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은채 Dec 28. 2023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공중화장실에서 많이 보이는 문구가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처음 이문구를 본 것으로 기억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

이 문구가 뇌리에 박힌 사람처럼 어디를 가든 뒷정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존재하는 순간 머물러있는 순간 내가 있는 공간이 어질러져 있는 상황은 용납할 수 있지만 내가 사라진 후 내가 있었던 곳이 어질러져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귀가 빨개진다.


버스를 타면 앞자석의 등받이에 광고지가 들어있는 공간이 있다. 간혹 쓰레기가 보인다. 내가 넣어둔 쓰레기가 아니어도 꺼내어 내릴 때 갖고 내린다. 내가 버린 거라고 오해받기 싫고 나의 다음차례로 이 자리에 앉는 사람이 이 쓰레기로 인해 불쾌하지 않길 바란다. 그게 누구든. 갖고 내리는 나의 마음 깊은 속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화장실에서 여성용품뿐만 아니라 휴지를 제대로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스타벅스에서 9년간 근무한지인이 가장 힘든 것이 화장실청소라고 하더라. 내가 버린 휴지에 이름이 기재되어있지 않기에 뒷정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조차 그냥 두고 나올 수가 없다. 내가 볼일을 보고 나온 후 다음사람이 화장실에 들어와 불쾌함을 느끼면 그 불쾌감을 처리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더럽게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오해받는 것도 싫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뒤처리를 하면서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하더라도 쾌적한 환경에 이바지를 한 나 자신이 뿌듯하다.


샤프로 사각사각 소리 나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도서관에서 필사를 하거나 메모를 할 때 샤프를 사용한다.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잘못 쓴 경우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쓴다. 그러다 보니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두 세 가닥 떨어져 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꼭 가방에 지우개가루를 넣어서 가지고 나온다. 도서관 사서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지우개가루를 주우며 나 자신을 칭찬한다.


얼마 전 휴대폰매장에 방문했을 때 건네받은 둥굴레차를 다 마시고 빈 종이컵을 상담데스크 위에 두지 못한 채 가방에 넣어서 나왔다. 숙박업소에서 머무르고 나올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말끔하게 정리를 하고 나와야 마음이 안정된다. 내가 떠나고 난 뒤 자리가 잘 정돈되어 있기를 바란다. 숙박업소 청소담당자분들께 마음으로나마 머무른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보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로 아름답다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그러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신념이 무너지는 일이 있었다.


신랑이 차에서 내리는데 묻는다.
"나 진짜 궁금한 게 있어"
사뭇 진지한 표정에 긴장을 하고 되물었다.

"뭔데? 왜에?"

"밖에서 쓰레기는 다 가지고 집에 들어오면서 차 안 쓰레기는 왜 두고 내리는 거야? 집에서는 머리카락하나 떨어지면 바로 청소하면서 왜 차 안에서는 그렇게 흘리고 먹고 안 치우는 거야? 내가 치우면 되는데 나 진짜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무척 진지했고 동그랗게 큰 눈을 뜨고 궁금해하는 신랑 표정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러게 나 왜 그러지?? 차는 더러워도 아무도 못 본다고 생각하는 건가 봐"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일하는 곳에서도 집에서도 외출을 했을 때에도 청결 위생 정리에 있어서는 타협이 없다. 유난을 떤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그런 나에게 신랑차는 예외의 곳이었다. 먹다 남은 견과류 봉지를 그냥 두고 내린다. 쓰고 버린 물티슈를 그냥 두고 내린다. 희찬이가 흘린 뻥튀기를 발로 밟아 바닥에 뻥튀기 가루폭탄이 날려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날밤 샤워를 하는데 신랑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나 조차도 나의 행동이 궁금했다. 신랑차에 머무는 동안 내가 차를 어지럽혀도 뒷정리를 하지 않고 내려도 어차피 그다음 내가 앉을자리다. 내가 머문 자리를 신랑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않을곳이다. 그랬다. 나의 무의식 속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인척 다른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나 자신마저 속여가며 나의 가면을 들킨 날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사람은 이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있어도 머문자리를 정돈하겠지?

그 경지에 이르는것은 아무래도 힘들것같다. 


오늘도 여전히 일터에서 우리집 주방에서 깔끔한척의 일인자였고 신랑차에서는 손을닦은 물티슈를 두고 내리고 빵을 꺼내먹고 남은봉지를 두고 내렸다. 이왕 들킨거 차에서만큼은 그냥 더럽게 지낼까한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원형탈모와의 결별(수술 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