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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공부하는 사서

by 이음

내가 누구인지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환경에서의 익숙한 모습. 나 자신을 설명하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다. 대개 그 설명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 온 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익숙했던 환경도 관계도 사라지자, 당연하다고 믿었던 내 모습마저 흐릿해졌다. 처음부터 나를 다시 알아가야 했다.


아무도 나를 규정하지 않는 이 섬에서, 마침내 내 안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 속에 묻어둔 이야기들, 스치듯 흘려보낸 감정들, 잊고 지냈던 모습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새롭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웠지만, 만만하진 않았다. 언제 진짜 행복을 느끼는지, 타인의 시선이 사라진 나는 어떤 모습인지, 내가 진짜로 가치를 두고 있는 건 뭔지.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솔직히, 피할 수 있었다면 피했을 것이다. 도망칠 수 없으니, 대면할 수밖에.


마음의 소용돌이를 멈추지 못해, 혼란이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도서관에 S가 왔다. 오늘도, 가지런히 꽂혀 있던 책들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어야 제목이 잘 보이거든. 일부러 그러는 이유가 뭐야?”

S의 손이 멈추더니, 짧게 대답했다.

“... 그냥요.”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성의 없는 대답에, 속에서 불길이 확 일었다.


단순한 장난일까, 아니면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일까? 규칙을 깨고 싶은 사춘기의 반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S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같은 행동이 몇 번 더 반복되자 결국 참았던 화가 터지고 말았다. ‘은혜도 모르는 녀석!’ 호되게 야단을 쳤다. 그날 이후, S는 다시는 도서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학교에도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S는 보육원에 보내졌다고 했다. 부모님의 이혼 후, 그동안 삼촌 집에 얹혀살고 있었는데, 최근 삼촌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보육원으로 갔다는 것이다. 전학까지 갔으니, 이제 다시 만나긴 힘들어졌다.


흐트러진 건 책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었는데... 작은 어깨로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아버렸다. 삼촌 집에서의 마지막 기대마저 부서졌을 때, 마음은 절벽 끝에 서 있었을 것이다. 떠밀리듯 보육원으로 향하던 날, 발걸음엔 돌덩이가 백 개쯤 달려 있었으리라. 버려졌다는 상처,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웠을 분노와 슬픔. 누구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거란 절망. 책을 흐트러뜨리면서, 혼자 꾸역꾸역 삼켜 온 감정을 흘려보내려 했던 걸까. 자신을 붙잡아보려던 외로운 몸부림이었는지도. 지금도 그의 빈자리는 내 안에 작은 웅덩이로 남아 은밀히 나를 적신다.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행동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 그 마음을 읽지 못해 생긴 오해와 아쉬움. 그 순간들이 지나고 나서야 찾아오는 자책과 쓰라림. 보이지 않는 신호를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는 일을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다가온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동안 내 안에 쌓여 있던 질문과 후회를 끌어안고, 한 발 내디디기로 했다. ‘그래, 하자!’


그렇게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나와, 나를 둘러싼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짧은 공부로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단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그 거리를 좁혀가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했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일은 여전히 난감하다. 아이들의 표정, 행동, 짧은 한숨 속에 숨겨진 감정의 흔적을 쫓아가려 애쓰지만, 길을 잃을 때가 많다. 그래도 마음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사이, 깨달은 것이 있다. 이 끝없고 막연한 노력이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동안, 나는 관계 속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어떤 감정을 덮어두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하나둘 선명해졌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국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길과 맞닿아 있었다. 조금씩 타인과도, 나 자신과도 가까워지고 있다.


“선생님, 기분 좋아질 만한 책 뭐 없어요? 짧은 거로요.”

또 다른 S일지도 모른다. 책을 핑계 삼아 작은 위로를 구하는 건 아닐까.

“왜? 요즘 기분이 안 좋나?”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좀 그래요. 사실은, 반에서...”


심리학도, 책도 결국 같은 곳으로 나를 이끈다.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사람과 이어지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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