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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04. 2024

‘독수리 식당’을 아시나요?

배고픈 독수리들을 위한 식당

매년 1월부터 3월까지, 거제도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바로 수백 마리의 독수리이다. 몽골의 영하 30도의 강추위를 피해 3000km를 날아온 독수리들은 추위를 피해 이곳에서 따뜻한 휴식을 취하며 봄을 기다린다. 독수리들은 인근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나오는 물의 피 냄새를 맡고 이곳에 모여드는데, 이런 독수리들을 위한 ‘독수리 식당’이 있다. 지역환경운동연합회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안내된 시간에 맞춰 가면 독수리들이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월이 지나면 독수리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3월의 프레셔스깅은 작별 인사도 할 겸, ‘독수리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우와! 저기 봐. 독수리 떼가 날아다니고 있어!”

“동물원 밖에서 독수리를 볼 줄이야!”

아이들에게 야생 독수리를 보여주고 싶어서 참여한 부모님들이 아이들보다 더 호들갑이다. 


"여러분, 독수리는 맹금류이고 용맹한 이미지이지만, 사냥 능력이 거의 없고, 주로 동물의 사체를 먹어요. 그래서 '생태계의 청소부'라는 별명이 있어요."

"그런데 환경이 파괴되면서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거나, 배가 고파서 스티로폼 등의 쓰레기를 뜯어 먹고 죽는 독수리들이 많아요. 이곳에서도 해마다 2마리 정도의 사체가 발견되고 있어요.”

“굶주린 독수리들에게 동네 정육점에서 얻은 고기들을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 '독수리 식당'의 시작이에요. 주로 대형마트에서 판매용으로 쓰고 남은 돼지, 오리, 소고기를 줘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독수리들이 오지 않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지켜봐야 해요.”



시간이 되자 독수리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독수리들은 다른 새들과는 다르게 날개를 펄럭이며 날지 않는다. 바람에 몸을 맡긴 듯이 그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고고한 자태로 하늘을 가른다. 하늘 높은 곳에서 빙빙 돌던 독수리들이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먹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 같다. 대장 독수리가 먼저 먹이를 먹으면, 나머지 독수리들이 그 뒤를 따른다. 군대같이 질서 있다. 머리가 하얀 연장자 독수리들이 먼저 먹이를 먹은 후, 머리가 까만 어린 독수리들이 뒤따라 먹는다. 서로를 배려하고 차례를 지키며 먹는 모습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화가 생각났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흥남 철수 작전에 동원되었던 배이다. 60명 정원의 배를 개조해 14,000명의 피난민들을 태워 거제도 장승포항에 이송했다. 피난민들 중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님도 있었다고 한다. 피난민들은 음식과 물, 의약품 등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무려 3박 4일을 배 안에서 버텨야 했다. 당시 미군들은 폭동과 다수의 희생자들을 우려했었는데, 놀랍게도 피난민 중 희생자는 단 1명도 없었다. 그래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기적의 배’라고도 불린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독수리들의 식사 무리 틈에는 까마귀들이 함께 섞여 있는데, 서로 노려보거나 경쟁하지 않고 공존한다. 독수리들이 큰 먹이를 먹으면 까마귀들은 작은 먹잇감을 찾아낸다. 사이즈와 특성에 맞는 환상적인 협업이다. 배를 채운 영리한 까마귀들은 다음 식사를 위해 미리 대비하기도 한다. 다음에 먹을 먹이를 근처 땅속에 숨겨 놓는 것이다. 

“더 영리한 까마귀들은 동료 까마귀가 먹이를 숨겨 놓는 장소를 기억하고, 나중에 몰래 그 먹이를 훔쳐 먹기도 해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복잡한 관계가 꼭 우리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존에 대한 열망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공통된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30분 정도 먹이를 먹고 배를 채운 독수리들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푸른 하늘을 우아하고 품위 있게 휘날리는 모습은 하늘의 왕으로서의 위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삶은 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굶주림에 시달리며 쓰레기로 배를 채우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인해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동물들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딸아이가 커서 독수리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중한 생명체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작은 실천하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금쯤 독수리들은 다시 몽골로 돌아갔을 것이다. 햇살은 부드럽게 그들의 깃털을 비추고, 시원한 바람이 그들의 날개를 가볍게 흔든다. 아득한 고향의 풍경을 다시 마주하게 된 독수리들의 마음은 어떨까?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고향 풍경에 그들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연인의 눈빛을 마주한 듯한 그리움과 반가움의 눈물이 고였을지도 모르겠다.


독수리들아! 고맙기야 했겠지만, 그래도 집 밥이 최고지? 내년에도 독수리 식당에서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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