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레나 Jan 18. 2024

엄마는 완벽한 줄 알았어

아이에게 엄마란 세상 전부, 바다 같은 존재다. 엄마 말이 법이고 순종적인 아이였던 나 역시 큰 반항 없이 자랐고 전업주부셨던 우리 엄마가 주부로서 최고인 줄로만 알았다. 적어도 내가 주부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던 내가 결혼하고 내 살림을 하다 보니 엄마의 주부생활이 그리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 둘 깨닫기 시작했다.


1. 빨래는 다 같이 돌돌돌~

빨래는 니트류 제외하곤 모두 모아 한 번에 다 같이 세탁기에 돌리시는 우리 엄마다. 결혼 후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속옷 따로, 양말 따로, 흰 옷 따로, 색깔 옷 따로, 수건 따로. 무려 다섯 가지 이상으로 분류해서 세탁을 한다고. 우리 엄마는 그렇게 안 했는데. 빨래가 이렇게 복잡한 거였구나.


2. 엄마의 요리 스타일

어린 시절 엄마가 끓여주시는 사골국을 엄청 좋아했었다. 국 한 그릇에 김치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 이었다. 울 엄마는 국을 끓이시면 무조건 큰 한 솥이라 같은 국을 일주일씩 먹었다. 그래도 큰 반찬투정 없었던 우리 식구들. 다른 집도 그런 줄 알았다. 내가 낳은 아이들은 같은 국 두 끼만 먹어도 질려하는데 울 엄마는 참 편했었겠구나. 또 엄마가 하는 음식들은 꽤나 다 맛있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의 요리 비법은 다시다나 연두였던 것. “엄마, 그거 조미료 아니야?” 하니 "야, 이런 거 넣어야 감칠맛 나고 맛있는 거야." 하신다. 천연조미료와 유기농만 고집하는 나는 엄마의 요리 비법을 전수받지 않고 다른 레시피를 찾아 나선다.


3. 신기한 어휘 제조자

감자가 타박타박 / 진주할머니 등등 가끔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신다. 엄마는 찐 감자를 드실 때마다 “감자가 아주 타박타박하네.” 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타박타박’이란 의태어를 넣어 짧은 글 짓기를 하는 활동이 있었는데 자신 있게 “감자가 타박타박하다.”라고 발표했다가 무안을 겪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 왈 “타박타박은 걸을 때 쓰는 표현이야.”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진주할머니인 줄 알았다. ‘증조할머니’를 ‘진주할머니’라고 부르시던 울 엄마. 진주 지역에 살지도 않으셨는데 왜 증조할머니가 진주할머니가 되었을까. 그 밖에도 겨란, 도마도 등등 이상한 말을 즐겨 쓰는 울 엄마다. 겨란이 아니고 계란, 도마도가 아니고 토마토라고요.


얼마 전 재테크 관련 모임에 몸담은 적이 있었다. 우리 엄마 또래 분들도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관련 독서 및 경제공부에 열정적이시고 그 나이에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어떻게 보탬이 될까 고민하시며 공부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매일 집에서는 티브이만 보시고, 친구들 만나 맛집 탐방 다니는 걸 즐기시는 울 엄마를 보다가 그런 분들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풍요로웠던 30-40대를 보내시다가 아빠의 주식실패로 뒤늦게 노후가 여유롭지 못한 엄마가 안타깝고 안쓰럽다.  



그럼에도 엄마가 내게 전해준 가장 큰 자산은 '긍정'의 힘이 아닌가 싶다. 오래 슬퍼하지 않는다. 닥친 현실이 버거워도 곧 지나갈 거라며 다시 힘낸다. 뭐든 그리 심각한 적이 없으시다. 엄마가 외부 화장실에서 볼 일 보시고 일어나다가 주머니 속 휴대폰이 변기 속으로 쏙 빠진 상황, 골목길에 주차한 후 잠깐 일 보고 왔더니 차가 저 멀리 견인되고 있는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엄마랑 나는 "어머머~ 어떡해!!!" 하며 둘이 같이 큰 소리로 깔깔 웃어댔던 모습이 생생하다. 엄마가 지치고 우울해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들 학교 가면 동네 엄마들 사랑방이었다던 우리 집. 사람들 불러 음식 해먹이고 베푸는 거 좋아하던 엄마가 요즘은 집도 더럽고 여유가 없어 못한다며 아쉬워하신다. 높은 자존감과 쉽게 좌절하지 않는 성격은 어린 시절 엄마가 내게 준 정서적 안정과 긍정적인 생활상, 그리고 표현은 잘 안 해도 뒤에서 늘 응원해 주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요즘 부쩍 나한테 많이 의지하는 게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는 엄마가 와서 말동무라도 해주시고 아이들이랑 놀아주시면 그렇게 좋더니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이제는 나도 혼자 책 보고 글 쓰며 쉬고 싶을 때가 많다. "뭐 하니?" 조심스럽게 묻는 엄마 전화에 가끔은 귀찮아 바쁘다며 끊어버린 적도 있다. 그러고선 뒤늦게 후회한다. 건강하게 살아계신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오늘은 먼저 전화해 엄마에게 데이트를 청해봐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남한산성 주먹손두부




우리 딸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아이가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 앞에서 책 읽고 글 쓰며 교양 있는 척, 학식 있는 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 딸도 크면 엄마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질 날이 오겠지. 그래도 엄마가 우리 딸 엄청 많이 사랑하고, 영원한 네 편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네 덕에 엄마 삶이 더 풍요롭고 행복해졌노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