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11월 잔잔하고도 쓸쓸한 어느 가을날
오랜만에 친정에 들렀다. 나무껍질은 다 벗겨져 손이 스치기만 해도 위험할 것 같은 책장에 고이 놓여있는 먼지 쌓인 책 한 권이 좀 봐달라고 손짓한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이적 어머니 박혜란 님의 책이다. 학창 시절 우상은 가수 이적이었다. 친구들은 H.O.T와 젝스키스 쫓아다닐 때 나는 패닉 팬을 자청하며 "너희들과는 달라. 싱어송 라이터 인텔리 가수를 좋아해야지." 하며 고상한 척했었다. 어쨌든 덕분에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인생책을 만나며 내 인생을 설계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안정을, 이후에는 자유를. 엄마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아이도 보고 배운다는 것을 10대의 어느 날부터 무의식 중에 깨닫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10대 때부터 벌써 준비된 엄마였군.
전업주부로 지낸 지 10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박혜란 선생님도 전업주부 10년 되던 해 대학원에 진학하며 공부를 시작하셨고 사회생활을 하셨는데 뭔가 결단을 내리고 싶었다. 파트타임이지만 일을 시작해 보자. 그리고 발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자. 그렇게 5년 전 학교에 다시 발을 들여놓았고, 40대 중반에 중등임용시험에 합격해 당당한 정교사가 되었다. 일찍이 임용시험에 통과하거나 사립학교 정교사가 되었던 친구들이나 동료 선생님들은 결혼 후 워킹맘의 벽을 깨지 못하고 조기 퇴직을 한 경우도 많았다. 반면 육아에 10년이란 시간을 꽉 차게 쓰고 돌아온 학교는 내게 비타민 같은 영양제 같았다. 간절히 원했던 만큼 하루하루의 수업이 소중했고, 젊은 날의 객기와 자존심은 버리고 열정과 노련미로 똘똘 뭉친 수업을 준비했다.
40대에도 정교사가 될 수 있다니. 뒤늦은 성장스토리는 출판사의 관심을 받으며 여기저기서 출간 의뢰가 들어온다. 5년 전 시작한 브런치에 써두었던 이야기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여기저기서 섭외 전화도 밀려온다. 학교 강의, 교육청 강의, 심지어 유퀴즈 출연까지.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아이 낳고도 가능한 성공 신화를 보여주는 출산장려 선구자 등 수식하는 말이 많아졌다. 브런치 세계로 이끌어주신, 이제는 같은 동네 주민이 된 이은경 선생님과는 예쁜 카페에 앉아 두런두런 고민도 나누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어린 시절 팬이 본인 덕에 꿈을 이뤘다고 자랑스러워하며 격려해 주는 이적님, 박혜란 선생님과 함께 식사 자리도 가졌다. 식은 줄 알았던 콩닥 세포가 아직 살아있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3년 전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의 수능날이 내일이다.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는 28명의 순수한 영혼들이 교무실 책상 모니터 옆 액자 속에서 튀어나와 시린 마음을 녹여준다. 100% 내 자식 같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90%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적극적인 참여로 힘을 주었던 20%, 가끔 공상 속으로 빠지기는 해도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해주었던 70%, 대놓고 다른 과목 문제집 풀며 속을 뒤집어 놓았던 10% 아이들 모두 수능 후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사람마다 꽃피우는 시기는 다르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여름에는 해바라기와 장미,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국화, 겨울에는 동백꽃과 포인세티아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처럼. 자기만의 속도로 험난한 세상 험난하지 않게 잘 꾸려갔으면 좋겠다.
참, 명절 스트레스는 어떠냐고? 작년부터 명절은 웰컴웰컴 베리웰컴이다. 학교에서 국제교류부서를 담당한 이후로 추석에는 아시아 가까운 곳에 자매결연 맺은 학교와 국제교류를, 설날에는 2주간 아이비리그 투어, 유럽투어 등 해외탐방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뜬다. 합법적인 탈출이다. 명절증후군에서 벗어나고 싶은 30대 기혼 선생님들의 인솔교사 지원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지만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인데 기획자가 빠질 수는 없지. 꼭 붙어 가리라.
덧) 이 글은 5년 후를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소망하며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