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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Nov 02. 2023

요즘 세상에도 이런 사람이 있어? #3

못된 나를 마주하다

1500만 원을 입금드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결혼식장을 돌며 떡케이크를 홍보하면 좋겠다고 신랑이 들뜬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신나서 "뽀로로 떡케이크도 만들면 유치원에서도 인기가 좋을 것 같아요"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사장님. 와이프가 알아서 잘할 거예요. 저도 진행상황을 물어보고 있지 않아서요"

예상을 벗어난 기사님의 한마디에 식은땀이 등줄기로 흐르는 것 같은 민망함을 느꼈다. 주책맞다고 생각해 급하게 말을 이었다.

"맞아요. 맞아요. 저희가 성격이 급하죠~"


우리 부부가 열정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아직 매장도 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한 달이 지났다. 진행된 건 없어 보였다. 매장을 구하기에는 금액이 부족할 수 있기에 그러려니 했다. 두 달이 지났다. 일을 마치고 배달차량으로 퇴근하시기에 기사님을 뵐 수 있는 건 출근시간 5 분 찰나뿐이다. 두 달이면 진행상황을 확인해도 된다고 생각해 기사님 출근하셨을 때 여쭤봤다. 


"기사님 매장은 찾으셨어요?"

"네이버 부동산에 매물이 없더라고요. 쉽지 않네요."

"직접 부동산을 가셔야 좋은 가게자리를 찾을 수 있어요. 발품을 팔아야 해요."

"몰랐어요."

이때부터 조바심이 느껴졌다. 나라면 인근 부동산은 다 돌았을 테니까.


내 기준에서 소극적으로 보이는 기사님의 홍보방식에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케이크 사진이 필요했다. 기사님에게 사진을 요청드렸더니 와이프의 인스타그램을 알려주셨다. 사랑스럽고 행복한 신혼부부의 인스타그램 속 제주도 사진이 보인다. 날짜를 보니 얼마 전 기사님이 어머님의 손가락골절로 3일 휴가를 가신 날이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다시 사진을 보니 다른 여행지의 사진이 보였고 와이프큰어머님의 장례로 갑자기 이틀쉬신 그날이었다. 


당황스러운 나와는 달리 신랑은 여행으로 쉰다고 말하기 껄끄러울 수 있다며 별일 아닌 듯 여겼다. 연휴가 포함된 날은 매장 특성상 대단히 바쁘다. 두 분의 기사님이 계셔도 시간 안에 배달을 마칠 수 없어 신랑도 배달을 하는 연휴기간이다. 그렇기에 바쁜 날이라는 것은 기사님 역시 아주 잘 알고 있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시는 분일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실망이 컸다. 신랑은 선의의 거짓말이라며 변호를 한다. 미안함에 그러셨을 거라며 나의 예민한 반응을 꾸짖는다. 찝찝한 마음을 억지로 구겨 넣고 답답한 심정으로 시간이 흘렀다.


4 개월 뒤 매장은 오픈했다. 떡케이크는 임산부가 하기에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한다. 하루 1개 이상의 주문은 받을 수 없고 수요가 많은 아이템이 아니기에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힘을 실어드리려고 친정엄마 어머님 선생님들을 드릴 구실을 만들어 떡케이크를 주문했다. 인스타그램 속 떡케이크사진은 내가 주문한 떡케이크사진과 이후 두 개의 떡케이크사진이  올라온 후 뜸해지는 걸 보자니 이내 답답함은 더 커져만 갔다. 


통유리로 된 이쁜 매장에는 전단지가 쌓였다. 출산이 다가왔고 매장은 몇 달째 커튼이 쳐져있다. 출산 후 조리원을 두 분이 같이 들어가시게 되어 우리 매장은 매우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배송이 늦어지게 되는 상황을 연일 공지했고 일손이 부족해 힘에 부쳐 조리원을 같이 들어가신 기사님이 원망스러웠다. 조리원 들어갈 형편이 되지 못해 신랑 몰래 눈물을 훔치던 8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이 와중에 동네에서 가장고급스러운 조리원을 들어간 것도 못마땅했다.


출산으로 인한 공백 없이 운영하겠다던 매장은 몇 달째 커튼만 쳐져있다. 실망스러웠고 화가 났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사님은 직장을 구하시겠다며 배달일을 그만두셨다. 미간이 좁혀지지 않았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일을 하는 내내 화가 났다. 1500원도 함부로 쓰지 않을 만큼 돈을 아끼는데 어떻게 1500만 원을 성큼 내밀었는지 후회가 너무 심하게 덮쳐왔다.

"가서 거울 좀 봐봐"

"왜?"

"요즘 어떤 얼굴로 있는지 직접 봐봐"

"몰라"

"기사님 때문에 그런 거지? 그럴 거면 왜 처음부터 도와준다고 그랬어? 

"열심히 안 하는 거처럼 보이니까 그런 거지. 돈이 없는 줄 알고 도와줬는데 호캉스도 가고 고급조리원도 들어가고 차도 바꾸고 할 거 다 하니까 괜히 도와 준거 같아서 후회되니까 그렇지"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늘 내편이던 신랑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거 못된 거야."


청천벽력 같은 여섯 글자에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거 같았다.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순간 튀어나온 진심이지만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던 신랑에게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화가 났다. 화장대 앞 거울 속 에는 미간을 있는 힘껏 찌푸리고 있는 못된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 여자의 눈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 못돼 보여서. 내 눈이 부끄러웠다. 짜증 섞인 눈물이 오열로 바뀌었고 내가 진정 돕고 싶었던 사람은 8년 전 저소득계층 기저귀지원사업을 받으러 보건소에 간 아이엄마였다는 걸 그때 알았다. 착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난 순간이다.


매장을 차려줬다는 우월감으로 지가 뭐라도 된 양 오픈진행상황을 물었을 내속마음. 가게가 잘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기보다 내 돈이 날아갈까 봐 노심초사했던 마음. 밑바닥이 드러난 본심이 그거였다. 


기사님을 통해 착한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나의 못된 계획이 틀어져 기사님 부부를 미워했다. 이쁘게 아기를 키우고 있는 부부를 내 줏대에 비교하고 미워했다. 그로부터 지금은 1 년 6개월이 흘렀고 출산 3개월 뒤 둘째 임신을 하셔서 매장은 여전히 커튼으로 가려져있지만 기사님 부부를 원망하지 않는다. 6개월 뒤면 파주 아파트로 이사를 가실 기사님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은 반성문이자 사과문이다. 그리고 기사님 어머님께도 이 글을 통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드님을 미워해서 죄송해요. 요즘세상에도 이런 사람이 있냐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 아이가 어른이 되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한들 미움을 받는다면 가슴이 많이 아플 것 같아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 아드님의 의미 있는 발걸음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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