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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레나 Jan 15. 2024

야심 차게 시작한 방학 집밥 먹이기

환기가 필요해

원체 요리에 관심 없는 엄마다. 아이 어릴 때는 친정엄마가 해주시는 국과 밑반찬으로 버텼고 이제는 엄마도 힘드신지 잘 안 해주셔서 한살림과 오아시스 냉동국, 그리고 집 앞 반찬가게를 애용했다. 사다 먹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기농 위주로 사니까 괜찮지 뭐, 하며 스스로 위안한다. 이유식도 초기에는 직접 해서 먹였지만 중기 이후부터는 거의 사다 먹였다. “집에 있는 엄마가 그러면 되겠니?” 누군가가 비난한다면 할 말은 있다. 요리하는 시간에 아이랑 눈 마주치고 놀아주는 게 아이 정서에는 더 좋거든요!


그러던 내가 이번 방학에는 집밥을 꽤 해서 먹이고 있다.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엄마 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고 한번 요리하며 시간을 보내보니 놀아주는 것보다 편한 것이다. 반찬 만드는 시간 동안에는 "엄마 놀자~" 하면 "엄마 밥 하잖아~" 하고 합당한 핑계를 댈 수 있으니 말이다. '밭 맬래, 애 볼래?’ 하면 다들 밭 맨다고 했다는 옛 어른들 말씀. 아이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다 수긍이 갈 것이다. 유치원생이니 크게 손이 가는 건 없지만 큰 딸과는 달리 몸으로 놀아줘야 하는 둘째 아들을 겪으니 식사 준비 핑계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신혼 때 다녔던 백화점 문화센터 요리교실에서 받아온 파일을 찾아 벌써 빛바래져 가는 종이들을 꺼내 반찬을 만들어본다. (요리교실도 다녔었다니, 지금 보니 참 귀여운 새댁이었군.) 멸치볶음, 버섯소고기볶음, 불고기, 맛탕, 꽃주먹밥, 마늘빵, 배춧국, 김치찌개 등등 만들다 보니 매번 유통기한이 지나 그냥 버리던 간장, 맛술, 된장, 설탕 등 각종 양념재료들도 슬슬 바닥을 보인다.



"이거 엄마가 직접 한 거야~" 하니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엄지 척해준다. 식탁 차리고 있는 사이 딸아이는 어느새 알사탕에 응원 쪽지까지 매달아 전해준다. 하하~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이 신기했구나.  배춧국은 10점, 멸치는 9점, 버섯볶음은 6점... 하며 점수를 매긴다. 건강한 재료로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도 감동인가 보다. 어때? 엄마가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 먹으니 속이 편하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지?


 엄마는 노력했다.




그런데 이 뿌듯함도 잠시. 눈팅만 하고 있는 단톡방에 누군가가 올려준 신문기사를 스캔하다가 멈칫한다.

["어지럽고 토하고" 집에서 요리하다 병원행... 무슨 일?]

요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가 몸속에 들어오면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에 붙어서 산소 운반에 지장을 준다고. 일산화탄소 중독을 막기 위해 조리 시 창문 열고 환기가 필수라고.

이 기사를 읽고 나니 괜히 숨이 막히고 어지러운 느낌이 든다. 예전에 가스레인지가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글을 읽고 친정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그럼 옛날 주부들 다 폐암 걸렸게?" 하시며 대수롭지 않아 하셔서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 집은 빌트인 하이라이트여서 가스 걱정은 전혀 안 했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가스레인지가 설치되어 있다. 요리 시 후드 틀어놓고 환기를 필수로 해야 한다는 기본 상식마저 너무 요리를 안 하고 살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계란프라이나 라면 끓일 때는 몰라도, 고기 굽고 국 끓이며 가스를 오래 사용할 때는 당연히 환기를 해야겠던 건데. 계속 가슴이 답답한 것 같다.


식사 준비한다고 매일 2시간 이상 방치해 놓았던 아이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재료값, 노동력, 아이가 심심해하는 것 등등 이래저래 기회비용 따져보니 반찬가게에서 사는 게 더 경제적이고 현명한 선택인 것만 같다. 겨울 방학 동안 요리실력 좀 늘려볼까 했던 다짐은 또다시 저 멀리로 달아난다. 방학 집밥 프로젝트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요…



집안 공기 환기뿐만 아니라, 덜 놀아주고 요리하며 그 시간 채우려고 했던 엄마 마음도 환기가 필요하다. 너희들도 요리하는 엄마보다 놀아주는 엄마가 더 좋지? 그래도 집밥이 그리울 때도 있을 테니 엄마가 더 빨리, 맛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 볼게. 창문 활짝 열어놓고 해야 하니 너희들 학교 가고 유치원 가야나 해볼 수 있겠다. 음… 아니면 방학 때는 같이 요리교실을 열어볼까? 너희들과 같이 만들 수 있는 요리 위주로 말이야. 미끈미끈 오징어 만져보며 짧은 다리 8개, 긴 다리 2개 총 10개 세어보고, 눈은 또 어디 붙었나 찾아보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는 오징어 숙회. 비닐봉지에 설탕, 기름 두 스푼씩 넣고 조물조물 에어프라이어에 25분 초간단 맛탕 당첨!


오징어 해부 체험 후 숙회 먹기 / 아이와 함께 손쉽게 에어프라이어 고구마맛탕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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