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아쉬움
11월 말은 가을일까, 아니면 겨울일까. 아직 알록달록하게 변한 잎들이 군데군데 붙어있으니 가을이라고 해야 하나. 폭설로 겨울왕국이 만들어졌으니 겨울이라고 해야 하나. 겨울밤 같은 가을밤에 <가을밤에 든 생각> 이란 노래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미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잔나비란 그룹을 나는 불과 몇 개월 전에야 알게 되었다. 10살 연하의 가수와 사귄다는 배우 한지민 님 관련 인터넷 뉴스를 보고 처음 알게 된 그룹. 그런 가수가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잔나비 멤버 최정훈 님이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지민 님과 함께 부른 이 노래 <가을밤에 든 생각>을 보게 되었다. 무심코 클릭했다가 며칠 째 하루 종일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다. 남자키인데도 제법 높아서 여자가 따라 부르기도 딱이다.
https://youtu.be/W_UmlUth3e0?si=JG2In0myFKhwIVWo
이사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있다. 12년 동안 6번의 이사. 참 많이도 옮겨 다녔구나. 그동안 전세로 살던 집들은 나에게 포근한 안락감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항상 겉도는 느낌이었다. 스스로도 곧 떠날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거란 생각에(실제로 많이 그렇기도 했고) 깊이 친해지지 못했다. 속 얘기 털어놓으며 가깝게 지내던 몇 명 안 되는 사람들마저 멀리 이사 오고 나면 연락이 뚝 끊겼다. 정 많은 성격이라 이러한 만남과 헤어짐에 꽤 상처를 받았다. 반복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마음문을 닫고 쉽게 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작년과 올해 같은 반이었던 둘째의 유치원 친구 엄마가 아이를 통해 작은 쪽지를 보내왔다.
윤호야~ 연우가 윤호 너무 좋데~ 우리 방학 때 같이 만나서 놀자.
학기 초 학부모 상담할 때 마주쳐서 전화번호도 교환했었지만 서로 아무 연락도 안 하고 지냈었다. 그러다가 여름 방학 전 받은 쪽지. 반가운 마음으로 카톡 해서 같이 만날 날짜를 조율했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약속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또 지나고... 그 친구가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가 좋아하고 의지하던 친구였는데 이사 가서 유치원을 그만둔다니 아이도 나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유치원 그만 두기 직전에야 집으로 초대해 같이 놀았다. 너무나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니 이런 자리를 진작에 마련하지 못한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친구는 이사 갔다.
2024년 11월. 첫눈이 펑펑 내리던 날. 우리 집 우체통에서 예쁜 하늘빛 편지봉투를 하나 발견했다. 우리 둘째에게 온 편지였다. '윤호가 보고 싶은 연우가'라고 쓰여있는 글씨를 보고 왜 이렇게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윤호야♡ 제주도에 놀러 와. 나는 서귀포에 있어. 놀러 와서 같이 귤 따기 하자. -연우가-
이사 간 후 친구 엄마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가정보육을 하는데 한 달 살기로 제주도에 놀러 갔다고 했다. 제주도에 가서 옛 친구를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반듯하게 정성스레 편지 써서 보낸 마음이 너무 예쁘고 감동적이다. 아날로그 감성 손 편지의 힘은 정말 강하다. 당장이라도 비행기표 끊어서 달려가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잔나비의 <가을밤에 든 생각>이 내 마음을 위로해 준다.
아련히 멀어져 가는 수많은 이별 속에서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인연이 생겨서 다행이다.
수많은 바람 불어온대도
날려 보내진 않을래
잊혀질까 두려워 곁을 맴도는
시월의 아름다운 이 밤을 기억해 주세요
덧) 윤호야, 잔나비가 원숭이란 뜻인 거 알아?
응? 몰랐어!
엄마, 소나기가 뭔지 알아? 소를 낳는다는 뜻이야!
잔나비 뜻 듣고 언어유희가 떠오른 우리 둘째, 참으로 해맑고 귀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