름 석자를 외치며 서로 자기 옆에 앉으라고 했던 거 기억나니? 그 황홀했던 순간을 엄마는 잊을 수가 없구나. 그때 엄마 기분은 구름 위에 둥둥 떠있는 것 같았어. 우리 아들 아니었으면 언제 그런 느낌을 받아보겠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초등학교 2학년 밖에 안된 네가 장례식장에 오신 분들 신발을 정리를 하고 어찌나 의젓하던지. 슬퍼하는 엄마를 위로해 주었던 거 기억나니?

"엄마, 외할머니는 천국에 계셔. 걱정하지 마"라고 해주는 말에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순수한 네가 확신을 가지고 그 말을 말해주니 외할머니가 천국에 계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신하고  믿을 수가 있었단다. 천국에 계시다는 사실이 참 큰 위로가 되었지. 오랫동안 편찮으셨던 외할머니께서는 손주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는 살고 싶다고 하시곤 하셨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져서 정말 다행이었어. 외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느꼈고 지금까지도 그 사랑을 기억한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맙구나. 혼자 계신 외할아버지에게도 여전히 든든한 손주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잠들기 전 항상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는 아들.

"엄마 학교 학생들이 말썽 부리지 않게 해 주세요. 학교 가는 거 싫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해주는데, 그 기도를 듣고 어찌나 큰 힘이 나던지.

올해는 비담임이라는 사실에 마음 편히 2월을 보내고 있었던 엄마가, 2월 마지막 날, 개학 4일 전에 걸려온 교장선생님의 전화로 담임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신규로 채용될 수학선생님이 아직 안정해졌다며 갑자기 담임을 맡아달라고 하는 말에

엄마는 애들 앞에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상황이 너무나도 황당해서, 거절 못하는 나 자신이 딱해서, 그 자리를 누가 거절했을지 뻔히 보이는 것 같아서, 울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그걸 지켜보던 네가 엄마는 잘할 수 있다며 든든하게 응원의 말을 건네주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단다.


이번에 개학식을 마치고 온 후 같은 반에 아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서 슬프다는 너의 말을 듣고 생각지 못한 전개에 얼마나 마음이 쿵 내려앉았는지 몰라. 그래도 이런 적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엄마보다 사회성이 좋은 우리 아들은 매년 친구를 잘 사귀고 잘 해내 왔기에, 마음은 많이 아팠지만 사실 크게 걱정은 안 했어.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3월 초에 너무나도 바빠서 엄마 걱정을 하느라고 아들 걱정까지 할 여력이 없었어. 너무 어이없지? 엄마 자신도 어이가 없더라. 내가 살아남기에 급급해서 아들 걱정을 하지도 않다니 말이야. 근데 그만큼 우리 아들이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거든.

  

네 동생이 지난번에 잠들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더라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형아가 지금 사춘기인가 봐요. 멋진 어른이 되려고 하나 봐요.

형아가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텐데, 그러면 죽을 텐데, 우리 엄마 아빠가 죽지 않게 해 주세요. 우리 가족 모두가 잘 지낼 수 있게 해 주세요."  

동생의 기도대로 우리 큰 아들이 멋진 어른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항상 응원하고 있단다.




ㅎ…

나의 대한 마음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네 ㅋㅋ…

내용 보면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적, 아직 내가 어렸었지만

진심이 담긴 말투로 엄마를 위로해 주었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왜냐면…… 엄마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었거든…… 그때는 외할머니 병원침대에 있는 어떤 줄이 있었는데 나는 그게 외할머니를 살릴 거라고 믿었어 ㅋㅋ 왠지는 모르겠지만 외할머니는 절대 여기서 돌아가실 거라고는 믿지 않았지….. 하지만.. 그 어떤 줄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외할머니를 지금보다 더욱 편한 곳으로 보내주었지

이렇게 슬픈 일이 있어서 나보다 더 슬퍼하는 엄마를 간절하게 위로했어 그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엄마가 쓴 글을 보고 내가 도움이 되었구나….!라는 자랑의 뿌듯함을 조금 느꼈지ㅎ

이로서 2학년 생활도 이 뿌듯함으로 "난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보낼 수 있을 거 같아. 내일은 더 어깨가 올라가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내일부터 쭉~


3월 학기 초, 교우 관계로 힘들어 하는 아들과 주고 받은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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