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지형, 음식
최근 흑백요리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열정적인 참가자들의 모습과 날카로우면서도 인간적인 심사평이 조화를 이루며, 참가자별로 혹은 에피소드별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음식 문화의 다양성에 감탄하기도 하고, 그만큼 전통을 계승, 발전하려는 노력과 외국의 다양한 음식 문화를 연구하고 활용해 보려는 시도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세계화로 각 지역의 다양한 음식 문화가 융합되고 뒤섞이는 현실 속에, 각 지역 고유의 음식문화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어느 지역이든 지속적으로 음식 문화는 계승, 발전되어 변화한다. 그럼에도 그 지역 고유의 음식 문화는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음식 문화가 형성되는 바탕에는 그 지역의 기후, 지형 등 자연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음식이란 본래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식재료의 생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기 때문이다.
기후와 지형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식재료를 생산하는 바탕이 된다. 적도 부근에 위치한 열대 기후 지역은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다. 이러한 기후적 환경은 풍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넓은 평야를 형성하기에도 유리하다. 이러한 자연환경적 배경을 바탕으로 열대 기후 지역에서는 성장기에 고온 다습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되는 열대성 작물인 “쌀”을 많이 재배한다. 쌀은 인간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작물 중 하나로 특히, 아시아 지역의 부양력을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음식의 부패를 막기 위해 다양한 향신료를 이용하거나 기름에 볶는 요리가 발달되어 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 베트남의 쌀국수,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 등이 있다.
예로부터 온대 기후 지역은 사계절이 있고, 온화한 기후와 적절한 강수량으로 많고 다양한 식자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온대 기후 지역인 유럽에는 서아시아에서 기원한 "밀"이 퍼져 밀과 관련된 음식 문화가 발달하였고, 동아시아 지역에는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유래된 걸로 추정되는 "쌀"이 퍼져 쌀과 관련된 음식 문화가 발달하였다. 밀은 냉량성 작물로 서늘하고 건조한 지역에서도 잘 자라, 열대성 작물인 벼와 대비된다. 특히 온대 기후 지역 중 유라시아 대륙 서안의 서안 해양성 기후 지역은 기온의 연교차가 작고 연중 강수량이 고른 편이라 밀을 재배하기에 좋다. 여름철에 고온다습한 유라시아 대륙 동안의 기후보다 여름철에 상대적으로 서늘하고 강수량도 적어 쌀보다는 밀을 재배하는 것이 적합한 것이다. 밀은 쌀과 유사하게 높은 영양 성분을 지니고 있어 인구부양력이 높은 작물로 유럽 지역의 주식 역할을 하고 있다. 밀 외에도 지중해성 기후에서는 고온건조한 기후를 활용하여 올리브, 포도, 오렌지 등을 많이 재배하는데 이러한 식재료들은 유럽의 음식 문화를 한껏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대표적인 음식으로 파스타, 빵 등이 있다. 동아시아 지역으로 대표되는 유라시아 대륙 동안의 온대 겨울 건조 기후와 온난 습윤 기후에서는 비교적 고온다습한 여름철 기후를 활용하여 쌀을 많이 재배한다. 또한 각양각색의 산나물, 과일 등도 다양하게 생산되어 이를 활용한 음식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 한국의 비빔밥, 일본의 스시가 있다.
캐나다, 러시아 등으로 대표되는 냉대 기후 지역은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많지 않아 기후 조건이 좋지 않고 토양도 척박하여 풍부한 식재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가야 되기에, 이러한 기후에서도 어느 정도 생육이 가능한 보리, 밀, 감자, 옥수수와 같은 밭작물을 재배하여 음식 문화를 발전시켰다. 또한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산과 바다에서 잡히는 동물과 어류를 통해 에너지원을 확보하기도 한다. 러시아에서 빵을 주식으로 하고 있고, 캐나다에서 연어 요리가 발달한 것 또한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대 기후 지역과 건조 기후 지역은 자연환경이 혹독하여 나무가 자라지 않는 무수목기후이다. 한대 기후 지역은 냉대 기후 지역보다 더 춥고, 강수량도 더 적다. 알래스카로 대표되는 툰드라 기후는 식생으로 이끼가 겨우 자라는 정도이고, 북극과 남극이 해당되는 빙설 기후는 얼음으로 덮여 있어 식생이 자라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기후에서는 농업이 거의 불가능하여, 순록 유목을 하거나 수렵과 어업 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순록, 고래, 연어, 고등어 등을 소비하며, 비타민 섭취를 위해 날고기로 먹기도 하고 훈제를 통해 산화 방지 처리를 하여 오랫동안 저장하여 소비하기도 한다. 사하라 사막 일대의 사막 기후와 몽골과 같은 스텝 기후가 있는 건조 기후 지역 또한 강수량이 매우 적어 농작물을 재배하기가 쉽지 않다. 이 지역에서는 주로 유목을 통해 양, 야크 등 가축을 키우며, 가축에서 공급되는 고기, 유제품 등을 통해 생활을 유지한다. 한편으로 기술의 발전을 통해 관개 시설을 확보하여 밀과 대추야자를 재배하기도 하는 등 농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밀 곡창지대가 유명하며, 음식으로는 몽골의 수테 차(우유차)와 양고기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교통, 통신의 발달로 먹거리의 공간적 이동이 한층 빠르고 쉬워졌다. 다양한 음식 문화가 섞여 퓨전 요리를 만들기도 하고, 다양성 속에 전통(original)의 의미가 강조되기도 한다. 우리는 오늘도 식탁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자연을 경험하고 느끼며, 욕구를 충족한다. 글을 쓰다 보니 슬슬 허기가 진다. 여러분들의 "오늘 메뉴는 뭔가요?"