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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Jan 04. 2024

자영업자로 산다는 것은

대장내시경이 싫지 않았다.

일중독이라고 말하면 내가 원해서 중독된 거라고 해야 할까? 일에 치여서 살았다고 말하면 일하기 싫은데 억지로 일에 시달린 모양새라 그건 또 싫다. 일중독이던 일에 시달렸던 어쨌든 일만 했다. 일만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24시간중 18시간을 일을 했다. 6시간안에 집안일과 수면 육아을 해결해야했다.매장에서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뭐든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했고 내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공감하겠지만 자영업자는 본인이 곧 사업밑천이고 본인의 노동력이 곧 매장의 생사를 결정한다. 


그 결과 만성피로는 동반자였고 만족할 만큼 수면을 취하는 것은 사치였다. 저혈압으로 새벽기상이 힘들지만 동네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여는 매장으로 4년차 이던 어느 날 혈변을 보기 시작했다. 원하는 시간에 화장실을 갈 수 없기에 변비 역시 숙명이라 여기며 지냈고 당장의 불편함이 없는 혈변 따위에는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혈변이 한 달간 지속되어 결국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병원을 방문했다. 대장내시경을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하셨고 당연히 없다고 답변을 했다. 아이 영유아검진도 야간진료로 다녀올 만큼 바쁜 나날이었으니 나의 건강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궁금한 것은 총 소요되는 시간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3시간을 예상해야 하며 대장내시경검사는 오전에만 진행한다고 하셨다. 평일오전 시간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선생님 저는 오전에는 아예 움직이지를 못해요. 검사는 못할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은 혈변이 일주일이상 지속되었기에 꼭 대장내시경을 봐야 한다고 재차 말씀하셨다. "저도 검사가 하기 싫은 건 아니지만, 제 스케줄로는 도저히 오전에 시간을 낼 수가 없어요. 아이 입학식 졸업식도 오전에 진행되어 가지 못하는 엄마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안 듣고 고집을 피우는 환자가 된 기분에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환자의 치료를 위한 사명감 때문이셨는지 인간으로서의 측은지심이셨는지 두 번의 전화연결을 하신 후 예외적으로 익일 오후 2시에 대장내시경 예약을 잡아주셨다. 갑작스럽게 잡힌 다음날 2시 대장내시경 검사였다. 저녁시간부터 처방받은 장청소약을 먹어가며 장 대청소를 했다. 새벽에 기상 후 출근을 해서도 먹어야 할 약이 있었고 비울 것도 없을 것 같은 장 속을 끊임없이 비워냈고 혈변 역시 계속 동반되었다. 검사로 인해 1시 30분부터 자리를 비워야 하는 부담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매장은 근무기간이 오래된 주방스텝들이라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불안함을 안고 병원에 도착했다. 

"마취약 들어갑니다. 열까지 셀게요"

"하나 둘 셋......."


"은채님?? 정신이 드세요?? 벌써 3시간이 넘었어요. 이제 일어나셔야 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수면마취제의 힘을 빌려 밀린 잠을 청했는지 나의 의지인지 아닌지조차 판단할 수가 없었다. 꿈속 저 멀리에서 분명 누군가 나를 깨우는 것 같았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고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무거웠다기보다 가볍게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1시간을 더 마취에서 아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2시에 수면내시경을 진행하고 6시가 넘어서 깨어났다. 부재중통화는 20건도 넘게 와있었고 나를 걱정했을 사람들에게 미안했지만 4시간이나 일터를 뒤로하고 잠들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고 일탈이라도 한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검사결과 들으셔야 하는데 이제 정신이 드세요?"

"아~~ 네네!! "
몇 시간 전 나를 열심히 깨우던 목소리의 간호사선생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죄송했다.

"환복 하신 후에 1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옷을  갈아입으러 걸어가는데 비틀비틀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가 않았다. 
수면마취제에 제대로 취한 모양이다. 

7시까지 진료하는 병원이 아니었더라면 비틀거리며 매장으로 걸어갔겠군. 하며 다행이라 생각했다.

인상 좋은 원장님은 일단 현재 설명을 들을 수 있는지 물으셨고 다음번 수면마취가 있을 경우는 꼭 보호자를 동반하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수면마취 후 깨는 시간이 환자마다 찬차만별인데 나의 경우 육체적 정신적 두 가지 측면에서 오래 걸리는 케이스라 보호자 동반이 꼭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의 대장을 모니터로 보여주시며 설명을 시작하셨다.
"용종 2개는 내시경 과정에서 떼어냈어요. 그런데 대장선종이 발견되어서 내일 당장수술을 해야 합니다. 대장선종의 크기가 제법커서 혈변의 원인으로 판단되고 대장선종은 대장암의 씨앗입니다. 대장암으로 진행될 가능성 높은 종양이기에 조직검사도 내일 진행할 예정입니다."


 용종은 들어보았지만 대장선종은 처음 들어보았기에 상황판단이 되지 않았다. 아직 비몽사몽인 나에게 조직검사 이야기도 번거롭고 귀찮은 상황들이었다. 혈변을 일주일 넘게 보았을 뿐인데 대장내시경에 바로 다음날 수술을 하라니 갑자기 무슨 상황인가... 머릿속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매장을 비운적이 없는데 별일은 없는지 원장님의 설명은 들리지 않고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니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나왔더니 간호사선생님이 2시 수술이니 1시 반까지 내원해야 하며 공복을 유지하라고 설명을 해주신다. 선종이라는 놈이 어떤 놈 인지 보다 내시경검사로 어제부터 공복이었는데 총 48시간 공복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갑자기 배고픔이 몰려오는듯했고 격하게 수분이 필요했다. 물을 한잔 마시고 병원에서 나와 신랑에게 전화로 대충상황을 알리고 매장으로 향했다. 


밀려있는 카톡상담과 전화를 기다리고있는 전화상담 손질해야 할 식재료들이 남아있었고 다음날 새벽에 필요한 식재료를 주문해야 했다. 멈춰있던 두뇌를 회전시켰고 손 역시 빠르게 움직였다. 배송을 마치고 돌아온 신랑에게 오늘의 검사결과,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 꿀잠을 잔이야기, 내일수술일정을 세세히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떨어진다. 슬프지도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다.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검사결과 암덩어리 일지라도 내일 제거하면 되는 일이라서 원장님은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하셨고 나 역시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신랑의 눈을 보며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그날의 나의 눈물은 무슨 의미 었을까? 알 수가 없다. 다만 신랑의 눈빛은 기억할 수가 있다. 고개만 끄덕이며 내 눈을 계속 쳐다보며 수다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신랑의 눈에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뒤섞인 슬픔이 느껴졌다. 신랑이 슬퍼하니 눈물이 났나 보다.


다음날도 5시 30분부터 우리 부부는 서둘러 일을 시작했다. 장난기 많은 신랑은 어제부터 말을 잃었다. 원장님은 보호자를 동반해서 오라고 했지만 보호자인 신랑은 두 분의 기사님과 함께 배송을 해야 했다. 두 분의 기사님께 신랑몫까지 추가로 부탁드리고 양해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빨리 배송받길 원하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자영업자는 손님의 입장이 그 어느 상황보다 중하다. 여동생은 당시 호주에 있었고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친정엄마에게 부탁할 일은 아니었다. 신랑은 대장내시경을 혼자 보낸 것도 속상해했는데 수술까지 혼자 다녀와야 하는 현실과 상황에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수술당사자는 나인데 오히려 신랑이 안쓰럽기까지 할 만큼 불쌍한 표정과 화난 표정을 동시에 지으며 분주히 움직였다. 1시 30분 배송이 출발되었고 나 역시 주방에서 벗어나 어제처럼 일탈을 하러 병원을 향했다. 수술을 하러 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발걸음이 신나 있었다. 마취 후 어제처럼 꿀잠 잘걸 생각하니 피로와 걱정이 사라졌다. 신랑과 가족들 주방스텝들은 그날 내가 신나 있었을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주방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며 수술 잘될 거라고 걱정해 주었던 주방스텝들에게도 미안할 만큼 걱정 없이 병원을 향했다. 역시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어제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오늘은 가볍다 못해 들떠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배송을 출발하기 직전 신랑은 잘 다녀오라는 한마디와 1초간의 눈빛으로 모든 걸 말해주었다. 신랑은 눈물을 흘리기 직전의 표정이었지만 정작 수술을 하러 가는 나의 표정은 신나 있었다.


수술을 마친 후 어제보다는 1시간 빠른 5시에 몸을 일으켰다. 몸이 어찌나 가벼운지 병원 회복실 이 아니라 고급호텔인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아로마 오일 마사지를 받고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면 이런 황홀함일까 싶을 정도로 달콤했다. 분명 잠든 사이 개구리자세를 하고 옆으로 누워 이틀연속 항문을 들이밀고 수치스러운 검사와 수술을 마친 사람임에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수술의 경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원장님은 대장선종을 깊게 제거해서 재발가능성을 최대한 낮췄으며 수술은 잘 진행되었으며 앞으로 건강에 신경 쓰길 강조하셨다.


일주일 뒤 조직검사 결과 악성은 아니었으나 대장암의 위험신호인만큼 6개월 뒤에 대장내시경을 또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이후 2년간 6개월마다 대장내시경을 진행했고 그때마다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기쁨으로 대장내시경을 위한 장청소의 고통을 감내했다.


당시의 내 모습이 철없어 보이기도 한다. 현재 대장내시경에서 대장선종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PET-CT라도 찍어보자고 검사전문병원을 방문할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꿀잠을 잘 수 있게 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고마워하기라도 한 듯 잠에 취했다. 자영업은 역설적이지만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 그중 내가 생각하는 가장 지독한 것은 배우자의 병원에 동행하지 못할 만큼 우선순위가 고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늘 우선순위가 내 아이보다 고객의 사정이고 내부모보다 고객의 상황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 아이도 내부모도 지킬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자라면 본인의 가게이기에 시간이 자유로 울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가끔 자유로워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가벼운 두 손으로 자유롭게 집으로 들어가는 걸 많이 보았다.

자영업자로 산다는 것은 자유로움을 이겨내고 본인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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