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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의 불량이 Dec 03. 2023

인생극장 (그래, 결심했어!)

두 아이, 서로 다른 성장 이야기의 시작

 맹모삼천지교라 했던가, 큰아들의 진학을 위해 서울과 분당 등 여러 곳의 집을 보러 다녔었다. 외곽의 작은 도시에서 갑자기 서울, 분당은 힘들 거라는 조언들을 받아들여 그래도 조성된 지 얼마 안 되는 신도시 중에서 공부를 많이 시켜 분위기가 좋다는 학교가 낫지 않을까? 그렇게 큰아들의 중학교 진학 시점에 우리는 조금 더 큰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일반중, 일반고를 진학했다. 

 너무나 당연한 듯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픽업해 가고 그렇게 돌고 저녁을 먹고 바로 스터디카페를 가고, 다음 날도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그렇게 하는 게 너무 당연했고 아내는 아이 시험 점수에 따라 학원을 고르고 학원 테스트를 보러 다니고 아이는 또 공부 방식도 바꿔보고, 힘들지만 너무나 당연한 듯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그리고 성격이 순한 큰아들도 그런 생활에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물론 나와 아내도 그렇게 학창시절을 그렇게 살았다. 큰아들은 올해 수능을 봤고 이제 대학을 갈 것이다. 아직 학교와 전공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재수를 안 한다고 했으니 어디든 학교에 갈 것이고, 계속 경쟁은 하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 우리가 그렇게 살았듯 무난하게 행복하게 삶을 살길 바란다. 

 둘째 아들은 큰아이와 네 살 터울이다. 그리고 형과 다르게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해 운동선수 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어느 날 운동하고 돌아온 아이가 얼굴이 일그러져있다. 현관을 들어오자마자 절뚝거렸다. 걸음 걷기 불편할 정도로 아파 보이던 아이는 운동하러 가는 시간이 되면 또다시 멀쩡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너무 아파하는 아이를 반강제로 정형외과에 데리고 갔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나서 발 뒤꿈치 쪽 인대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방치해 염증도 심해져 있다는 검사 결과였다. 

 그동안 어찌 운동을 했을까? 싶었다. 당분간 운동을 쉬고 치료를 받으라는 의사의 말에 아이는 하늘이 무너진 듯 낙심했다. 진단을 받고 나서도 아이는 울며 불며 운동하러 가야 한다고 때를 썼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운동하러 가서 밤이 돼야 들어와 힘들다며 쓰러지는 아이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차분히 가라앉히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그렇게 좋냐?라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아빠, 내가 잠깐 쉰 사이에 내 자리가 없어질 것 같아”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믿기지 않았다. 운동하러 가기 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운동하러 가는 것으로 타협했지만 그 치료라는 것이 발 뒤꿈치에 근육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치료받고 바로 운동을 하러 갔다. 엄마와 시간이 맞지 않을 때는 혼자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운동하러 갔다.

 거창한 국가대표 선수 이야기가 아니다. 12살짜리 유소년 야구선수인 아이의 이야기다.     

 아이의 진로가 예체능인 부모님들은 많이 공감하실듯하다. 매일 주말도 하루 빼고는 매일 훈련하고 그나마 시합이 있는 날은 쉬지도 않고 쉬지도 못한다. 부모는 거의 같이 따라다니고 병원을 들락거리고 훈련장으로 레슨 받으러 운동할 시간에 맞춰 아이 픽업은 물론 간식, 식사에 감독과 코치도 챙겨야 하고 갖가지 행사들까지 아이가 선수생활을 하는지 부모가 선수생활을 하는지 모르게 보냈다. 

그러다 초등학교 3년을 야구로 살았던 아이의 진학 시점이었다. 나쁘지 않은 실력으로 몇몇 중학교에서 와달라는 연락을 받던 상황이었지만 개인 고민과 감독과의 진학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열정을 쏟았던 야구를 그만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진학과 관련된 감독과의 갈등은 운동시키는 부모님들은 아실 것 같고 상상이상의 일이고 쓸만한 내용(물론 모든 운동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대부분의 감독과 코치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이 아니라 언급하지 않겠다.

안 그래도 힘들었던 나와 아내는 “나중에라도 다시 하고 싶으면 그때 다시 해도 된다”라고 말하고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아이폰을 바로 사줬다. 그렇게 아이는 아이폰과 3년의 운동을 바꿨다.

 야구로 진학을 했으면 어땠을까? 내가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이의 고생, 게다가 비용이며 시간이며 그때 같이 아이를 운동을 시켰던 부모님들과 아내는 교류를 이어가는데 그중에 중등, 고등 과정으로 진학시킨 부모님들도 있다. 이야기 들어보면 유소년 운동은 장난이고 차원 다르다 한다. 지금도 그때 운동을 그만둔 아이에게 감사하다.      

 야구를 그만두고 난 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운동할 때는 매 끼니를 ‘이렇게 먹어도 되나? 저렇게 먹다가 토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먹던 아이가 식사량이 줄고 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콩나물 자라듯 키가 자랐다. 키가 클 시기가 된 것도 있지만 운동을 그만뒀지만 그간의 근육이 있어서 그런지 어깨는 벌어지고 균형 있는 몸으로 너무 예쁘게 자란다. 지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아이의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해서는 선수생활이 아니면 한 가지 운동에 매진해 보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운동할 때는 학교든 어디든 야구복과 트레이닝복만 입고 다니던 아이는 평상시 입을 옷을 몇 벌 사면서 형의 옷을 입기도 하고 안방 옷장을 뒤져 닥치는 대로 꺼내 입으며, 패션디자인에 관심을 갖었다.

 TV에 나오는 유명한 모델을 보고는 그 사람처럼 되겠다며 하루종일 물 한 모금 안 먹고 버티는 날도 있었다. 집안에서 뒤뚱뒤뚱 우스꽝스러운 모델 워킹을 연습하고 여러 옷을 매칭해가며 하루에도 몇 번 옷을 갈아입어 아내를 힘들게 했다. 

 브랜드 옷도 좋아했지만, 그 무렵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홍대 옷가게, 부평 지하상가 등을 데리고 다니고 좋아하는 옷을 사줬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저녁마다 배드민턴과 족구를 하며 체력을 썼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옷과 모델을 그리며 디자인했다. 야구 이야기는 아이의 입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그 무렵 나의 체력도 늘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여러 가지에 매진하던 아이는 나의 오랜 친구의 추천으로 대안학교 캠프에 참여한 후에 마음을 굳혔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공부와 활동을 하고 일반 교과과정을 공부하지 않는 대안학교로 진학을 결심했다.

그러나 대안학교는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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