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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Nov 04. 2023

아르바이트생에게 봉투를 받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쏠쏠한 용돈벌이를 시작으로 아르바이트경험이 많다. 한정식집, 의류매장, 공사현장 못 줍기, 일본어과외, 번역알바 등 닥치는 대로 했더니 분야도 다양하다. 경험이 많기에 누구보다 그곳의 고충과 스트레스를 안다.  면접당시 인자한 사장님 가면에 속고. 밥 먹듯 손님과 시비가 붙었던 싸움닭사장. 다른 아르바이트생 험담을 입에 달고 사는 사장. 별의별 사장이 다 있다. 싸움닭을 만나러 가는 출근길은 인상이 절로 써졌고 사람은 싸움닭과 일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한 달 만에 그만둔 최단시간 알바자리다. 도시락집 알바면접도 기억에 남는다. 실수라도하면 잡아 먹힐 것 같은 날카로운 첫인상. '이번에는 살쾡이구나' 생각하며 다른 곳을 찾을 때까지만 해보자 고 마음먹게 한 사장님은  인상 한번 쓰지 않으셨다. 입학과 동시에 졸업까지 4년간 최장알바기간을 누리게 해 주셨다.


 누구나 기준이 다르겠지만 학생입장에서의 최고의 사장님은 밥 잘 챙겨주는 사장님이었다. 일본유학시절 첫 1년은 일본어가 서툴러 한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배고픈 유학생인걸 아시기에 매일 저녁밥을 주셨고 16년이 지난 현재도 안부인사를 주고받는 감사한 이모다. 어릴 적 엄마말 틀린 거하나 없다. 배고플 땐 먹을 것 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라는 진리.


워킹맘에게 있어 좋은 사장 좋은 일자리는 먹을 거 잘 주는 사장이 절대 아니었다.



우리 부부가 운영하는 매장은 아르바이트생의 평균  근무기간이 2년이다. 한두 달 만에 얼굴이 바뀌는 주변상가의 아르바이트생을 보면 잦은 신입교육에 사장님들도 지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을 함께했던 전 워킹맘 알바언니들은 대학원입학 이사를 제외하고는 그만둔 적이 없었고  모두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옛 친구 같은 인연들이다.


매년 생일 축하메시지와 안부를 묻는 메시지는 방전되어 가는 나의 배터리를 충전시켜 준다. 사장으로서의 나 의 인격체는 결코 다정하거나 친절하지 않다.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재미없는 사장일 뿐이다. 근무환경 역시 좋은 환경이 꿀알바라면 우린 사약 알바다. 그럼에도 올해 생일 소고기선물세트, 양말, 영양제, 핸드크림의 택배선물과 모바일 쿠폰을 받았다. 자랑할 일이 아니지만 자랑하고 싶다. 전에 아르바이트하던 곳 사장님 치고는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매년 내 생일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의 생일까지 챙겨주는 나보다 3살 많은 진경언니는 든든한 인생선배이자 일 잘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우리 가족의 첫 제주도여행이 있는 날이었다. 설날연휴전날 주방팀은 대청소를 하고 언니는 4시에 퇴근했다. 8시 즈음 매장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언니가 매장으로 들어왔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뭐 놓고 간 거 있어요?"


언니는 상냥한 눈웃음을 지으며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사장님. 이거 안 받으면 다음 달부터 출근 안 할 거야. 일단 받아. 제주도 가서 돈 끼지 말고 내가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언니로서 밥 사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맛있는 거 사 먹어"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언니의 환한 미소는 가려지지 않았다.

 돈 봉투를 누군가에게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아지는 몇 가지 상상 속에 조차 없는 일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해 다른 젊은 친구들처럼 밝은 옷 좀 사 입으라며 5만 원짜리 두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던 일 이 있다. 내가 받은 마지막 용돈이다. 이후 내 삶은 늘 용돈을 드리는 삶이었다. 친정에서는 큰딸. 언니. 큰누나였고 시댁 역시 용돈을 드려야 하는 사정이기에 봉투를 받는 상황이 어색했다. 흔히 봉투를 받으면 손사래를 하며 무슨 이런 걸.이라는 멘트도 할 텐데 그저  어안이 벙벙 손짓 눈물뿐이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사람을 울린다.


진경언니가 한 달 아르바이트비용으로 받는 급여는 100만 원 정도다. 한 달 동안 땀 흘려 번 돈 중 20만 원을 봉투에 넣어 주었다.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있으랴. 1년만 근무하겠다던 언니와는 3년 6개월이나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로 만났고 저번주에는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꿈을 꾸었다며 카톡이 왔다.


어느 날은 언니에게 궁금해서 물었다.

"언니? 아이 입학 하면 여기 그만두고 가까운데 다닌다더니. 솔직히 우리 주방 너무 힘든데 왜 계속 다니는 거예요~언니 나랑 정들어서 그런 거예요~?  

"사장님이 맛있는 거 잘 사줘서"

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건데"

멈출 수 없는 식욕과 당땡김이 도움이 될 때 가 다 있군 이라 생각하며 실없이 웃었다.


진경언니는 그날 긴 카톡을 보내왔다.

아이 유치원시절 몇 번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아이가 아플 때 마음 편히 쉴 수 없었고, 눈치가 보여서 아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만 했던 설움. 그로 인해 오래 일할 수없었던 알바경험들. 이곳처럼 아이가 아플 때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해 주는 알바자리를 찾기 힘들 것 같아 다닐 수 있을 때까지 다닐 거라는 내용이었다.


진경언니의 아이는 잦은 감기와 놀이터에서의 크고 작은 부상으로  병원을 가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아무리 바빠도 언니의 등을 떠밀다시피 퇴근시켰고 아이가 열이 나면 출근을 하지 못하게 했다. 아이가 아파서 죄인처럼 전화를 해야 하는 워킹맘의 역할이 싫었을 뿐이다. 일하는 엄마는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데 눈치를 보는 아이엄마의 역할이 싫었을 뿐이다. 바쁜 건 가게사정이고 엄마의 가장 큰 역할은 엄마라는 것을 늘 강조했다. 진경언니뿐 아니라 주방스텝 전원 아이엄마였기에 모두 이해했다. 적어도 우리 매장에서는 아이들의 고열이 엄마를 죄인으로 만드는 일은 없길 바랐다. 아직 부족하지만 워킹맘이어서 가능한 워킹맘 이해하기를 계속해보려 한다. 워킹맘은 바지런하게 아이 키우며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

워킹맘에게 좋은 알바자리는 '아이가 열이 나요. 오늘 일 못 가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알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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