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란 세상에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을 모으는 일이다.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는 모르지만, 조각을 찾아다니며 세상을 경험하는 과정이 즐겁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걸 배워서 뭐 해?”
“왜 돈 안 되는 일만 해?”
그럼 그냥 웃는다. 내게 배움은 뭘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니까. 퍼즐 조각을 찾아다니는 일만으로도 꽤 즐겁다. 그들 말대로, 모은 조각들이 쓸모없거나, 어울리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이 조각들이 모여,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작품이 될지도.
커피가 좋아 바리스타 공부를 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커피 대신 차로 갈아탔다. 그리곤 티 블렌딩에 빠졌다. 빵이 좋아 제과제빵도 배우고, 아이유 덕분에 기타를 잡았다. 산만한 성격을 고쳐보겠다고 서예를 시작해, 먹까지 갈아봤다. 오늘은 재즈댄스를 추다가, 내일은 요가를 배우고, 그다음엔 마라톤을 뛰다가 갑자기 명상에 빠질 수도 있다. 관심사는 팝콘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냥 하나를 진득하게 배워보는 게 어때?”
그럴듯한 조언이다. 하지만 세모 모양인 사람에게 네모가 되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아직도 나만의 길을 찾아 헤매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 퍼즐은 끝내 다 맞추지 못할지도. 평생 여기저기 튀며 팝콘처럼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무한 질주하던 내 호기심은 ‘거제’라는 벽 앞에서 멈췄다. 이곳은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조선소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일지 몰라도, 나처럼 여러 우물을 얕게 파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사막 같은 곳.
“재즈댄스요? 아, 그런 건 없어요.”
“백드롭 페인팅이요? 그게 뭐죠?”
“인문학 클래스요? 그건 인기가 없어서요.”
이곳에서 찾을 수 있는 거라곤 캘리그라피, 컴퓨터 활용 자격증, 민화 그리기, 매듭 공예 같은 프로그램뿐. 나쁘진 않았지만, 내가 찾던 건 아니었다. 선택지가 좁았다. 가끔 비건 홈베이킹이나 디지털 드로잉 같은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반짝 등장하곤 했지만, 거리가 멀거나 시간이 맞지 않거나, 금방 사라지기 일쑤였다. 도시에선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이곳에선 시간과 돈을 두 배로 들여야 가능했다. 배움의 폭을 넓히기엔 한계가 분명 있었다.
여기선 뭔가를 배우려면, ‘쓸모’가 있어야 했다. 실용적이고 생계와 직결된 기술이 우선될 수밖에. 조선소 관련 자격증이나 직업훈련은 환영받았지만, 문예 창작이나 아크릴 회화 같은 배움은 늘 뒤로 밀려났다. ‘배워서 뭘 하겠냐’는 질문이 늘 따라붙는 분위기 속에서, 나 자신부터 설득해야 했다. 도시에선 취미 생활이었던 게, 여기선 사치가 된다. 환경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나중에 여유 생기고, 시작해도 늦지 않아.’ 그렇게 자신을 달랬다. 하지만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렸다. 시간은 흘렀지만, 내 삶은 고여 있는 물처럼 썩고 있었다. ‘과연 여유란 게 찾아오긴 하는 걸까?’ 날카로운 외침이 내 안을 후벼팠다.
상황을 탓해봐야 달라질 건 없었다. 멈춰버린 삶을 견디는 것도 더는 불가능했다. 누군가 가르쳐주길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마음을 다독이며 책을 펼쳤다.
영어 원서를 읽으며 언어 공부를 시작했고, 미술사와 철학책을 넘기며 낯선 세계로 뛰어들었다. 인터넷 영상도 훌륭한 스승이 되었다. 서툰 손길로 오일페인팅을 따라 그리고, 캘리그라피와 디지털 아트에도 도전했다. 온라인 수업은 배움의 문턱을 낮춰주었다. 미술 심리, 독서 하브루타, 영어 회화, 환경지도사, 글쓰기까지. 손 닿는 대로 배우고 익혔다. 그렇게 다시, 세상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으며 내 그림을 그려나갔다.
결핍이 성장을 이끈다는 고전적 교훈은 거짓이 아니었다. 섬이라는 환경은 가끔 나를 한숨 짓게 하고, 초라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그 빈자리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쉽게 얻을 수 없으니 더 찾아다니고, 스스로 공부하며, 그 과정에서 더 성장했다. 섬이라는 결핍이 내 가능성을 끌어 올린 셈이다.
흥미로운 게 보이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그렇게 배우고 시도하며 쌓아온 경험들은 하나둘 연결되더니, 어느새 나만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 독서 하브루타는 책과 대화하는 법을 알려줬고, 인문 고전은 생각에 깊이와 두께를 더했다. 미술 심리는 사람에 관한 관심을 키웠고, 글쓰기는 내 생각을 꺼내는 일이, 곧 나답게 만드는 일임을 깨닫게 했다.
그렇게 모인 배움의 조각들이 어렴풋이 하나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아직 완벽히 맞춰지진 않았지만, 윤곽은 점점 뚜렷해진다. 내 호기심은 결국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길로 향하고 있다. 어쩌면 이곳에서, 내 그림 속 가장 반짝이는 조각을 맞추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