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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07. 2024

잘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것도 재능이다.

나이 마흔에 찾은 재능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기 생각을 패기 있게 잘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유치원이나 교회 발표회 때는 무대에 오르는 것보다 청중석에 앉아 박수 치는 것이 좋다며, 무대에 서는 것을 거부했다. 첼로를 배워보자며 꼬박 1년을 꼬드겼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어느 날 뜬금없이 유튜브에서 우연히 듣게 된 가야금 소리가 좋다며 가야금을 배우겠다고 했다. 공부 좀 하라고 하면, 공부를 잘하고 싶지가 않은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돼 묻곤 했다. 그런 그녀가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다른 학원은 가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미술 학원만큼은 가길 원했고, 6살 때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그곳에 다니고 있다. 나머지 3일은 놀이터에서 놀아야 한단다.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잘 그리면 좋을 텐데, 예술적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한 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그림에 ‘그’자도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그림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의 그림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딸아이의 친한 친구가 그랬다. 독특한 색감과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고, 큰 대회의 상을 휩쓸고 다니며 전시회까지 열었다. 그녀의 그림을 보며 예술적 재능은 타고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후로, 딸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너무 좋아하면 마음을 다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고, 그림 그리기는 그저 ‘취미’일뿐이라며 제한을 두었다. 부모로서 그녀 스스로 만들어낸 가혹한 압박감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고도 실패의 원인을 노력 부족이라 생각하며, 끝없는 노력의 굴레 안에서 자신을 거칠게 대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속 모르는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그림에 100% 만족하며 행복해했다. 



며칠 전, 성경을 읽으며 딸아이와 마음을 나누던 중이었다. 

“엄마, 하나님은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걸 아실 텐데, 왜 내게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을 주지 않으셨을까?" 

그녀의 반짝이는 눈망울에는 이내 눈물이 차올랐다. ‘언제부터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기 시작했을까?’ 아직 펼치지도 않은 어린 날개가, 꿈을 꾸기도 전에 이런 생각과 씨름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어떤 거야? 엄마는 사랑이 그림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교통안전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나만 상을 못 받았어.”

나는 두 팔로 그녀를 꽉 감싸 안았다. 순간 그림책 하나가 떠올랐다.

“사랑이와 비슷한 공룡이 있어.” 


『모두가 예술가야』라는 그림책에는 꼬마 예술가 공룡이 등장한다. 공룡은 자기가 본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해 큰 도시로 가고, 많은 사람들이 공룡의 그림에 감탄한다. 그러나 붓이 살짝 미끄러지면서 색이 선 밖으로 삐져나왔고, 뜻밖의 실수에 낙담한 공룡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가 “중요한 건 마음이에요. 당신의 그림에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요.”라고 위로하자, 공룡은 이전보다 더 생생하고 독창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다. 실수는 장애물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기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진정한 예술성은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려는 용기에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리다 보면 공룡처럼 멋진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거네!”

“그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것도 정말 멋진 재능이야. 좋아하지 않으면 계속할 수가 없잖아.

“엄마는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재능이 있지?”

40년간 그토록 간절히 찾고 싶었던 재능을 딸아이가 너무나 쉽게 찾아주었다. 시간을 쪼개어 쓰며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해라. 악착같이 하면 성공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답답함과 좌절감에 휩싸였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가정 하에 시작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 재능은 읽고 쓰는 것이었다. 이것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타고난 음치가 절대음감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고, 170센티미터의 키로 2미터 키의 농구 선수를 뛰어넘기는 어렵지 않은가. 글을 쓰는 감각이나 표현력, 관찰력, 창의력 같은 재능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지만, 글쓰기도 운동과 같다. 글을 꾸준히 쓸수록 글쓰기 근육이 발달한다.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 있고, 결과에 항상 만족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저 읽고 쓰는 일에서 위로와 기쁨을 얻는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뛰어난 기교나 섬세한 감성, 심오한 신념이 부족하더라도 여전히 나의 일부인 내 글을 사랑하기로 했다.      




“엄마, 그런데...”

 역시 어린 딸아이가 단번에 이런 깨달음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재능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시지, 왜 하나님 마음대로 정해서 복잡하게 하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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